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은 권력보다 강했다
  • 최수진 통신원 (뉴욕) ()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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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명 기자 나이젤 재키스, 정치 거물 성폭행 추적 보도해 퓰리처상 받아

 
  지난해 5월6일 미국의 유력 정치인 닐 골드 슈미트가 무가 주간지의 한 이름 없는 기자와 만났다. 골드 슈미트는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교통장관을 역임하고, 1987년부터 4년간 미국 오레곤 주 주지사를 지낸 바 있는 거물이었다. 그가 만난 기자는 나이젤 재키스로, 그는 골드 슈미트의 정치 생명을 한방에 날려버릴 특종거리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30년 전 골드 슈미트가 미성년자를 성폭행했음을 폭로하는 기사였다. 나이젤 재키스는 골드 슈미트를 만나기 하루 전, 팩스로 그의 사무실에 기사를 요약해 보내 반론을 요청해 놓았다. 다급해진 그는 마침내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로 담당 기자와 마크 저크맨 편집장을 초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모임에는 나이젤 제키스와 편집장·골드 슈미트 외에 슈미트측 변호사와 성폭행 피해 여성 변호인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골드 슈미트측은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관련 기사를 보도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덧붙여 그는 오레곤 주 고등교육위원 직을 비롯해 여러 공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24시간 안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사퇴 성명서에는 14세 소녀에 대한 성폭행 사실과, 이에 대한 참회의 말이 언급될 것이라는 슈미트측 변호인의 설명으로, 모임은 끝났다. 회의를 마친 시간은 11시 45분. 골드 슈미트측은 15분 뒤인 정오, 약속대로 공직 사퇴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성명서에는 또 다른 약속, 즉 자신의 성폭행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단 한줄의 언급도 없었다.

골드 슈미트 참회 안하자 기사 게재

  골드 슈미트측의 거짓말은 그대로 나이젤 재키스라는 무명 기자에게, 미국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퓰리처상을 안겨주는 계기가 됐다. 월러메트 지는 성명서가 나간 직후, 먼저 인터넷 판을 통해 요약된 기사를 내보내고, 기사 전문이 다음주 판에 나갈 것이라는 안내문도 게재했다. 잠시 뒤 이 기사는 미국 전역의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을 통해 ‘속보’로 전해졌다. 다른 언론 매체로부터 확인 전화가 쇄도하는 가운데, 골드 슈미트는 오후3시, 오레곤의 유력 일간지 <오레고니안> 편집장과 회동했고, 오레고니안은 오후 7시 인터넷판에 ‘골드 슈미트, 여고생 성학대 혐의 시인’ 소식을 전했다.

  
 
이같은 소동이 있고서 약 11개월이 경과한 지난 4월초 재키스 기자는 골드 슈미트 기사로 퓰리청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기사는 30년 전 미국 포트랜드 시장이었던 골드 슈미트로부터 3년간에 걸쳐 성 학대를 받아온 14세 소녀의 불행한 삶과, 자신의 범죄를 30년간 숨기면서 공인으로서 승승장구한 골드 슈미트의 인생을 비교해 전하고 있다. 당시의 성폭행 피해자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밤마다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14살 때(1970년대 후반) 골드 슈미트 집의 보모로 고용되면서 변을 당했다. 이 여성의 오랜 친구는 골드 슈미트가 당시 14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소녀를 지하실과 모텔 등지로 데리고 다니면서 ‘다른 용도’로 이용했다고 증언했다. 오레곤 주 법에 따르면,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 행위를 할 경우, 상대 성인은 성폭행 범죄로 처벌받게 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A학점만 받아왔던 이 모범 소녀는 골드 슈미트로부터 입은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27살이 되던 1988년에는 또 다른 성폭행 범죄 피해자가 됐고,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피해 여성이 14살 때부터 3년간 지역의 유력 정치인의 ‘성 노리개’가 되어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됐다.

   1990년 골드 슈미트는 주지사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었다. 이 때 자신의 성폭행 사실은 재선 가도에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했다. 1988년 성폭행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피해 여성의 상담 내용을 법정 증거로 채택할 것이냐의 여부가 법정에 계류중이었고, 1990년 선거를 앞두고 있던 골드 슈미트는 상담 내용이 증거로 채택될 경우 수십년간 숨겼던 비밀이 탄로날 판이었다. 결국 그는 주지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떠났다. 그 뒤 미국 정가에서는 왜 한창 나이인 49살에 골드 슈미트가 정계를 떠났는지가 오랜 수수께끼였다. 그 비밀이 바로 지난해에 밝혀진 것이다.

  한편 골드 슈미트의 성폭행 피해자는 1990년대 마약과 알콜 중독자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33살 되던 해인 1944년, 골드 슈미트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로 하고 변호인까지 선임했다. 하지만 양측 사이에서는 25만 달러를 받고 입을 닫는다는 합의가 성립됐다.
  영원히 묻힐 것 같았던 골드 슈미트의 범죄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골드 슈미트 사건’으로 2005년도 탐사 취재 부문 퓰리처상을 탄 나이젤 재키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성폭행 사건이 수십년간 곡절이 있었듯이 나이젤 재키스의 기자 인생도 결코 평범치 않아, 퓰리처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인은 그에게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35살이 되어서야 언론에 뜻을 품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늦깍이 기자다. 그는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언론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기 전까지는 11년간 미국 월가에서 석유 거래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비로소 ‘기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98년 월러메트 위크에 몸담게 되면서부터였다.

기자 4명뿐인 지역 무가 주간지 ‘대박’ 터뜨려
 
월러메트 위크는 1주일에 한권씩 발행되는 무가 주간지로, 자사 직원 가운데 퓰리처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창사 30년만에 처음 있는 경사이다. 월러메트 위크는 취재 기자가 단 4명에 불과할 정도로 사세가 초라하다. 윌러메트 위크는 독특한 록 밴드 소개 기사, 음식 맛 좋은 식당 소개, 데이트 상대를 찾는 남녀 광고, 에스코트 서비스 광고 등을 주로 다루는 전형저인 로컬 주간지이다.

  하지만 월로매트는 일반 로컬 주간지들이 ‘취재 인력 부족’을 이유로 다루기를 꺼리는 이슈들에도 나름대로 관심을 쏟아왔고, 심층 보도물도 꾸준히 실어왔다고 마크 저스만 편집장은 설명했다. 집요하고 끈질긴 추적 끝에 30년 전의 잊혀진 성 폭행 사건을 ‘현재 진행형’의 메카톤급 폭로 기사로 바꿔놓은 나이젤 재키스의 ‘재주’가 괜히 나오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골드 슈미트의 성폭행 사실이 사건으로 기록되듯이, ‘기자 같지도 않은 기자’ 나이젤 제키스가 그의 파렴치를 추적·폭로해 풀리쳐상을 거머진 사실도 미국 언론계에서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퓰리처상은 한마디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출신 기자들의 독식 무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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