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을 좇는 고통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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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특종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누군가 특종을 한 건 터뜨리면 편집국은 집단적으로 마약을 맞은 것과 같은 흥분 상태에 빠진다. 얼마 동안은 특종을 한 기자뿐만 아니라 기자들 전체가 ‘업’되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붕붕 날아다닌다. 기자란 숙명적으로 특종을 먹고 사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숲이 우거지면 뿌리도 깊다고 했던가. 파장이 큰 특종을 좇다 보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종의 무게 만큼 스트레스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취재원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자기가 지금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 건지 끊임 없이 회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처남인 민경찬씨 사건을 보도했을 때(<시사저널> )가 그랬다. 민경찬씨와 수 차례 직접 인터뷰하고, 수십 번이나 녹취 기록을 확인했지만 민씨가 혹시 어떤 다른 의도에서 ‘민경찬 펀드를 조성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계속 고민해야 했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은 민경찬씨를 조사한 뒤 민씨가 <시사저널>에 보도된 내용 그대로 인터뷰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이다. 
 

 
<시사저널>은 지난호 커버 스토리에서 전 중앙정보부 특수공작원의 증언을 토대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 외곽의 양계장에서 살해되었다’고 보도했다(사진). 이 커버 스토리를 내놓기 전에도, 그리고 내놓고 난 지금도 과연 우리는 진실에 접근했는지 고통스럽게 검증하고 있다. 취재원과의 오랜 접촉을 통해 그가 상당한 진실을 얘기한다고 믿고 보도했지만 기자의 희망과 사실은 간혹 배치되기 때문이다.
 
사건이 힘 있는 기관과 얽힐 경우에는 묘하게 꼬이고 김이 빠지는 것도 진실 규명을 어렵게 만든다. 사실 민경찬씨 사건에 대해 경찰과 검찰이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고 믿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과거 공동경비구역(JSA)에서의 김 훈 중위 의문사(<시사저널> )에 대해 국방부가 그랬듯이 국정원 역시 과거사 규명에는 뜻이 없어 보인다. 김형욱 관련 보도가 나간 뒤 국정원은 다소 냉소적인 논평만을 냈을 뿐이다. 지금도 국방부나 국정원이 과거사에 다가서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한 인상을 받고 섬뜩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어떤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특종 욕심을 버릴 수야 없다. 그것이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본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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