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한국의 BBC’ 된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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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신임 사장, 강력한 내부 개혁·반성으로 환골탈태 자신

 
MBC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자·노조위원장 출신인 40대 최문순씨가 2월25일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노조위원장을 지낸 인물이 사장이 된 것은 MBC는 물론이고 방송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언론계에서는 앞으로 MBC가 방송계에 불어닥칠 핵폭풍의 진원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사장의 등장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언론계 전반의 세대 교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이른바 족벌 신문들과 방송의 전쟁이 본격화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1984년 MBC 기자로 입사한 최문순 사장은 <카메라 출동> <시사 매거진 2580> 등을 담당하며 보도국 사회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MBC노동조합위원장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내 진작부터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과 언론계에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결점 없는 것이 최문순 사장의 결점”

지난 2월22일 최씨를 사장으로 선임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이사장 이상희)의 한 이사는 그를 선임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방문진 이사 9명은 MBC가 큰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과거 패러다임에 젖어 있는 인물보다는 노조와도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최씨가 MBC를 개혁할 적임자라고 보았다.”

이처럼 ‘최문순 사장’을 가능케 한 최대 동력은 MBC의 위기와 구성원들의 개혁 욕구다. 구성원들이 공공연히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고 부르는 MBC 위기의 본질은 두 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시청률 저하다. 뉴스·드라마·교양 프로그램 등 어느 것 하나 경쟁사인 KBS를 확실하게 앞지르는 것이 없다. 텔레비전 시청률 조사 기관인 TNS미디어 코리아에 따르면, 2월22일 현재 시청률 상위 5개 프로그램 가운데 MBC는 3월1일자로 종영된 <영웅시대>만이 4위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4개는 모두 KBS가 차지하고 있다.

MBC 위기를 불러온 또 하나의 요인은 정체성 문제다. 공영 방송으로서 자리매김을 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무성하다. 색깔이 없이, 공익성과 상업성을 엉거주춤 버무리면서, 죽도 밥도 아닌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2003년 10월 당시 인터넷 뉴스센터 팀장을 맡고 있던 최문순 사장은 MBC 노동조합이 주최한 내부 토론회에서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MBC 보도는 주체성을 잃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2등, 3등밖에 할 수 없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내연해 오던 이런 위기감은 지난해 11월 MBC 기자회가 기수 별로 회장을 맡던 관행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직선 회장을 뽑는 사태로 발전했다. 송요훈 MBC 기자회장은 “평기자를 중심으로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졌으니 대안을 찾아보자는 말들이 나오면서 기자회 활동을 강화하자는 흐름으로 표출되었다”라고 설명했다. MBC의 한 정치부 기자는 “이때부터 소장 기자들 사이에 기존 인물 갖고는 안된다, 판을 갈아엎어야 한다, 대안을 찾자는 말들이 본격적으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말 터진 ‘명품 핸드백 사건’은 결정타였다.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신강균의 사실은> 진행자이던 신강균 앵커가 강성주 보도국장·이상호 기자와 함께 비리를 폭로한 업체의 사장으로부터 고급 핸드백을 받았다가 뒤늦게 돌려준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기존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하면서 이 때부터 물밑에서 ‘최문순 대안론’이 떠올랐다.
최사장과 함께 언론노동운동을 해 온 신학림 언론노조위원장은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데 MBC에 그만한 사람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최사장은 결점이 없는 것이 결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친화력과 추진력, 겸손함을 겸비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박강호 부위원장도 “최사장은 덕장 스타일이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남을 비판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부드러운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구성원들과 갈등 빚을 요소도 적지 않아

그러나 최사장에 대해 염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2월22일 방문진 이사들과 면접할 때 이사들은 최사장에게 크게 네 가지 우려를 나타냈다. △경영 경험이 없다 △노조위원장 이미지가 강하다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에 충격이 크다는 것이었다. 방문진의 한 이사는 “최사장은 세 후보 가운데 가장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이들 문제들에 대한 거시적인 차원의 진단과 분석과 계획을 이사들에게 체계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MBC 구성원 1천4백50명 가운데 최사장보다 나이가 많은 임직원이 2백여 명에 달하고, 그가 내세운 △임금 10% 삭감 △단일호봉제 폐지 △지방사 광역화 등 ‘10대 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을 요소도 다분하다. 이런 측면에서 MBC 노동조합이 ‘더디고 힘들더라도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을 통해 과제를 도출해야 하며, 쉽고 빨리 가려는 유혹에 흔들리는 순간 조합의 강력한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한 점이 주목된다. MBC를 출입하는 <미디어 오늘> 선 호 기자는 “조직원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느냐가 ‘최문순 개혁’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최문순 사장 체제의 MBC는 ‘색깔 있는 MBC’로 탈바꿈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평소 보도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지적해 왔다는 점에서 보도국을 중심으로 한 대폭적인 개편이 점쳐지고 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언론인 스스로의 각성’을 강조해 온 그는 “썩어 있으면서도 큰소리만 치고 반성을 안하고 있다”라며 족벌 언론들을 강하게 질타해 왔다. <카메라 출동>을 맡았을 때 후배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독종’이었다.

최사장은 2월23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내가 재임한) 3년 뒤 MBC는 세계 속의 MBC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장 직에 응모하면서 ‘원(ONE) MBC, 월드와이드 MBC’를 슬로건으로 내건 그는, 내부를 개혁하면서 MBC를 ‘한국의 BBC’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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