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지대’ 교황 탄생할까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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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아프리카 추기경들, 차기 후보로 주목…‘이탈리아 회귀론’도 만만찮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이후 현재 전세계의 가장 큰 관심은 누가 다음 교황이 될 것이냐에 쏠려 있다. 일각에서는 카톨릭교도의 성장세가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이고 있는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새 교황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번만큼은 카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에서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제 265대 차기 교황은 전세계에서 모여든 추기경 1백17명이 빠르면 내달 초 결정하지만, 벌써부터 서너 명의 유력 후보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교황의 자격 요건은 여러 가지다. 우선 나이로 볼 때 만 60세가 넘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만 관례상 그럴 가능성이 크며, 남성이라야만 한다. 또 강인한 체력과 카리스마, 다른 동료 추기경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야 한다. 나아가 요한 바오로 2세처럼 해외 여행을 자주 할 수 있어야 하며 영어를 비롯해 다국어에 능통해야 한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가장 절대적인 조건은 교리 해석에서 보수적이어야 한다. 실제로 이번에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낙태와 피임, 동성 결혼, 사제 결혼 문제에 대해 줄곧 반대 입장을 지켜왔다. 이런 자격을 갖춘 후보들 가운데 80세 이하 추기경들이 이른바 콘클라베(주교단 비밀회의)를 통해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 교황 직에 오른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을 차기 교황 후보 선출에는 위에서 열거한 조건 외에도 지역적 요소가 커다란 변수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역대 교황은 지구의 북반구, 그것도 요한 바오로 2세 이전에는 무려 4백55년 동안을 이탈리아에서 배출되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남반구, 특히 카톨릭 교인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집중해 있고 교세가 급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남미 등 제3 세계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꽤나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바티칸 문제 전문가인 존 앨런 씨는 “오늘날 기독교의 중심은 지구 남반부로 쏠리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엔 남반부 개발도상국에서 교황이 나와야 한다는 기류가 매우 거세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세계 카톨릭 신도 수는 대략 11억명으로 추산된다. 20세기 초만 해도 카톨릭 신도 10명 중 7명이 유럽인이었지만, 지금은 10명에 2.5명꼴로 대폭 줄어 유럽의 쇠퇴를 반증한다. 이처럼 유럽의 카톨릭 교도가 줄어든 반면,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에서는 신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현재 전세계 카톨릭 신도 가운데 중남미 신도의 비중은 무려 43%를 차지해 최다를 자랑하고 있고, 아시아 신도의 비중도 11%로 만만치 않다. 중남미만큼이나 신장세가 두드러지는 아프리카의 경우 지난 1900년 전세계 카톨릭 신도 수의 1%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은 13%나 된다. 나이지리아의 존 오나에겐 대주교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회견에서 ‘이제는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에서 배출한 성직자들이 쇠퇴하는 유럽을 다시 부흥시킬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남반구에서 차기 교황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같은 현실적인 판세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교황 후보 3~4명 가운데서도 카톨릭 신도 수가 2천만명이나 되는 나이지리아의 아린제 추기경(72)은 아프리카라는 제3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그는 26세에 사제에 서품된 뒤 6년 만에 최연소로 주교 반열에 오를 만큼 인정받았다. 대주교로 있던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 교황청에 들어간 그는, 이듬해 추기경으로 승격한 후 이슬람 등 다른 종교와의 관계를 담당하는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을 맡아왔다.

이른바 미국의 ‘9·11 테러 사태’ 이후 이슬람과 기독교 간 반목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양측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만약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다면 AD 496년에 서거한 겔라시우스 1세 이후 1500년 만에 두 번째로 흑인 교황이 된다. 그러나 대다수 바티칸 전문가들은 그가 교황 후보로서 자질을 고루 갖추었지만 ‘흑인’이라는 요소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아린제 추기경과 함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중남미에서 카톨릭 신도를 제일 많이 보유한 브라질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70)이다. 2001년 추기경에 오른 그는 주요 현안과 관련해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보수적 견해를 갖고 있어, 차기 교황감으로 무난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역시 개발도상국인 온두라스의 오스카 로드리게스 마라디아 추기경도 차기 교황감으로 유력시된다. 올해 62세로 추기경 치고 비교적 젊은 그는 남미 출신 보수 원로 추기경들보다 주요 현안에 대해 신축적인 입장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그가 교황으로 선출될 경우, 카톨릭 교계 내의 보수파와 개혁파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유럽 등 북반구에서 차기 교황이 나올 가능성은 없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요한 바오로 2세 이전의 전통에 따라 이탈리아 출신 추기경이 차기 교황에 컴백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럴 경우 1순위 후보로는 디오지니 테타만치 추기경(70)이 거론된다. 2002년 이탈리아 최대 교구인 밀라노의 대주교로 임명된 그는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인 데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여러 건의 회칙을 작성하는 데 간여해 생전의 교황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그밖에도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의 ‘충직한 친구’라고 불렀다는 독일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77)과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토프 쇤보른(60)도 거론되고는 있지만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문제는 전세계 카톨릭 인구의 43%를 차지하며 갈수록 급팽창하는 중남미에서 이번에 차기 교황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현재 전세계 추기경 1백17명 가운데 중남미 추기경은 21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아프리카 등 다른 남반구 지역의 추기경을 모두 합쳐도 45명으로 교황 선출에 필요한 3분의 2에 훨씬 못미친다. 따라서 중남미 같은 제3세계에서 교황이 선출되려면 북반구, 특히 유럽 출신 추기경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일부 바티칸 전문가들이 차기 교황에 이탈리아의 테타만치 추기경이 낙점될 가능성에 조심스레 무게를 두는 것도 이런 산술적 계산 때문이다.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현재 미국의 카톨릭 신자는 약 6천5백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가운데 매주 꼬박꼬박 성당에 나가는 정통 신자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조지 메이슨 대학 종교 전문가인 마크 로젤 교수는 “성당을 안 가거나 가끔씩 나가는 사람들은 공화당과 연대감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노틀댐 대학 중남미연구소의 2003년 조사에 따르면, 친공화계라고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카톨릭 신자들은 미국 카톨릭 인구의 주류를 이루지 못하는 반면 라틴계 카톨릭 신자들은 압도적으로 친민주당 성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사회적 조류에 민감한 현대적인 카톨릭 신자들은 전통적인 카톨릭 신자보다 수가 훨씬 많으며, 바로 이들이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들은 낙태나 줄기세포 실험, 심지어 동성애 문제 등에서 로마 교황청이나 미국 카톨릭 주교단과 달리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이처럼 ‘카톨릭은 곧 친공화’라는 등식이 아직은 요원한 상황에서 부시의 이번 조문 배경에는 다음번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 차기 공화당 주자들을 위한 정치적 의도가 깔렸을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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