이중섭 그림은 아무도 모른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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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과 감정협회 ‘위작 시비’ 전모 “국내에 가짜 이중섭 그림 2백여 점”

 
이중섭 그림 위작 파문이 날로 커지고 있다. 화가의 일본인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씨(84·한국명 이남덕)와 둘째 아들 태성씨(56·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는 지난 4월7일 도쿄 시내 태성씨가 운영하는 표구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제의 작품은 화가가 1953년 1주일간 일본을 방문하고 귀국한 후 그려서 우편으로 보내준 작품 중 하나”라고 밝혔다.

하지만 위작 판정을 내린 국내의 미술계 인사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감정협회)는 지난 3월30일 전문위원들이 대거 참여해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4월12일 관련 세미나를 갖고 위작 판정 사유를 조목조목 공개했다. 더구나 문제가 된 여덟 점 외에 다섯 점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상태여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추가로 등장한 다섯 점도 유족측이 국내 화랑에 판매를 위탁한 것들이다.

사건의 발단은 그림 <물고기와 아이>가 3월8일 감정협회 감정 결과 위작으로 판정되면서부터. 그림은 서울옥션(대표 이호재)이 2월 초 일본에 있는 이중섭 유족으로부터 직접 인수한 여덟 점 중 한 점으로, 경매하기 전 이미 한 수집가에게 1억2천만원에 팔렸다. 감정협회는 <물고기와 아이> 외에 서울옥션이 참고 자료로 제시한 그림 석 점에 대해서도 위작이라는 소견을 냈다. 서울옥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16일 이 석 점이 포함된 이중섭 그림 넉 점을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 내놓았고, 각각 3억1천만원에서 4천만원에 낙찰되면서 위작 시비가 언론에 드러났다.

 

 

 

 

 

 

 

 

 

감정협회 감정위원이자 미술품 수복 전문가인 최명윤씨(58·전 한서대 교수)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유와, 이를 반박하는 유족측 주장을 모아보았다.

 

“제대로 베끼지도 못한 실수투성이 졸작”

우선 정식 감정 대상이었던 <물고기와 아이>. 최씨는 이 작품이 1977년 발간된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 100인 선집>의 속지 삽화에 실린 이중섭의 크로키를 베낀 뒤 금분으로 색만 입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정 대상 작품은 원작과 비교할 때 선의 속도감이 없고, 주둥이의 표현 양식이 다르며, 이중섭이 물고기를 채색화로 그릴 때 흔히 그려넣는 지느러미나 비늘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채색 부분도 비백(飛白·채색의 여백)이 거의 없어 입체감이 없는 등 이중섭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어색하다는 것이다.

최씨는 <아이들>과 <사슴>을 비롯해 경매에 나온 넉 점도 가짜라고 주장했다. “<아이들>은 이미 알려진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 <가족>을 거의 그대로 본떴지만, 제대로 베끼지도 못해 곳곳에서 실수가 드러난 졸작에 불과하다”라는 것이 최씨의 진단. 경매에 나온 <사슴> 또한 앞발 관절이나 발굽 묘사가 엉뚱하고, 뿔을 주둥이로 착각하는 등 원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사한 작품이라는 것. “이중섭은 소도둑으로 몰릴 정도로 대상을 완벽하게 관찰하고 이해한 뒤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새로 공개된 작품은 관찰력이나 해부학적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이 그린 것 같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최씨는 또한 “이중섭이 일본에 밀항했을 당시 그렸다고 했다가, 나중에 우편으로 보내줬다고 바꾸는 등 유족의 말에 일관성이 없고, 서명도 ‘중섭’ ‘둥섭’ 등으로 다양할 뿐더러 기존 서명과 필체가 다르다”라고 말했다(이중섭은 원산 시절 ‘둥섭’이라는 서명을 사용하다가 1950년 월남한 후부터 ‘중섭’이라고 적기 시작했다). 유족 소장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진품으로 보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족측은 “문제가 된 작품을 50년간 소장해왔으며, 진위 논란이 이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유족은 이중섭이 1954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는 <길떠나는 가족> 등 작품 몇 점을 추가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정협회가 구체적으로 지적한 내용을 논박하지는 않았다. 그림을 몇 점이나 더 가지고 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유족 소장품인 만큼 위작으로 보기 어렵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서울옥션 자체 감정위원인 신옥진씨(59·부산 공간화랑 대표)가 유족 측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 신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감정은 기본적으로 추정일 뿐이며, 작품 분석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이 출처가 확실한지 여부다. 이 그림들은 유족 소장품인 만큼 위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기 그림을 베끼는 화가가 많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림에 편차가 날 수도 있다”라며 위조범이 베꼈는지 작가가 베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비슷한 그림이라는 혐의만으로 위작 판정을 내리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이전부터 이중섭 그림은 명성이 높고 비싼 만큼 가짜가 많기로도 유명했다. 1991년에는 이중섭의 화풍을 연구해 위작을 만들어 판 일당이 검거되었고, 1992년과 1993년에는 시가 10억원 상당이던 <흰소>와 <황소머리> 등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말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 개관특별전 때 처음 공개된 엽서 여섯 점도 위작 시비를 겪었다. 지난해 초 발표된 한국화랑협회 통계에 따르면, 감정 대상 그림 중 평균 30% 정도가 가짜로 밝혀지는 것에 비해 이중섭 그림은 75%가 가짜로 드러나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이번 사태는 유족 소장품이자 국내 최고 권위의 경매 업체에서 내놓은 작품이 위작 시비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심각하다. 미술계 일부 인사들은 국내에 2백 점이 넘는 가짜 이중섭 그림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국내에 이중섭 위작을 만드는 사람이 6~10명 있으며, 이들이 만든 위작 중 일부가 기증 형태로 유족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인사도 있다. 내년은 이중섭 화백의 사망 50주기가 되는 해. 여러 모로 파장은 쉽게 그치지 않을 기세다.

미술 동네에는 현재 위작 파문이 가뜩이나 움츠러든 미술 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와, 미술 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조합 방식으로 위작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유명 원로 작가의 그림과 유사한 작품을 사들인 뒤 부분적으로 색조를 조정하고 서명을 위조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원본을 분할한 뒤 여백 부분에 원본을 모사해 여러 개로 만드는 수법도 쓰인다. 
위작의 가장 첨단 방식은 창작 기법을 도용하는 것이다. 대상 작가의 작품 세계를 완벽하게 연구한 뒤 스스로 대상 작가가 되어 창작하는 경우다. 특성상 실력은 있지만 작품 값이 싼 일부 화가와 전문 조직이 결탁한 경우가 많다. 김영주 황유엽 이상범 김기창 등의 작품을 다루는 ‘창작 위조범’의 수준은 일부 전문 감정가의 눈을 속이는 정도까지 발전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단 복제라고 모두 위작은 아니다. 구미의 대형 미술관에서는 노후한 유물의 대체 전시나 순회 전시, 보존 등을 위해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작품 한쪽에 전문가만 알 수 있는 표식을 해둔다.
위작을 가릴 때, 전문가들은 ‘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30년 정도 경험이 쌓이면 한눈에 느낌이 온다는 것. 미심쩍으면 작품 분석과 적외선 촬영, 탄소 측정 등을 한다. 여기까지가 비파괴 방식이다.

그 다음 단계가 재료 분석.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작품을 상당 정도 떼어내야 하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나 쓰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보통 같은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은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재료 분석에 들어간다 해도 100% 완벽하게 진위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한 전문 감정가는 “그래서 감정가들 사이에 너무 잘 그린 위작은 그냥 진품으로 인정해 주자는 농담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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