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속에 마시던 약술 같은 솔잎차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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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성석제의 음식정담]-솔잎차

 
산중생활에서 소나무는 특별한 존재다. 아침 해가 눈을 뜨는 곳이 소나무 우듬지이며 은밀하게 달의 배가 부르는 곳이 소나무 잎 사이다. 이처럼 일월의 기운이 서린 소나무로 기둥을 하고 서까래로 쓰고 마루를 만들어 사람이 거주한다. 진을 빼서 어둠을 밝힌다. 무엇보다 소나무의 푸르름 없이는 살 수 없다. 내가 도사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의 정기 없이 도 트기가 어렵다고 확언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도를 닦는 데도 음식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이십여 년 전에 알았다. 1986년 겨울, 한때 내가 기식하던 남쪽의 절에 달마의 도를 얻기까지 면벽 좌선하겠노라고 동굴에 들어앉은 팔십객의 노스님이 있었다. 그에게 생살을 공양하는, 아니 생쌀이 담긴 자루를 가져다주는 학생이 있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스님이 실천하는 생활의 도가 벽곡(?穀)이라는 것이고 쌀 외에는 소나무 잎을 가루내어 먹는 게 전부라는 것이었다. 내가 도 닦는 사람들이 화장실은 가는지, 염분은 섭취하지 않아도 되는지, 이불 빨래는 어떻게 하는지 묻자 학생은 못 들은 체했다.

<황성옛터> 가사가 절로 흘러나오던 '산중 송엽주'

그 대신 노스님의 피부는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고 고송처럼  면벽과 묵언으로 일관하더라고 하면서 그 앞에서 감히 입을 뗄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 사람과 세상의 위대함과 신비함을 믿는 눈으로 존경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노스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소나무 잎을 먹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존경하게 되도록 프로그램되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봄, 고향의 어느 절에 기식하게 된 나는 다시 솔잎을 먹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있던 절은 조립식 건물을 지어 고시생이나 나처럼 대책 없고 할일 없는 떠돌이를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한때 넉넉하지 못했던 비구니 사찰이었다. 그런데 이 절에 거창한 대웅전이 생긴 데는 요즘 시끄러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연이 있었다. 절 앞에 절을 중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박씨 성을 가진 공덕주를 기리는 비석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 그때는 죽은 지가 7, 8년이 된 뒤였으니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맞는 말이겠다, 의 누나였던 것이다. 그녀가 왜 그곳까지 와서 공덕을 베풀었던가.

절에서 가장 가까운 면소재지가 고향이자 KAIST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의 말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이 그 절에서 죽기 전 만년을 보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시누이가 그 절에 자주 왔던 것이고 보자보자 하니 절이 너무 추레하여 대웅전도 짓고 불상도 새로 조성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 바람에 군수며 국회의원이며 경찰서장이며 또 무슨 기관의 장들이 어떤 절보다 우선하여 ‘도(道)’를 닦아주고 뻔질나게 오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도’는 물론 자동차가 오갈 수 있는 도로이기도 하고 전화선로이기도 했으며 어쩌면 인생무상을 깨닫는 그 도일 수도 있었다. 그에 따라 공무원들이 오고 또 오가게 된 건 당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전 부인이 모두 고인이 되고 난 뒤에도, 그때 그 기관장들이 모두 정년퇴임을 하고 새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으로 바뀐 뒤에도 열심히 도를 닦던 관행에 따라 공무원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오고 또 오는 것이라고 했다. 글쎄, 그건 그 친구의 생각이고 내가 보기에 그들이 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솔잎을 먹으러 오는 것이었다. 그들이 송충이는 아니어서 잎 자체를 먹는 게 아니라 차로 마셨다. 

그 절에는 젊지만 아는 게 많은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칼날처럼 엄하다가도 때로는 요사채 마루에 비치는 햇살처럼 다사롭게 객지를 떠도는 영혼의 외로움을 위로해 주는 것이어서 이래저래 나는 그녀, 아니 누나, 아니 그 스님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스님이 말한 대로라면 솔잎으로 차를 만드는 법은 이랬다.

1) 동쪽으로 난 소나무 가지에서 아침 해가 뜨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신선한 잎을 딴다. 2) 잎을 다듬어 항아리에 솔잎과 꿀, 또는 설탕과 가지런히 넣는다 3) 끓였다 식힌 물을 부은 뒤 뚜껑을 덮어 그늘에 보관한다. 4) 적당한 시일이 흐른 뒤 항아리를 개봉해서 따뜻한 물을 타서 음용한다.

내가 마셔본 바로 솔잎차는 입에 머금으면 청량한 향기가 느껴지고 맛은 새콤한데 목구멍을 통해 차가 내려간 뒤 공기가 드나들며 향긋한 뒷맛을 남긴다. 두어 잔 마시면 얼굴에 열기가 느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몇 잔을 더 마시면 온몸에 녹작지근해지면서 ‘아 외롭다 이 내 심사’라는 가사의 <황성 옛터>가 흘러나온다. 물론 내게서 그 같은 노래가 나올 때쯤, 스님은 내 등짝을 후려치며 내 방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결론적으로 그건 속세에서 빈 속에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했다.

절에서 평소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고로 솔잎차는 조금만 마셔도 효과가 좋았다. 술이 지천인 속세에서 양복 입고 차 타고 오는 그 인간들은 뭐였는지. 길을 닦아놨다고 그렇게 마구 와도 되는 건지, 그것도 근무시간에. 내 몫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그들이 무척 미웠다. 내가 송충이도 아니면서.

알고 보니 내가 그때 마셨던 건 송엽주(松葉酒), 솔잎술이었다. 솔잎은 당분만으로도 쉽게 발효해서 술이 된다고 되어 있다. 보통 솔잎차는 발효를 기다리지 않고 솔잎을 물에 넣고 끓이거나 달여서 먹는다. 예로부터 고승들이 마셔온 차로 피로회복과 신경통과 관절염, 마비, 고혈압, 동맥경화의 예방과 치료에 쓰인다고 한다. 그 절의 경우 원래 술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술이 된 경우다. 세속의 문자로는 고의나 과실이 아니고 자연이 자연스럽게 자연 과목의 진도를 나간 것인데 거기에 운 좋은 내가 끼여든 것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송충이도 누에도 아니면서.      

진정 도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선택받은 사람이 출세간적이고 특권적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면, 살아온 날을 정리하면서 얻게 되는 작은 깨달음과 반성도 그 도의 범주 안에 든다면, 도를 트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술이 차보다 약간은 낫지 않을까. 그 절에서 솔잎차, 아니 솔잎술의 덕화를 입은 선배들이 과연 몇몇인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사족 : 최근(불타는 색깔의 식목일)에 다시 방문해보니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점이 여럿 발견되었다. 1) 대공덕주가 공덕을 베풀어 중창한 것은 대웅전이 아니고 극락보전이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전각이고 극락보전은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당우다. 개산을 한 분은 진감국사이다. 2)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이 만년을 보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이 없어 물어볼 수 없었다. 내가 있던 방도 없어졌다. 3) 박정희의 누이인 박재희 씨를 기리는 공덕비는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집(극락보전)을 지은 이가 문교부라고 되어 있고 대행이 지역의 교육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소설의 출발점이 이런 것인 줄 아신 것처럼, 고맙게도.

사족의 사족 : ‘솔잎차’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다류액상추출차’가 있다. 주의사항 참조. ‘따뜻한 곳에서는 발효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냉장고에 보관하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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