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욕망에 빠져 봅시다
  • 김봉석 (영화 평론가) ()
  • 승인 200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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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연출 : 히로키 류이치,출연 : 데라지마 시노부·오오모리 나오

 
<바이브레이터>

여성의 욕망이란 어떤 것일까? 이런 질문을 접할 때마다, 망설이게 된다. 나는 남자이고, 어떻게 해도 여성의 마음을 직접 알 수는 없다. 그저 추정이고 상상인데 어떻게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여성의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고, 작용하고, 충족되는지를. 어렴풋이 혹은 직관으로 느낀다 해도, 그걸 말로 표현하기란 더욱 힘들다. 그것이야말로 타자의 언어로 전달되는, 타자의 영혼일 것이다.


하지만 ‘영상’에게는 탁월한 장점이 있다. 보는 것만으로 느끼게 만들어준다. 내가 느끼는 것을 소리와 영상이 어우러진 영상으로 직관하게 도와준다. 바이브레이터의 진동처럼 그건 그저 느껴지는 것이다.
편의점에 와인을 사러 간 레이는 한 남자를 본다. 고무 장화를 신은 노랑 머리 남자. 레이는 뚫어져라 그 남자를 바라보고, 그는 슥 스쳐가듯 그녀의 엉덩이를 건드린다. 프리 라이터 하야카와 레이와 트럭 운전사 오카베 다카토시는 그렇게 만난다. 그녀는 생각한다. ‘먹고 싶다’고. 그녀는 그의 트럭에 타고 그를 만진다. ‘만질 수 없는 것은 무섭다’고 레이는 생각한다. 그리고 길동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레이와 다카토시는 트럭의 ‘항해’를 함께 한다.
지난해 여우주연상 휩쓴 시노부의 연기 볼 만


아카사카 마리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바이브레이터>는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심심한 로드 무비다. 이 항해에는 별다른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는다. 4t 트럭의 앞좌석에 앉은 남녀의 대화와 가끔 벌어지는 섹스, 그리고 주변의 풍경뿐이다. 누군가 시비를 걸어 싸움이 일어나지도 않고, 뭔가 사고에 말려들지도 않는다.

<바이브레이터>는 작은 진동처럼 사소한 움직임과 소리 들로 가득하다. 순간의 느낌들이 검은 화면 위 자막으로 뜨고, 잡지의 광고 문구들이 말을 걸고, 무선 통신을 하는 소리들이 허공을 가득 메운다. 어떤 질서나 권위 없이, 그 모든 것들은 평등하게 흩어져 있다.
다카토시가 그토록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질서나 권위를 본능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야쿠자를 하다가 괜히 어깨에 힘주는 인간들이 싫어서 그만둔 남자. 트럭을 타고 일본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한 해를 보내는 남자. 레이는 잠이 안 와 술을 마시고 그걸 토해야만 잠이 든다. 그녀는 혼자 고립된 채 살고 있었다. 이탈되어 있었다. 그런 레이는 다카토시를 만난 후 자신 속에서 맴돌던 소리가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그 남자의 친절한 본능 덕분에 그녀는 ‘소통’이라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소통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조그만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그들은 모든 것을 말한다. 그들은 혼자였고 서로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렇게 간단한 소통이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은 누군가를 사랑했을 것이다. 만족했을 것이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그들은 발을 내디딘다. 레이의 욕망은 촉각·청각·시각 같은 아주 세밀하고 자잘한 진동으로 출발하고, 채워진다.


<바이브레이터>는 그 진동의 여운을 천천히 느끼게 해준다. 지난해 일본의 모든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데라지마 시노부의 은근한 연기는 그 욕망이 무엇인지를 시각으로 느끼게 해준다.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그걸 보고 있으면 여성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그게 <바이브레이터>의 힘이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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