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과 ‘쾌락’의 차이
  • 벵자맹 주와노(문화평론가, 요리사) ()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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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자멩 주와노의 맛과 멋2

 
한국 식탁에서 나를 항상 매혹시켰던 것은 바로 ‘음식 궁합’이었다. 몇몇 요리에는 항상 술과 양념이 곁들여지고, 계절에 따라서 특징적으로 먹는 요리가 정해져 있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처럼, 앙트레(전채 요리) 메뉴인 ‘살라드 콤포제’(샐러드 모듬)나 ‘믈롱장봉’(코파햄과 메론)과 같은 여름 식단이 있고, 추운 겨울에 원기 보충을 위한 ‘포 토 푸’(고기 스프와 채소)라는 요리도 있다. 포 토 푸는 일반적으로 디종 머스타드나 굵직한 소금, 코르니숑(작은 오이)을 곁들여 먹는다. 채소와 고기를 양념과 함께 먹는 이유는 단지 음식을 좀더 맛있게, 다시 말해 싱거운 맛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의 양념에는 음식 맛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배합의 기능을 뛰어넘는, 무언가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 듯하다. 닭고기와 무(깍두기나 동치미), 구운 돼지고기와 소금을 친 참기름, 삶은 돼지고기 보쌈과 새우젓의 궁합에는 미각적 배합 이상의 건강을 위한 보양적 의미의 음식 궁합이 깃들어 있다.

나는 한국이나 프랑스 요리처럼 미각적으로 훌륭한 요리는 그 나라의 문화 철학과 세계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유한 문화적 개체에 의해 완성된다고 본다. 한국 요리에는 한국만의 고유한 개성이 표현되어 있다. 붉은 고춧가루가 한국 음식에 쓰인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요리에 마늘을 사용하는 것처럼, 한국 요리에는 중국 요리와 확연하게 차별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때 전수된 요리에는 마늘이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한국 음식에 미각적 측면뿐만이 아닌 영양학적인 균형까지 고려되어 있다는 점을 보며 놀란다. 거의 모든 전통적인 한국 음식은 약용의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통 약의 재료나 그 제조 과정의 상당 부분이 역으로 요리에서 차용되었다는 점이다. 반면 서양에서 영양학은 병 치료를 위해 음식을 조절하는 학문이었으며, 의학 분야에 속했다. 최근 예방을 위한 식이요법이 널리 퍼지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야말로 음식을 통한 동서양의 만남이라고 본다.

물론 한국인들도 중국인들처럼 개개인의 생리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자연의 힘과 에너지의 균형이 존중되는 균형 잡힌 식이요법을 권한다. 이런 식이요법 안에는 동양의 오묘한 철학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도교의 영향을 받은 학파들은 인간의 장수에 대해 연구해왔다. 영원성, 즉 무병장수는 동양 철학의 정신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다. 영원성은 의학이나 미각뿐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 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이상이다. 동양인들에게 만물은 영원성에 접근하는 방식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통 음식은 또 다른 ‘보약’

그러므로 동양에서 영양을 섭취하는 목적은 감각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리적인 균형에 도달하고, 이러한 균형을 통해 정신적·도덕적·사회적 균형을 실천하는 것이다. 중국 황제나 한국 임금의 극도로 균형 잡힌 상차림에서 이런 ‘균형’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영양학자(요리사가 아닌 의사)는 왕의 건강 상태와 기분, 계절에 따라 메뉴를 결정했다. 왕은 같은 음식에 세 번 이상 젓가락을 가져갈 수 없었으며, 어떤 경우라도 개인적인 식성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와 비교하면 루이 14세의 향연은 너무 다르다. 프랑스에서 왕의 상차림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왕의 식성과 미학적 고려였다. 프랑스의 세련된 요리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는, 지금도 변함없지만, ‘즐거움(쾌락)’이다. 바로 여기서 한국과 프랑스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균형(생리적이며 정신적인) 추구’와 ‘쾌락 추구’라는 상반된 가치야말로 동서양의 음식 문화를 구별하는 가장 큰 잣대이다.     
번역·한원선(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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