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는 시장이 해결 못한다”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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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12개 국정과제위원회를 이끄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정책 참모다.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는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에 맞서는 개혁 그룹의 좌장으로 인식되었고, 그로 인해 가혹하리만큼 이념 공세에 시달려 왔다. 지난 3월10일 만난 이위원장은 참여정부의 지난 2년이 격랑의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불황의 고통을 감내해준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위원장은 비록 지금은 공격받고 있지만, 역사적 숙제를 해결하려는 참여정부가 훗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참여정부 2년의 소회가 궁금하다.
참여정부는 지난 60년 동안 과거 정부가 미루어온 역사적 숙제들을 욕을 먹더라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보수적 학자나 언론, 비판이 주임무인 야당으로부터 온갖 공격을 받았고 배(대한민국)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국민들은 불안해 했고 내수 불황마저 격심했으니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 살기 어려운 데서 오는 불만이었다. 진정한 아우성이었고 정부가 따갑게 수용해야 할 비판이었다. 그럼에도 참여정부가 (경기 부양이라는) 인기영합주의로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것은 체질을 강화해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려는 ‘장기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오랜 고통을 참아온 국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국민들은 앞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기초 체력 강화로 인한 경제 회복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후 한국 경제가 장기 호황 국면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가 내수 불황의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인가?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봄기운은 있다. 신용카드 사용액과 백화점 매출액 같은 몇 가지 지표를 들 수 있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한두 마리 보이기 시작하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해석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12개 국정과제위원회를 진두 지휘하는 ‘왕위원장’ 격인데, 지난 2년간 역점을 두었고 또 앞으로 3년간 집중할 국정 과제가 무엇인가?
왕위원장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 (12개 위원장과) 대등하고 수평적 관계다. 12개 국정과제위원회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서로 얽히고 겹치는 부분이 발생해 정책기획위가 총괄 조정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국정 과제가 100개나 되다 보니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세 가지 큰 방향으로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우선 개혁 또는 혁신이다. 그동안 참여정부가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정치 개혁이다. 선거가 깨끗하게 치러졌고 정경유착이 거의 사라져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경영에 전념하게 된 것은 상해벽해라 할 만한 변화 아닌가. 정부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과학 기술과 교육 분야 혁신도 꾀하고 있는데, 개혁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고 본다. 밥그릇이 중요한데 왜 개혁을 하느냐는 사람이 있는데 체질을 개선하고 기초 체력을 강화해 지속적으로 성장하자는 것이다. 사상누각 같은 성장은 하기 쉽다. 하지만 언제까지 몇 년 못가 무너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자는 것인가. 개혁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으며, 선진국 치고 개혁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두 번째는 통합이다. 개혁만 하면 여기저기서 갈등이 심해진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고 가는 것이 통합이다. 빈부 격차 완화와 차별 시정 관련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적 협약까지 도달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지난 2주년 평가 심포지엄에서도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대목이지만, 노사 관계 발전에도 부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화(분권)다. 지난 천년 간의 서울 중심 일극체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비록 신행정수도 건설이 좌초했지만, ‘행정중심 복합도시’라는 차선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공공기관 이전과 균형 발전 정책이라는 세 수레바퀴를 굴려 지방 분권을 추진하고 있다.

‘동반성장론’의 주창자가 이위원장이라던데. 이위원장이 이끄는 연구팀에서 ‘동반성장의 길’이라는 양극화 대책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
주창자는 대통령이다. 지난 연말 2주년 평가 중간 보고대회에서 대통령이 동반 성장이라는 표현을 처음 꺼냈다, 참 괜찮다는 반응이 나왔고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혀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영어로 ‘Shared gross’쯤 될텐데, <share economy>라는 경제학 저서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대통령에게 보고서가 올라간 것은 맞는데, 아직 보시지 못한 상태이다.

양극화는 전방위적이며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세계화와 정보화는 양극화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인데, 한국은 1997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나라보다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다.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를 장기 과제다. 아마 다다음 정부까지 가야 할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 정밀하게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구체적인 정책은 부처와 조율이 필요하지만,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것은 분명하다. 지난 정부에서 전국민의 3%인 빈곤층에 대한 기초 생활 보장은 이루어졌지만, 준빈곤층(차상위계층)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 한마디로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기초 생활을 보장하고,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활하게 하는 것이 큰 방향이다. 지식 확충은 지식 중심 사회라는 조류에도 맞고 생산성을 높이면서 형평도 꾀하는 것이어서 동반성장 정책의 핵심 내용이 될 것이다. 아직도 위세를 떨치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우리사주제도를 확충하는 등으로 자산 격차도 줄여 갈 것이다.

보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양극화 현상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시장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심스럽다. 모든 나라에서 양극화 문제는 발생하지만, 양상은 많이 다르다. 이른바 영미형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지난 20~25년간 불평등도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반면 사회통합형 시장 경제를 추종하는 유럽형은 양극화가 심하지 않다. 물론 영미식 자본주의는 기술 혁신과 효율적이라는 장점을 지닌다. 이것은 본받아야 하지만, 빈부 격차와 중산층 붕괴 조짐으로 ‘두 개의 미국’으로 치닫는 사회 해체의 위험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 영미형으로 분류되는 한국은 미국과 영국, 호주, 일본 등과 또 다른 상황에 있다. 사회안전망이 가장 갖춰져 있지 않다. 보수 학자들이나 일부 언론은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국에도 없는 극단적 시장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으며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라고 생각한다. 양극화는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 동반성장으로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이 겪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머지 않아 나타날 것이다.

중소기업 활성화가 동반성장 정책의 핵심 아닌가?
맞다. 열심히 연구 중이다. 이미 혁신형 중소기업 3만개 육성 같은 몇 가지 정책은 추진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거품이 꺼지는 구조 조정 과정에서 괜찮은 중소기업도 죽는 오버킬 현상이 일어났다. 옥석이 구분(區分)된 것이 아니라 구분(俱焚)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과거와 같은 돈퍼붓기식 지원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중소기업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기술 평가 능력을 기르는 등 금융기관들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 은행들은 지난해 천문학적 이익을 올렸지만, 땅 짚고 헤엄치는 식 편한 장사(예대 마진)에 안주해온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위원장은 정책실장 당시인 2003년 <시사저널> 인터뷰 때보다 한결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장기 국정 과제를 수립하는 정책기획위원장이 자신의 성격과 체질에 더 잘 맞아 만족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개혁과 성장, 실용과 개혁, 성장과 분배는 같이 가야 하는 것이지 이것을 자꾸 대립시켜 편가르기를 하고 싸움 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고 호소했다. 다산 정약용식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결기도 보였다. 다산이 ‘실용적 개혁주의’를 가장 잘 실천한 개혁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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