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여 서울을 떠나라
  • 전상일 (환경보건학박사) (www.enh21.org))
  • 승인 2005.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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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사망과 대기 오염 관련 깊어…저체중아 출산·조산에도 영향 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렵고, 처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반이란 말로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잘못된 시작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어머니, 왜 절 이렇게 낳으셨어요?’ 하는 신파조의 드라마 대사에 쓴웃음을 날려보았다면, 임신·출산 과정의 비가역성에 대해서도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이 시기가 사람의 건강 수준을 결정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출생 결함(birth defect:비정상이라는 폭력적인 꼬리표와 붙어다니기 일쑤인 ‘기형아’뿐만 아니라 저체중아, 조산아까지도 포함)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대기 오염이 인체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가 점점 축적되면서 연구 대상의 나이 스펙트럼도 양쪽 끝인 신생아·어린이와 노인에까지 넓어졌다. 이들이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 민감한 그룹이기 때문이라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그런 점에서 임신 결과(pregnancy out come), 즉 어떤 상태의 아기가 태어나는가에 과연 대기 오염이 영향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오염 물질이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지가 최근 매우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담배연기 한 모금에도 벌벌 떨며 호시탐탐 공기 좋은 동네로 이사 가려는 임산부들을 그저 유별나다 하고 말 것인가?   

 증거 없는 건강 상식은 섣불리 믿지 않겠다는 현명한 독자들에게 선사할 총정리 노트가 저명한 환경 보건 학술지 최신호에 소개되었다(“Ambient Air Pollution and Pregnancy Outcomes : A Review of the literature,”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 vol.113, 2005년 4월호). 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대기 오염과 임신, 아기의 건강에 대한 전세계 논문들을 모두 찾아 분석한 것이다. 

 그 자료에 따르면, 태어난 지 1년 안에 일어나는 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과 돌연사 등은 대기 오염과 깊은 관련이 있다. 2003년에 발표된 우리 나라 사례를 하나 들자면, 서울의 대기 오염과 신생아 후기(생후 4주~1년) 사망률은 대기 오염과 뚜렷한 연관성이 있었다. 직경이 10㎛ 이하인 미세 분진(PM10)의 농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아기의 사망률은 18%씩 올라갔다.

미세 분진은 현대판 저승사자

 대기 오염은 '저체중아 출산’에도 영향을 준다. 역시 서울에서 1996년과 1997년 사이에 달을 꽉 채워 태어난 아기들 중 2.5kg 미만의 저체중아를 조사해보니, 산모가 일산화탄소·이산화질소· 이산화황· 총 부유 분진과 같은 대기 오염 물질에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조산할 위험은 일산화탄소·미세분진과 관련이 있다. 임신 개월별 기준 체중이 하위 10%에 해당할 만큼 극도로 태아 성장이 부진한 ‘자궁 내 성장 지연’도 산모가 미세 분진에 많이 노출될수록 발생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산과 자궁 내 성장 지연에 대해서는 호흡기 질환에 의한 영아 사망률만큼 대기 오염과의 인과 관계를 확신하기에는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다지만, 곧 심증 단계를 넘어서리라 전망한다. 온 나라가 공사 중이다. 건설 현장 먼지도 모자라서 지난 주에는 올 들어 최악의 황사가 몰려왔다. 디젤 승용차의 본격 국내 출시도 코앞에 닥쳤다. 경유차와 같은 '미세 분진 공장'이 도로를 질주할 것을 생각하니 텁텁한 입안이 숫제 씁쓸해진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임신 초기 두어 달까지가 대기 오염의 위협에 가장 민감한 것으로 여긴다. 제일 혐의가 가는 오염 물질은 미세 분진이다. 처음이 중요한데, 이렇게 처음부터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아이들에게서 빼앗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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