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모델 혁신한 ‘2.5차 기업’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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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소기업④] 주식회사 손오공

 

회사 이름이 ‘손오공’이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 피식피식 웃거나 심지어 ‘사오정이냐’고 희화화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손오공을 얕보았다가는 큰코다친다. 손오공은 한마디로 그저 그런 장난감 회사가 아니다. 이 회사에는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성이라는 거창한 라벨이 붙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국내 산업의 재도약 방안-0.5차 더하기’라는 보고서에서 손오공을 대표적인 ‘2.5차 기업’으로 내세웠다. 완구 제조라는 기존 산업(2차)에 애니메이션과 게임 같은 뉴미디어를 융·복합화하는 0.5차 더하기로 고부가가치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서울시 구로구 궁동 손오공 사옥에서 만난 최신규 사장(49)은 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라고 불렀다. 장난감에 애니메이션·게임·캐릭터 같은 문화 콘텐츠를 연계해 상승 효과를 꾀한다는 이 원 소스 멀티 유즈는 손오공의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성공 사례이자 손오공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2001년에 내놓은 ‘탑 블레이드’다. 팽이(top)에 칼날(blade)을 단 장난감일 뿐인 이 상품이 손오공의 최대 히트작이 된 비결은 물론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 고향에 내려간 최사장은 아이들이 팽이 치는 모습을 보면서 완구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완구개발팀에서 시제품 제작이 2000년 4월에 끝났지만, 최사장은 상품을 바로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 일본 완구 업체인 다라이쓰 사에 합작을 타진했고, 시제품 캐릭터를 활용해 이 회사와 공동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투자비 60억원 가운데 손오공이 댄 것은 20억원. 마침내 2001년 2월 먼저 일본 TV 도쿄에서 ‘베이 블레이드’라는 이름으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고, 국내에서도 그 해 10월 SBS 전파를 탔다. ‘Go Go 탑블레이드’를 외치는  주인공 캐릭터가 어린이들 사이에 알려지자 최사장은 탑블레이드 완구를 시장에 확 풀었다. 방영 1개월 후였다.

장 반응은 한마디로 뜨거웠다. 애니메이션에서 본 팽이를 사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부모들이 지갑을 열자 탑블레이드 완구는 날개돋친 듯 팔렸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탑블레이드는 1천5백만개가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완구 업계에서 단일 품목으로는 유례가 없는 기록이었다. 완구에서 문구·과자·신발 같은 어린이 상품들에도 탑블레이드 캐릭터가 쓰여 탑블레이드는 이른바 후방 산업 효과도 가져왔다. 이런 후방 산업 효과까지 감안하면 탑블레이드가 1천억원대 부가 가치를 창출했다는 것이 손오공 유연상 홍보팀장의 설명이다.

탑블레이드라는 캐릭터가 롱런한 것은 끊임없이 어린이들의 관심을 탑블레이드에 묶어두려는 시리즈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방영이 끝나기 무섭게 PC게임을 내놓아 관심을 이어갔으며, 2002년에는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한  ‘탑블레이드 V’, 2003년에는 ‘G블레이드’를 고안해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만들어 시차를 두고 파상 공세를 펼친 것이다. 이 제품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까지 고객을 확대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탑블레이드의 성공은 손오공에 많은 이득을 남겼다. 손오공은 이 제품으로 3년간 7백억원대 수익을 얻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완구 업체 1위 자리를 굳혔다. 손오공과 최사장에게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 획기적인 사업 모델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무엇보다 큰 이득이었다. 최사장이 이 전략을 처음 시도해본 것이 탑블레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오공의 여의봉은 탑블레이드”

손오공이 출범한 1996년 최사장은 첫 작품으로 ‘영혼 기병 라젠카’를 내놓았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완구 개발비와 애니메이션 제작비 26억원을 고스란히 날린 것은 물론 기획력 부족이라는 절망을 맛보았던 것이다. 절치부심한 최사장은 1999년과 2000년 각각 ‘붐이담이 부릉부릉’과 ‘하얀 마음 백구’를 개발해 만회에 나섰다. 역시 먼저 텔레비전에서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후 완구를 내놓는 전략을 썼다. 호응이 꽤 있었지만, 최사장의 성에 차지는 않았다.

 

최사장은 “‘하얀 마음 백구’는 성공 사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능성을 주었지만, 역시 손오공의 여의봉은 탑블레이드였다. 탑블레이드의 성공은 후속 작품이자 현재 주력 품목인 ‘구슬대전 베틀 비드맨’의 강력한 엔진 구실을 했다”라고 말했다.

손오공은 무려 1천여 가지 장난감을 생산하는 완구 회사이지만, 애니메이션· 게임 기획 제작 회사로 변신 중이다. 이미 개발 인력도 크게 늘렸다. 아직 완구류 매출 비중이 65%나 되고, 애니메이션과 게임 비중은 각각 10%, 15%에 그치지만, 최사장은 올해 특히 게임 비중이 40%로 치솟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매출액이 지난해 5백38억원에 그쳤지만올해 목표치를 무려 8백80억원으로 잡은 것도 게임 분야가 급신장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스타 크래프트>로 유명한 세계적인 게임 회사 블리자드의 게임 캐릭터 판권을 갖고 있는 손오공은 특히 올 1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국내 PC방 독점 영업권을 획득하면서 큰 폭의 이익을 낼 것으로 보는 것이다.

최사장이 손오공을 애니메이션 게임 기획·제작사로 변화시킨 데에는 그동안 그가 문화 콘텐츠 산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내공이 밑걸음이 되었다. 최사장은 회사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1990년대 후반부터 <TV 동화 행복한 세상> <하얀 마음 백구> <오세암> 같은 텔레비전과 극장용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원했다. SF 영화 <용가리>를 후원하기도 했다. 게임 리그를 개최하는 등 게임 분야에도 공을 들였다.

1987년 창업한 서울화학까지 따지면 최사장이 장난감 회사를 경영한 지 20년 가깝지만, 그는 아직도 사장보다 개발자로 불리기를 원한다. 빈한하게 태어나 열세 살 때부터 독한 염산 냄새를 맡으며 금세공 기술을 배워야 했던 가정 환경 탓도 있지만, 그는 그의 아이디어가 제품화하는 것에 온통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관찰하고 끊임없이 왜 그럴까를 생각하는 것이 버릇이자 취미인 사람이다.

최사장이 5월께 선보일 2005년 야심작은 컴퓨터 칩을 구동시킨 ‘어떤 상품군’인데, 그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 더 진화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손오공의 비전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콘텐츠와 공간을 제공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손오공의 변화무쌍한 변신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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