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해본 새가 더 높이 난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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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승, 화의 ‘조기 졸업’하고 재도약 시동…글로벌 브랜드 개발 박차

 
추락하는 순간에 날개를 펴고 다시 날아오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부도를 맞아 화의 상태에 들어갔던 (주)화승은 추락과 동시에 날개를 폈다. 그리고 7년 동안의 고된 날갯짓 끝에 지난 1월 화의 상태에서 벗어났다.

화승은 올해를 제2 도약의 해로 선포하면서 최근 나은택 전무(53)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1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오른 나은택 대표는 화승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산 증인이자, 부활의 날갯짓을 주도한 이다.

지난 3월9일, (주)화승 나은택 대표이사를 만나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나은택 대표의 얼굴에는 ‘성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직장 생활 24년 동안 단 한번도 결근이나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 아니어도 그가 얼마나 성실한 월급쟁이였는가를 눈치 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토박이 사장의 집념 결실

재도약을 꿈꾸는 이 시점에서 화승이 나대표를 선장으로 내세운 이유는 비단 성실성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르까프를 맡아서 4년 만에 매출을 두 배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또 당시 가장 큰 골칫덩어리였던 대리점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한 구원투수였다.

화승이 부도가 나자 대리점주들은 해약을 요구하며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대리점마저 줄어들면 화승으로서는 재기를 시도할 수 없었다. 당시 마케팅 부장이던 나대표는 ‘대리점이 살아야 회사가 산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리점을 전폭 지원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회사 마진율은 줄이고 대리점 마진을 보장했다. 대리점주들을 한 사람씩 만나 설득했고, 직원들과 대리점주들이 만나 고충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 체육대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부도 직후 절반이 넘는 대리점주들이 해약을 요구했었지만, 지금은 회사를 못 믿겠다며 해약하겠다고 나서는 대리점주는 없다. 회사로 찾아와 욕설을 퍼부으며 거칠게 항의했던 대리점주들까지 화승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변했다.

대리점을 안정시킨 뒤 나대표는 물류 시스템에 손을 댔다. 주문부터 대리점 입고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처리되는 물류 시스템은 비용만 낭비하고 회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류 시스템을 전산화해 대리점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시스템을 도입하면, 재고를 파악하기 쉬울 뿐 아니라 판매 데이터를 이용해 신제품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빚 갚기에도 허덕이던 화승으로서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물류 전산화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대표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직원들을 활용했다. 그 결과 10분의 1도 채 안되는 비용으로 물류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데 성공했다.

광고판촉팀 조 성 팀장이 말한 대로 나대표는 ‘지독한 연구쟁이’다. 조팀장은 “나대표는 개발부터 판매까지 사소한 일 하나도 그냥 못 넘긴다. 담당 직원들을 불러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꼬치꼬치 캐묻고 함께 방법을 찾아낸다”라고 말했다. 나대표가 하루에 신는 신발은 열 켤레가 넘는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사내에서는 정장 차림에도 운동화를 신는다. 이 모델, 저 모델 번갈아 신어보고는 불편하거나 못마땅한 점을 찾아낸다. 그의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대리점 매장과 똑같은 견본 매장이 하나 있다. 틈만 나면 이 매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전략을 생각한다. 주말이면 직원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것도 그의 연구 방식 가운데 하나다. 화승이 개발한 등산 레저용품을 시험하고 소비자 트렌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화의를 벗어난 화승의 도전 과제는 이제 글로벌 브랜드 육성이다. 화승은 르까프·월드컵·K SWISS·우들스 브랜드에 초점을 모으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한국 스포츠용품의 선두는 나이키가 차지하고 있다. 3년 안에 그 자리를 빼앗아 오는 것이 화승의 당면 목표다. 나대표는 “한국인 발에 가장 잘 맞는 신발 연구는 화승을 따라올 곳이 없다. 게다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층에 맞춘 폭넓은 제품 구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충분하다”라고 자신했다. 

“3년 안에 ‘나이키 아성’ 깨뜨리겠다”

나대표는 국내 시장 제패뿐 아니라 한국 토종 브랜드인 르까프를 세계적인 스포츠 명품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나대표는 “나이키와 리복이 세계 시장을 정복하는 데는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을 담당했던 화승의 기술력과 품질이 크게 기여했다. 그 기술과 품질은 토종 브랜드인 르까프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케팅 분야에서만 나이키나 리복에 뒤질 뿐, 르까프 역시 세계적인 브랜드로 육성하는 데 손색 없는 기술력과 품질을 가졌다는 것이다.
르까프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복 첨단 기능성 소재인 컴포템프를 스포츠화 부분에 적용한 마라톤화와 테니스화 등을 개발하는 개가를 올린 바 있다. 화승은 올해 안에 프랑스 파리에 디자인 사무소를 연다. 현지 디자이너를 채용해 스포츠 명품 브랜드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열을 정비한 화승은 이제 국내 최대 신발업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기업으로 날아오를 태세다. 

 
어릴 적 고무신을 신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기차표’ 고무신을 기억할 것이다. (주)화승은 1953년 동양고무공업(주)의 기차표 고무신에서 출발했다. 화승으로 이름을 바꾼 1980년부터 나이키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 방식으로 생산하면서 신발산업 고급화에 불을 댕겼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 신발 수출의 20%를 점유하면서 국내 최대 신발업체로 떠올랐다. 신발 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를 떠올리게 했던 것도 화승의 힘이었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각축하던 1986년에는 ‘르까프’를 출시해 토종 브랜드를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화승도 위기를 맞았다. 부산지역 종금사들이 퇴출되어 자금난을 겪으면서 부도를 맞고, 1998년 화의에 들어갔다. 회사가 살려면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이 필요했다. 외형보다는 수익 중심의 경영을 통해 내실을 다져야 했다.
계열사였던 화승상사를 합병하고, 부산 삼락동과 서울 사옥 등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4백억원어치를 팔아 긴급 수혈에 나섰다. 4백80명에 달했던 직원을 1백50명으로 감원하고, 영업 부문은 소사장제를 도입해 아웃소싱했다. 물류 체계를 전산화해 전국 각 대리점까지 4~5일씩 걸리던 운송 기간을 하루로 단축시켰다. 조직 슬림화와 경비를 절감해 비축한 자금은 신제품 연구 개발과 영업 마케팅 부분에 투입했다. 2002년부터는 베트남에 세계 최대 규모 공장을 설립해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1998년 화의 당시 1천5백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3천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 결과 (주)화승은 지난해 8월 화의 채무 2천8백32억원을 전액 상환했다. 그리고 예정된 기간보다 2년 앞당긴 지난 1월10일 부산지법으로부터 화의 종결 인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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