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까지 남는다는 것은 고통”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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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2학년 때 명문대 진학 확정…자살한 ㅅ고 이군도 열패감 못이겨

 
ㅎ고 이군의 가족보다 이틀 먼저 자살한 ㅅ과학고 이 아무개군(18·3학년)은 ㅎ고 이군과 같은 나이, 같은 학년에 비슷한 명문고 재학생이라는 점이 주목되었다. 그는 4월10일 새벽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7층 높이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주차된 대형 자동차 보닛을 찌그려뜨린 뒤 인도에 떨어졌다. 오전 1시50분께 경비원에게 발견되었을 때는 숨진 상태였다. 유서에는 ‘엄마 맘 편히 사세요’라고 썼다. 투신 직전까지 풀고 있던 수학 문제지 뒷면의 여백이 유서 종이로 쓰였다.

ㅅ과학고 이군의 고등학교 생활은 ㅎ고 이군의 삶과 극단적으로 반대 방향이었다. ㅎ고 이군은 학생회장을 맡던 친구에게 피해 의식을 느꼈다는데, ㅅ고 이군은 바로 전교 학생회장이었다. CF 모델 출신의 얼짱이었고, 운동도 잘해서 학내 농구 스타였다. 학교 밴드부 소속으로 드럼과 실로폰을 연주했다. 지구과학 과목 실력이 뛰어나 국내 올림피아드에 입상할 정도였다.

그의 유일한 실패는 2학년 때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부 진학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조기 진학 스트레스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과학고만의 특징이다. 이군의 동기 1백50명 가운데 1백10여명이 이미 2학년 때 대학에 진학했다. 3학년까지 남은 학생은 33명이다. 한 ㅅ과학고 졸업생은 “3학년까지 남는다는 것은 재수생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3학년이 맡는 전교 학생회장 자리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명예롭지 않을 수 있다. 이군은 3월 30일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전교 10등대에서 20등대로 떨어졌는데, 전교생의 절반 밑으로 떨어진 셈이다.

ㅅ과학고 이군과 ㅎ고 이군의 사례는 비록 대조적이지만 ‘영재고등학교 증후군’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닮았다. 10년 전 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한 ㄱ과학고 졸업생 이상민씨(30)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4년에 한국과학기술원 입학 시험에 실패했다. 당시 50여명이 진학하고 7명이 떨어졌다. 입학 동기보다 처진다는 느낌은 재수하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이다. 마라톤 코스에서 벗어나버린 기분이다.” 이씨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전자과 박사 과정에 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니 1년 늦는 게 인생에서 별 차이가 아니었다. 후배들이 너무 주위만 보지 말고 여유 있게 사고하기를 바란다”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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