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의 해결사 “북핵 문제 자신있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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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는 부산의 명산 금정산의 품에 안겨 있었다. 3국 통일의 주역 신라 문무왕이 동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쫓기 위해 의상대사로 하여금 기도를 올리게 했다는 장소인 고당봉은 범어사 뒤편에 우뚝 솟아 있었다. 의상대사가 7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를 올린 끝에 천신의 도움으로 왜구는 풍비박산이 났다.

범어사 연수부장 혜수 스님의 열띤 설명을 경청하던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의 얼굴에 특유의 장난기가 번졌다. 그는 “천신의 도움으로 북한 핵 문제도 단번에 해결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힐 대사의 이번 범어사 방문은 벼르고 벼른 끝에 이루어졌다.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기 전 그는 부산의 한 지인에게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에 적당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때 지인이 범어사를 추천했다. 대사로 부임한 그는 스태프에게 부산 갈 일 있으면 범어사를 꼭 일정에 넣으라고 당부해 두었다.

그러나 그의 범어사행은 긴박해진 북핵 문제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원래 미국대사관 내부 행사로 기획되었는데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면서 부산이 졸지에 6자 회담에 대한 ‘미국발 뉴스’의 진원지가 되었다. 지난 2월22일 첫날 일정은 이미 짜인 지역 행사들 외에, 6자 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기세 싸움을 벌였다. 때마침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통해 전달된 김위원장의 ‘조건부 6자 회담 복귀’ 의사에 대해 그는 ‘일단 회담에 복귀해 얘기하자’고 맞받아쳤다.

 
이날 오후 4시30분. 범어사에 도착할 즈음 힐 대사는 하루 종일 반복된 ‘6자 회담 입장 표명’에 지쳐 있었다. “범어사는 오늘 나에게 하루 휴식을 주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1주일, 아니 한 달 간의 휴식을 미리 제공했다.” 발우 공양에 앞서 전통 다도로 힐 대사를 접대한 총무부장 범산 스님에게 건넨 그의 인사말에는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다.
‘미국 국무부가 배출한 최고의 협상 전문가’ ‘국무부의 슈퍼스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비장의 카드’. 그에게 주어진 찬사들은 주로 1980년대 동유럽과 1990년대 발칸, 그리고 전임지였던 폴란드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상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국무부 표창을 받았고, 폴란드 대사 시절 3천여 명의 폴란드군을 이라크에 파견토록 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클리퍼드 목장에 초청받는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인 국제 외교 무대에서 단련된 그에게 한국 전통 사찰의 멋과 풍광, 그리고 엄격한 절차로 치러진 발우공양은 어떤 의미였을까. 약 30분간 까다로운 형식 때문에 마치 벌쓰는 사람처럼 쩔쩔매며 공양하던 그에게 슬쩍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았다. 아주 아름다운 식사법이다.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곁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냉정한 협상가만은 아니었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아도, 힐 대사 자신이 그렇게 비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자신을 ‘한·미 관계와 6자 회담, 북핵 문제’ 등 딱딱한 문제에만 결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문화와 예술과 스포츠를 좋아하며 틀이나 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보보스(bobos)’ 스타일의 자유분방함과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적 풍모 넘치는 협상의 귀재

그는 미국 외교관들 중에서도 ‘친한반도적’ 감수성을 지닌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1985년부터 3년간 한국에 근무했던 것이 중요한 계기였겠지만, 그 이전에 스티븐 솔라즈 하원의원의 스태프로 활약하던 시절부터 이미 한반도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이 겉치레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해, 스스로 수평적 한·미 관계를 실천하는 인물’이라고 평가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곁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의 인간적 풍모와 협상 전문가로서의 명성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그의 부산 방문을 12시간 동안 동행 취재하면서 그 둘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분쟁 지역에서 발휘해온 협상력은 그 사회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접근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3자의 처지에서 보면 힐 대사의 이번 부산 방문은 무리한 여행이었다. 6자 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 있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한·미·일 정책협의가 서울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는 등 빡빡한 일정이 숨가쁘게 전개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대사관에 힐 대사를 근접해서 취재하고 싶다고 요청해, 바로 1주일 전 동행 취재 동의를 받았지만, 내심으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대사관 내부 행사에 기자의 동행을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대사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파격적인 면모는 비행기 탑승 때부터 관찰되었다. 그는 일등석이 아니라 일반석에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 앉았다. 행사 진행을 맡고 있는 대사관 공보과 가브리엘 씨에게 물었더니 “항공사측이 좌석이 남으면 업그레이드해 주기도 하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일반석을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이나 대학 교수만 되어도 일등석을 고집하는 나라에서, 세계 최강대국 대사가 비좁은 일반석에 앉는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2월22일 첫날 행사는 언뜻 보기에 특별하지 않았다. 이튿날 부산시장 면담이나 미군부대 방문 일정이 있긴 하지만, 첫날 일정에는 하다못해 지역 국회의원이나 상공회의소 임원 등 이른바 지역 유지가 참석하는 행사가 하나도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도착하자마자 유엔 묘역을 참배한 것은 그렇다 치고, 카페리 타고 부산항 둘러보고, 부산 시립도서관 한귀퉁이에 세 들어 있는 아메리칸 코너 개소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카페 USA’에 글을 올리고, 오후에 범어사를 찾은 것이 이날 일정의 전부였다.
친미 기득권층 대신 네티즌·서민 만나

첫날 행사의 면면으로 보아서는 이 엄중한 시기에 굳이 그가 부산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힐 대사의 진면목이 있다. 그의 이번 부산 방문 일정은 원래 아메리칸 코너 개소 1주년 기념식에 맞추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메리칸 코너란 부산 미국문화원이 없어진 이후 미국에서 발행되는 책자나 DVD 등을 지역 시민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문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소규모 문화 공간 사업이, 지난해 8월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이후 포털 사이트 다음에 ‘카페 USA’를 개설한 것과 함께 그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일이었다.

이 두 사업의 공통점은, 그동안 주한 미국대사들이 주로 접촉해온 ‘단골 손님’들과는 전혀 다른 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 사회의 친미 보수 기득권층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그동안의 주요 접촉 대상이었다면, 힐 대사는 그들과는 다른 네티즌과 일반 시민 그리고 언론을 주요 접촉 대상으로 설정했다.
그중에서도 ‘카페 USA’를 통한 네티즌과의 직접 접촉은 힐 대사가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이다.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바쁜 일정에서도, 공보과에서 올리는 네티즌들의 요약된 의견을 거의 매일 읽고 답변한다.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광주 5·18 묘역 참배 역시 광주 아메리칸 코너 개소식에 맞추어 이루어졌던 데서도 알 수 있듯, 광주·부산에 이어 대구 지역 시민들과도 접촉할 계획이다.

러시아 농민운동가들이 제창했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을 연상케 하는 그의 현장접근법은, 격식이나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그의 자신만만하고 개방적 품성에 기인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환기에 처한 한·미 관계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한·미 관계의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그의 기질이 꿈틀댔다고 한다. 한반도는 그에게 익숙한 곳이었고, 그의 전임지인 폴란드야말로 ‘유럽 속의 한반도’라고 할 정도로 지정학적 운명이 한반도와 매우 닮은 곳이었다.

그가 다시 찾은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 그리고 세대 교체를 겪은 뒤여서 더 이상 과거의 한국이 아니었다. 정치·군사 등 특정 이슈에 특정 집단만 접촉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한·미 관계의 영역 또한 경제와 문화, 인터넷, 인적 교류 등 다변화한 만큼 다양한 접근 채널이 필요했다. 힐 대사가 부산항에서 카페리를 타고 유람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태평양 시대를 염두에 두며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5위인 부산항을 경제적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범어사 방문 역시 문화를 통한 접근이라는 코드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주한 미국대사와 대사관, 그리고 한·미 관계에 대한 이미지를 짧은 기간 내에 바꾸어놓은 그의 이같은 유연한 역발상이 앞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발휘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사로서 그에게 쏠리는 기대는 벌써부터 상당히 커져 있다. 미국 국무부에서는 ‘슈퍼스타가 투입되었으니 이제 안심이다’라는 표현에서부터, 북한으로서도 최상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는 평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그가 6자 회담 수석대표로 임명되자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인물이 선택되었다’고 평했다. 미국의 북핵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국내 전문가들도 그를 네오콘들과는 유전 형질이 다른 인물로 파악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징표로 읽는 것이다.
“창의적으로 유연하게 북핵 문제 해결”
이번 부산 방문 길에 그는 ‘북핵 불용과 회담 복귀’라는 메시지를 거듭 천명하면서도 ‘창의적(imaginatively)으로 유연하게(flexibly), 그리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표명했다. 주변에서는 그가 사용한 ‘imaginatively’는 ‘creatively’(창조적으로)보다 훨씬 강한 표현이라며 주목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겠다는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기만 하면 회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특유의 격식 파괴를 통해 실질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6자 회담 수석대표 내정설이 떠돌던 지난 2월 초 워싱턴을 방문하고 돌아온 힐 대사는 ‘flexibly’라는 단어와 ‘반드시 해결하겠다’ 또는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표현을 부쩍 많이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으로부터 이미 전권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이 6자 회담에 아직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측 6자 회담 수석대표인 힐 대사가 답할 수 있는 범위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에게 다소 범위를 벗어나는 질문들을 던졌으나 그는 노련하게 받아넘겼다. 인터뷰는 2월22일 범어사 대웅전 안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범어사에 대한 인상은?
굉장히 특별하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결합하는 의미 있는 장소다. 건축·예술·역사가 녹아 있는 장소다. 미국인들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꼭 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오전 유엔 묘역 방문에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 한반도에는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한반도의 평화 체제가 아직 미완 상태로 남아 있어 유감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 사회에 대한 적대 행위로서 우리가 이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투자해왔고 계속해서 투자를 할 것이다. 이제 결실을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발칸 분쟁의 중재자로서 명성이 높다. 분쟁 조정의 철학은 무엇인가?
우선 한국에 대사로 부임하게 된 것은 한국과 미국의 특별한 외교 관계를 증진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동북아에서는 북핵 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는 겸허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됐을 것이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임하려고 한다. 발칸에서 나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 이번에는 협상가 역할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스킬(기술)은 똑같다.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인식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해나가겠다.

발칸과 한반도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분쟁을 겪어 왔다는 점에서,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어느 쪽이 분쟁을 해결하기가 더 쉬운가?
발칸 문제가 해결하기 더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발칸에서는 누구도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고 추진한 적이 없었다.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동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사한 점이 있다면, 북핵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문제들은 무시하면 스스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이번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나라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자신이 희생자인 양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발칸에서 북한 규모의 10분의 1도 안되는 국가를 상대한 적이 있다. 그러한 나라 그 어느 곳도 핵무기를 개발하지는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의 접촉에서 미국이 좀더 성의있게 나와 주기를 촉구했다.
일단 우리는 중국측으로부터 중국·북한 회담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듣기를 바란다. 중국측의 브리핑을 지금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제3차 6자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에 제안한 바가 있고, 이 제안에 대해 북한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이상 어떤 성의를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6자 회담이 북한의 국제 사회 진입을 위한 문이 될 수도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6자 회담이 개최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격 협상이라든지 언론 보도자료를 통한 협상은 관심이 없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국이 북한을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정권의 이같은 정책으로 인해 북한의 경제 지표가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나는 북한 지도부가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 지금 북한 지도부는 혹시나 미국이 북한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를 파악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이런 에너지를 다른 데 사용하기를 바란다.

미국보다는 중국이 중재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국제 사회에서 중국은 굿캅(good cop), 미국은 배드 캅(bad cop)으로 비치고 있다. 문제 가 있는 것 아닌가?
북한은 세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 관계를 맺은 소수 중의 하나가 중국이다. 다른 나라보다 중국과 가깝고 경제 교류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장소는 회담장이라고 생각한다.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담판할 용의는 없는가?
현재 시점에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북한이 회담장 안으로 들어와서 협상을 하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얘기했지만 6자 회담은 정말로 광범위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6자 회담 틀 안에서 여러 가지 이니셔티브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스 국무장관 체제가 등장하면서 미국이 일단 6자 회담이 열리면 북·미 양자 접촉을 그 전에 비해 강화할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있어 왔다. 북한은 그동안 6자 회담에 참석해도 미국이 양자 접촉에 아무런 성의를 표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다. 북한과 양자 접촉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계획이 있나?
 우선 협상을 재개하는 것에 주력하겠다. 그 이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추측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북한은 아직까지 회담장으로 돌아오겠다고 합의하지 않고 있다. 지금 현재 북한이 협상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오는 11월 부산 아펙 회의 전까지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초청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보는가?
북한 핵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언제 해결될지 예측할 수는 없다. 또한 북한이 어떤 회의에 초대될지 추측할 수도 없다. 북한이 초대된 확실한 회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6자 회담이다.

지난 2월21일 외국어대학 총동창회가 주최한 연설에서 아시아 다자 체제의 모델로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라이스 국무장관이 6자 회담 이후의 틀로 구상하고 있다는 동북아안보공동체와 같은 맥락인가?
단어 하나하나를 따지기보다는 전반적인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다자적인 체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얘기다. 현시점에서 6자 회담이 어떤 다자적 체제로 이어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다만 주안점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이런 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핵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6자 회담이 미래에 더 긍정적인 기회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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