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희씨 만나러 간 것 사실이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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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회고록 집필 맡았던 김경재 전 의원 인터뷰
 
김형욱씨가 1979년 10월 한국 유명 가수를 만나러 파리에 갔다가 실종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가수가 아니고 배우 최지희씨 아닌가?
최지희씨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 여자에 대해서는 김형욱씨와 부인 신영순 여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네 사람 외에는 모르는 사실인데...

김형욱씨를 파리 현지에서 납치해 시 외곽 한적한 양계장에서 암살했다는 사람을 기자가 만났다. 그는 김형욱씨가 여배우 최지희씨와 만나려는 현장에 먼저 대기하고 있다가 그녀의 보디가드 행세를 하며 접근해 여배우가 기다리던 차로 안내하는 척하다가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털어놓았다.
놀라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암살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으니 도와달라. 나는 지난 25년 동안 아무에게도 그 연예인의 실명을 말하지 않았다. 김형욱씨가 그 여배우를 만나러 간 게 맞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당했을 것이므로 보호해줘야 한다. 내가 지금껏 여가수라고 둘러댄 것도 그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기자들이 그 무렵 파리에 갔던 여가수를 찾아냈는지 그녀가 나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항의하더라. ‘당신이 아니라 여배우 최지희씨다’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김형욱씨가 실종될 무렵 그 여배우를 만나러 파리로 갔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나는 김형욱씨의 구술을 받아 회고록을 집필하느라 그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 27개월을 매주 2~3회 만나서 함께 보냈다. 그가 실종되기 전 편지를 한 장 보여주면서 ‘이것 때문에 마누라하고 대판 싸웠다’고 했다. 여배우 최지희씨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김형욱 부장과 예전에 둘이서 갔던 특정 장소가 생각난다, 인생을 왜 그렇게 피곤하게만 살려고 하시느냐, 여행도 좀 하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시라는 등의 연애 편지였다.

김형욱씨와 사생활까지 털어놓는 사이였는가?
내가 2년 이상 고생해 가며 그의 회고록을 다 집필했는데 막판에 김씨가 느닷없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 한국 정부가 죽이겠다고 위협을 한다면서 빈말로 책을 전부 내지는 않겠다고 답변했으니 공격의 예봉은 피하고 보자며 나더러 ‘김형욱 동의 없이는 책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나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온갖 협박을 받고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는데 왜 이리 약해지셨느냐며 대판 싸웠다. 반발하는 나를 설득하려다 보니 그가 호주머니에서 그 여배우 연애 편지를 꺼내 보여주며 ‘집에서는 이것 때문에 마누라랑 대판 싸우고 나왔는데, 자네까지 이러기냐, 나를 한번 봐달라’고 했던 것이다.

정보부장까지 지낸 김형욱씨가 단신으로 여배우를 만나러 갔다는 점이 이상하다.
내가 보기에도 글씨가 너무 정자체라서 ‘대필일 수도 있으니 한번 의심해보십시오’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아, 대필은 할 수 있겠지만 내용까지 속이지는 못해. 글 내용이 틀림없는 그사람 것이야’라며 그냥 넘겼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는 물론 해외로 나갈 때면 항상 유도 선수였던 큰아들을 보디가드로 대동했다. 그러나 여배우를 만나러 파리에 간 그때는 아들을 떼놓고 혼자 갔다.

 여배우와 김형욱씨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나?
1960년대 말 김형욱씨가 중앙정보부장이던 시절 그 여배우가 정보부 건물 근처에서 정·관계 인사들이 주로 드나드는 비밀 요정을 했다. 일종의 정보부 안가라고 들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가 각별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여배우를 만나보았나?
10년 전에 만나서 ‘이제 김형욱 사건을 털어놓으십시다’라고 권유했다. 그녀는 당시 자녀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서 제발 입을 열지 말아 달라고 나에게 사정하더라. 자기도 기관에 이용당했던 피해자라고 주장했는데, 맞는 말이다.

요즘은 연락하지 않았는가?
최근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기에 ‘이왕 과거사위원회가 조사를 하는데 다른 데서 거론해 기자들에게 시달리느니 25년간 비밀을 지켜드리고 있는 나를 만나 조용히 정리하십시다’라고 권유하는 음성 녹음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그 분은 아직 답신을 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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