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6자회담 복귀선언 임박”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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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강석주 비밀 방중·후진타오 방북 협의…북·중 경협 패턴 달라져

 

북한의 핵 보유 선언(2월10일)은 북핵 문제 뿐 아니라 동북아의 국가 관계를 뒤흔들었다.마치 용암이 분출하듯 미·일 동맹의 간판을 내걸고 일본 우익의 군사대국화 합창이 울려 퍼졌다. 북한의 2·10 선언 파장이 한·일 간의 독도 문제, 한·중·일의 역사전쟁으로까지 비화한 것이다.

이 와중에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을 방문(3월20~21일)했다. 그리고 북한의 박봉주 총리(3월22일~25일), 최근에는 강석주 외교부 제1부상의 비밀 방중이 뒤를 이었다(4월2~5일). 라이스 장관의 방중이 2·10 선언의 파장을 수습하기 위한 미국의 ‘응전’이라면, 강석주 외교 부상의 방중은 북·미·중 3국간 막후 대화의 마무리 순서로 보인다.

강석주 부상의 베이징 방문은 그가 김정일 위원장의 특명을 받은 비밀특사 자격이었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북핵과 6자 회담 등 주로 대미 관계를 주도해온 그가 자기 관할이 아닌 베이징에 모습을 드러낸 것 역시 이런 긴박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중을 계기로 그동안 끊겼던 6자 회담의 숨결이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도 주목거리이지만, 그 이면에 담긴 6자 회담의 형식 변화 움직임은 한국 외교의 방향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과 베이징 그리고 해외의 북한 공관을 대상으로 한, 직간접 입체 추적으로 강석주 방중의 의미와 내용을 탐사한다.

 
방중 최대 목적은 후진타오 방북 협의;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김정일-후진타오 정상회담과 관련한 마무리 협상이 강석주 외교 부상이 비밀리에 방중한 최대 목적이자 임무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가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특명의 내용 역시 이와 관련되어 있다. 즉 후 주석의 방북 시기 및 일정을 마무리하고, 후 주석과 김위원장 사이에서 오갈 ‘선물’에 대해 매듭지으려 한 것이다. 이밖에 북·중 정상회담 실현에 걸림돌이 될 미묘한 정치적 사안을 사전에 정지하는 작업 또한 이번 방북의 중요 목적이다.

우선 이번 방중을 계기로 북·중 간에 협의된 바에 따르면,  후 주석의 방북은 4월 말께를 목표로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예정인 후 주석의 일정 때문이다. 중국측은 그동안 후 주석이 모스크바 행사에 참석하기 전에 북핵 문제의 가닥을 잡을 수 있기를 강력하게 희망해왔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전세계 정상이 모이는 모스크바 행사에서 동북아의 리더로서 후 주석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후 주석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4월 말, 늦어도 5월9일 전에 후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6자 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6자 회담 복귀 선언, 이것이 바로 김위원장이 후 주석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이다. 그렇다면 후 주석은 어떤 보따리를 풀 것인가.
 
박봉주 총리가 풀어헤칠 보따리는?; 이미 선물에 대한 협의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박봉주 총리의 방중은 라이스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다음날 이루어졌다. 모두가 박총리의 입을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특별한 언급 없이 조용히 움직였고, 상하이와 선전의 공장 지역을 둘러본 뒤 돌아갔다. 북·중 간에 어떤 교섭이 있었는지, 피상적인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더 무서운 법. ‘이제부터 북·중 경협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하라’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1970년대 이래 북·중 경협이 가장 큰 변화의 길목에 서게 됐다”라고 전했다. 그동안 북한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동정하듯이 지원하던 중국의 패턴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박총리가 방중 때 찾아간 상하이와 선전의 기업들을 유심히 봐야할 것이다. 그 기업들이 북한에 그대로 이식된다고 보면 된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3월 열기로 했던 최고인민회의를 4월11일로 연기했다. 일부에서는 박총리가 돌아와야 예산 계획을 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지만, 그보다는 대남 관계와 대외 관계 일정이 확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다고 해도 박총리의 방중 보따리가 최고인민회의가 표방할 경제 재건 계획에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국내의 북한 전문가는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경제 재건 및 대남·대미 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강석주 외교 부상에게 ‘묘수’ 있다: 경제 문제 협의는 이미 박총리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기 때문에 강석주 부상은 주로 북한이 그동안 내걸어온 ‘6자 회담 복귀 조건’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놓고 중국측과 머리를 맞댄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선언하기 앞서 선결해야 할 예민한 주제들이었던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와 라이스 국무장관의 ‘폭정의 전초 기지’ 발언에 대한 사과를 회담 복귀 조건으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아무런 담보 없이 회담에 복귀할 경우 미국이 북한에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려 하지 않을까 우려해 왔다고 한다. 북한과 미국 모두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이런 사안을 풀기 위한 묘수풀이가 그의 방중을 계기로 북한과 중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드러난 윤곽은 이렇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 문제는. 북한이 지난 3월31일 제기한 ‘군축회담’ 논리의 연장선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북한은 당시 ‘핵 보유국의 위상에 맞게 서로 대등하게 군축회담을 하자’고 주장했다. 즉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감히 북한을 공격할 수 없다는 자신감을 이면에 깔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대정책을 유지하든 말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북한의 ‘묘수’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의 대미 협상 전략에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여러 조건을 내걸고 까다롭게 굴기보다 대범하게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이 응수할 차례다. 바로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중국이 미국과 이면 협상을 진행 중인데, 미국이 성의를 표시하는 방법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요구한 대로 라이스 국무장관이 사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일본 방문 기간에 언급한 ‘주권 국가’를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즉 앞으로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동등하게 협상하겠다는 선에서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측은 그동안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민간 차원이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라이스 국무장관의 주권 국가 발언은 폭정 전초기지 발언에 대한 해명’이었다고 암시해 왔다. 이를 다시 강조함으로써 북한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우려를 감안해 중국 역시 무엇인가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미국이 일방적으로 6자 회담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견제 역할을 하겠다는 것과 함께, 미국측 대표 명의로 6자 회담 석상에서 북한에 대한 불침선언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최근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으로부터 강석주 외교 부상의 방중 관련 내용을 전해들은 한국 외교부 당국자들은 북한의 회담 복귀 여부에 대해  ‘아직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강석주 부상이 회담 복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서 ‘묘수풀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강석주 부상 방중의 이면은 6자 회담 형식 문제; 앞으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북·중·미 3국이 이면에서 6자 회담 형식을 바꾸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6자 회담을 둘로 나누어 ‘3+3 체제’로 운영하자는 물밑 대화가 오가고 있다. 3+3이란 북한·중국·미국 3국이 실질 협의를 진행하고, 한국·러시아·일본 3국은 실질 협의가 아닌 공식 테이블에만 참가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주요 결정은 북·미·중 3국이 내리고 나머지 3국은 이를 추인하는 식으로 위상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에 의하면, 이같은 틀은 중국이 처음 발의했는데, 북한이나 미국 역시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북·미 양국 사이에서 명실상부하게 중재자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북한은 북한대로 중국을 지렛대 삼아 미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회담이 실패할 경우 중국에 책임을 미룰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3+3 발상의 이면에, 최근 동북아 국가 간의 헝클어진 관계가 여러 모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북한과 중국이 일본을 6자 회담 메인 테이블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노린 측면이 있다. 지난해 가짜 유골 파문 이후 북한은 일본의 6자 회담 참여에 거부감을 표명해 왔다. 더군다나 최근의 독도 문제, 역사 왜곡 문제로 인해 감정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최근 대북 경제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한 배경에는 일본의 준동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다.

한국이 덩달아 배제된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은 꼭 참여시켜야 한다고 적극 방어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한·미 간의 불편한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일각에서는 한국역할론, 또는 6자 회담 석상에서의 남북공조 가능성에 대해 미·중 양국이 동시에 견제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외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3+3 체제가 가시화할 경우 정부의 대응 방향은 어떨까. 그동안 정부는 한국이 실질적으로 6자 회담을 주도했다고 주장해 왔으나, 이제 이런 주장이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균형외교론의 포부를 밝혔으나 정작 그 무대가 될 6자 회담 석상에서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남북대화라는 더욱 강력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은 북한이 준비가 안되어 남측의 제의에 응하지 못했으나, 최근 수용 태세가 거의 완료되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한국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적절하게 이니셔티브를 쥘 경우 남북 관계가 급진전할 가능성이 있다. ‘남북의 선로’만 뚫린다면 노무현식 균형 외교도 가속도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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