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혁신에 ‘올인’하는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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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임채청 체제 ‘출사표’…경영진 리더십·기자들 의식이 재도약의 관건

 
찻잔 속의 태풍인가, 아니면 크나큰 변화의 시작인가. 동아일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임채청 편집국장(47) 체제가 들어서면서 동아일보가 언론계 안팎에서 주목되고 있다. 전임 이규민 편집국장보다 10기수 후배인 그의 등장은 동아일보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전격적이고 혁신적인 처방이 내려진 것이다. 동아일보에 40대 편집국장이 등장한 것은 1980년 이후 처음이다.

동아일보의 변화가 주목되는 이유는 우선 이 신문이 조선일보·중앙일보와 더불어 보수·메이저 신문의 삼각 편대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임국장의 등장 이후 동아일보 논조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변화를 불러온 원동력이 경영진이 아닌 기자총회에서 나왔다는 점도 앞으로의 흐름과 관련해 눈길을 잡아끈다. 기자협회보는 이를 ‘평기자들의 명예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김병관 전 회장의 아들인 김재호 전무 체제가 확실하게 굳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주목된다.

불꽃은 지난 4월11일 기자총회에서 점화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사옥 21층 대강당에 모인 동아일보 편집국 소속 평기자(전체 1백45명) 1백17명은 저녁 7시부터 밤 11시20분까지 장장 4시간 20분 동안 난상 토론을 벌였다. 60명 이상이 발언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이 날 기자총회는 4년 만에 열렸다. 2001년 7월 열린 기자총회가 국세청 세무 조사라는 외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열렸다면, 이번 기자총회에서는 내부 문제가 더 화두가 되었다. 4년 전 기자총회에서는 대응 수위를 놓고 기자들이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똘똘 뭉쳤다는 점도 차이다. 지난 4년간 동아일보 내부에서 문제 의식이 더욱 심화되어 왔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 밑바탕에는 신문 산업 전반에 대한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갈수록 좁아지는 입지,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 생존을 위한 광고 수주 경쟁 속에서 ‘기자’로서의 존재 자체를 회의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산업의 위기가 회사의 위기, 나아가 기자의 위기로 이어지면서 병이 깊어졌다.

하지만 이것이 동아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왜 동아일보 기자들만 기자총회를 연 것일까. 한 동아일보 기자는 “경쟁지에 비해 동아일보 기자들이 깨어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기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이 작성한 결의문에는 ‘기자가 신문 제작 과정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주체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주체성 회복 선언’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다.

그러나 기자총회가 열린 직접 계기는 기자들의 잇단 이직 사태였다. 최근 2년간 30명이 넘는 기자들이 동아일보를 떠났다. 그것도 한창 현장을 뛰어야 하는 10년차 이하 기자들이 많았다. 특히 최근 7년도 안 된 기자들 3명이 잇달아 회사를 그만둔 것이 기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한 동아일보 기자는 “남의 일처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가 도처에서 나왔다. 한번 모여서 이야기를 하자는 사발통문이 순식간에 돌았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들 잇단 이직 사태로 위기감

기자총회에서는 살아 있는 목소리들이 분출했다. 세무 조사 때 벌어졌던 김병관 전 회장 부인의 자살 사건, 좋지 않은 경제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억눌려 왔던 목소리들이었다. “우리도 기자답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데스크나 국장이 무서워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던 부분이 있다”라는 자기 반성이 먼저 나왔다. 회사 발전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요구하자, 새로운 인사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토론의 핵심은 ‘편집국장 재신임’ 문제였다.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숫자를 셀 필요가 없을 정도로 참석자의 압도적인 다수가 이에 찬성한다며 손을 들었다. 전임 이규민 편집국장의 편집국 관리와 지면 운용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특히 최근 몇 년간 동아일보의 신뢰성과 공정성이 전 같지 않다는 안팎의 지적에 대해 기자들이 동의한 결과였다. 바닥에서부터 솟구친 개혁 요구가 ‘편집국장 재신임’이라는 동아일보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자총회가 열리기 전부터, 전에 없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경영진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4월13일 이규민 편집국장이 제출한 사표는 다음날 바로 수리되었다. 4월15일까지 기자단, 차장·부장단 대표와 경영진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바탕 위에서 4월18일 경영진은 ‘임채청 편집국장’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동아일보 김승환 경영전략실 경영전략팀장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임국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부국장이었기 때문에 연속성 면에서도 적임자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경영진은 이날 ‘동아 가족에게 드리는 글’도 발표했다. ‘최근 현안과 관련한 책임이 경영진에게 있다. 편집국 체계를 시대 변화에 맞게 개선하지 못한 잘못도 크다. 앞으로 인재 육성을 통한 역량 강화와 차별화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을 경영의 중심에 놓겠다. 이번 사태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자’는 내용이었다.

“기자들을 춤추게 하겠다”

지난 4월25·26일 이틀간 실시한 임채청 편집국장에 대한 신임 투표에는 재적인원 2백44명 중 2백30명이 참가해 94.3% 투표율을 기록했다. 통상적인 수준이다. 신임한다는 사람이 1백56명(63.9%), 불신임한다는 사람이 70명(28.6%)으로 나왔다. 4표는 무효표였다. 전임 이규민 편집국장(61.7%), 어경택 편집국장(55.7%)과 비교해 신임률이 약간 높았다. 첫날 투표자가 50%를 넘었을 정도로 참가 열기도 높았다.

1984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임국장은 사회부 경찰팀장과 법조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그는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및 은폐 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서 특종을 많이 해 한국기자상과 이 달의 기자상을 여러 차례 받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고 후배들의 신망도 두텁다.

 
임국장은 신임 투표 결과가 나온 뒤 “조직을 통합하는 데 힘쓰겠다. 기자들을 춤추게 하겠다.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이겠다”라고 결의를 보였다. 그는 <시사저널>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내 생각대로만 편집국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만큼 앞으로 한 달 간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볼 생각이다. 노동조합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라며 응하지 않았다.

한 기자는 “후배들은 임국장이 ‘동맥경화에 걸렸다’는 말까지 나오는 내부 의사 소통 체계를 새로이 하고, 살아 있는 지면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논설위원은 “잘된 일이다. 젊은 기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해 지면에 반영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채청 편집국장 등장을 계기로 주목되는 또 한 사람이 김병관 전 회장의 아들인 김재호 전무이다. 동아일보 안팎에서는 동아일보가 이제 명실상부한 김재호 체제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자총회 사태 이후 기자·차장·부장 대표들과 잇달아 면담한 것은 김학준 사장이 아니라 김재호 전무였고, ‘임채청 편집국장’ 또한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지난 2월 있었던 인사 때부터 김재호 전무와 호흡을 맞춰온 인사들이 전면에 포진했다. 이제 김전무 친정 체제가 구축되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 안팎에서는 최용원 광고국장, 이희준 경영지원국장, 김승환 경영전략실 경영전략팀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재호 전무 체제 굳히기 들어간 듯

199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한 김전무는 10년 만에 동아일보를 이끄는 사실상의 선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전임 이규민 편집국장은 ‘김학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대외적인 행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는 김사장의 앞날 또한 주목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일고 있는 이런 변화를 ‘혁명’이나 ‘변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기자총회는 조직적인 세력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흐름에 의해 열렸다. 조직의 경직성에 대해 강도 높은 지적을 토해냈지만 기자들의 ‘윗선’ 눈치 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점을 과감히 외부에 공개하면서 변화해 가는 모습 또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동아’는 철옹성이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김전무의 리더십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도 많다. 현재 흐름을 바꿀 만한 변화를 동아일보가 꾀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시기도 늦었다”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변화의 싹이 확실히 돋아난 것도 사실이다. 기자들이 중심에 서겠다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경영진도 상황을 전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양측의 기본적인 문제 의식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단계에서 동아일보의 변화 방향과 깊이를 가를 관건은 대략 세 가지로 보인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단순한 선언에서 나아가 실제 현장에서 ‘혼’을 찾을 수 있느냐, 신임 편집국장이 기자들의 가슴에 불을 당길 수 있느냐, 경영진이 성장을 재점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이다. 김재호-임채청, 두 사람의 역할과 능력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다.

미국 버클리 대학 저널리즘스쿨 학장 오빌 셸은 주류 언론이 매스 미디어를 지배하던 신문 왕국의 시대는 해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아일보의 ‘화려한 날’은 이제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수록 새롭게 태어나는 것 또한 빠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세대가 동아일보 전면에 등장한 것은 한 가닥 희망을 엿보게 한다.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실 있는 경영을 통해 올해 영업 흑자를 달성하겠다. 회사는 다양한 측면에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경영 상황은 지난해보다 나아지고 있다.”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지난 4월18일 발표한 ‘경영진이 동아 가족에게 드리는 글’의 한 대목이다. 이번 일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동아일보사의 올해 경영 성과는 ‘김재호 체제’에 대한 일정한 평가라는 의미와 함께 도약 여부를 가름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문 시장의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이른바 ‘메이저 3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자료와 언론재단·미디어경영연구소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이들의 2004년도 매출액·자산증가율·영업이익율은 2003년에 비해 모두 감소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1천98억원이, 자산은 전년 대비 4백87억원이 줄어들었다. 매출액은 2년 연속, 자산증가율은 3년 연속 감소 추세다. 내수 경기 침체로 광고 수주 및 판매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영업이익도 다르지 않다. 2002년도부터 하향세를 보여 오기는 했지만 이들 3사의 영업 이익 합계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이들 가운데는 중앙일보만이 유일하게 지난해 13억여원의 흑자를 냈다. 미디어경영연구소 주은수 소장은 “메이저 종합지의 매출 성장이 한계점에 이르고 있고, 이익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동아일보의 경우만을 놓고 보면 2003년과 비교했을 때 2004년도의 매출 감소액과 감소율이 조선·중앙에 비해 높다. 9.2%, 7%가 줄어든 두 신문과 달리 동아는 12%가 줄었다. 영업 이익 또한 2년 연속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다른 두 신문에 비해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다.

반면 동아일보의 지난해 경상이익은 6백억원을 기록해 다른 두 회사를 훨씬 앞질렀고, 부채 비율도 129%를 기록해 크게 개선되었다. 서울 여의도에 있던 동아문화센터 건물을 1천억원이 넘는 가격에 매각한 영향이 컸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동아일보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과 마인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동아일보 김승환 경영전략실 경영전략팀 팀장은 “안정성과 부채 비율 면에서 보았을 때 경영적으로 위기라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경쟁사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오히려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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