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알아야 돈이 보인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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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필수 정보로 자리잡아…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

 
냉방 업체에서는 여름 더위보다 봄 더위를 더 반긴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작 여름에는 혹서가 아닌 한 한두 달만 버티자며 구매를 미루지만, 봄에는 예약 판매 등으로 성수기 못지 않은 판매고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가전업체들은 비수기 장사가 짭짤했다.  가격 할인, 덤 얹어주기로 요약되는 가전 회사의 예약 판매는 1~3월에 집중된다. LG전자는 올해 예년의 4배, 삼성전자는 5~6배 판매고를 올렸다. LG전자측은 2월에 미국에서 ‘100년 만의 최고 기온’에 관한 연구 발표가 나왔고, 경기 호전이 맞물렸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삼성 또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 심리와 더위에 대한 공포가 두루 작용한 덕으로 보고 있다. 

이제 날씨는 여행이나 레저, 공연 등 전통적인 ‘날씨 종속 업종’뿐 아니라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챙겨야 할 주요 마케팅 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그 수요를 파고들어 날씨 정보를 파는 일도 신종 사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어떤 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을까. 초치기 마케팅이 긴요한 편의점은 날씨 정보를 짭짤하게 이용한다. 여름이면 냉장고 로열층(손잡이 부근 두줄 가량)에 이온수·생수와 신제품 등 맑은 음료가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주스는 아래쪽, 커피는 위로 올라간다. 이렇게 대접을 달리하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국내 편의점은 각 점포에 구매 시점의 날씨와 기온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손님이 물건을 들고 오면 계산대에서는 순식간에 연령대와 성별을 입력한 후 바코드를 읽는다. 몇 도일 때, 어떤 손님이 어떤 물건을 사는지 과학적인 통계 처리가 가능한 것이다.
 
GS유통 집계에 따르면, 맥주는 0℃를 기준으로 할 때 30℃ 이상 무더운 날씨가 되면 매출이 70% 늘어난다. 아이스크림은 370% 늘어난다. 흥미롭게도 영하 2℃ 이하일 때도 0℃와 비교해 각각 12~15% 가량 판매량이 늘어난다.  

GS25는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등 패스트푸드를 주력 품목으로 삼고 있는데, 본사에서는 각 지점의 전날 판매량과 당일 기온 예상치를 보고 발주량을 조절한다. 유통 기간이 하루이므로 남는 물건은 고스란히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화점도 날씨 요인을 적극 활용한다. 2년 전 현대백화점은 에어컨 1천대를 직매입해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비수기인 겨울에 에어컨 물량을 확보했다가 성수기에 푼 것이다. 여름 에어컨 장사는 가격보다 얼마나 빨리 설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물량을 미리 확보해놓은 덕에 현대백화점은 신속하게, 제값 받고 에어컨 장사를 할 수 있었다. 

“더워지면 마네킹 의상 민소매로 통일하라”

중·단기 날씨 정보도 긴요하다. 예를 들어 4월이라고 관성적으로 봄옷 세일만 하고 있다가는 큰코다친다. 올해처럼 4월 말에 이미 초여름 날씨가 시작되었다면 여름 특가 상품전을 재촉해야 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난 주 더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미 봄 행사가 끝나가는 시점이었기에 망정이지 더위가 한 주만 앞서 왔어도 타격이 막대할 뻔했다는 것이다.   

 
이미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유명 백화점은 날씨정보 업체가 맞춤 서비스로 제공하는 정보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점별 온도와 강수 현황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손님에게 날씨로 인사말을 거는 것은 초보적인 수준의 활용법이다. 각층의 플로어 매니저는 지점의 외부 기온을 체크한 뒤 ‘마네킹 의상의 겉옷은 모두 벗겨라. 민소매로 통일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린다.  

백화점이 좋아하는 날씨는 따로 있다. 야외 활동와 반비례 관계로 보면 된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면 손님이 준다. 약간 흐린 듯한 날씨이거나 너무 춥거나 더워서 외부 활동이 어려운 날이 좋다.

그렇다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백화점 외출도 힘들어지므로 좋지 않다. ‘비가 이틀쯤 온 뒤 슬금슬금 날이 개기 시작할 때’ 백화점은 밀려드는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부산해진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은 오프라인 유통 매장과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눈 비가 올 때, 황사가 올 때 안방을 집중 공략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더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임한다. 패션 업계의 경우 한반도 기온이 아열대화하면서 겨울 의류는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난방도 잘 되어 요즘은 무스탕이나 오리털 점퍼 등 두터운 겨울 의류는 설 자리가 좁다. 여성복 시장의 경우 여성들의 몸 단장 욕구가 왕성한 봄철이 장사 대목이었지만 이젠 옛말이다.

여름이 일찍 찾아오면서 일찍이 반팔에 재킷을 입는 형태로 패션 트렌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 오기 전 ‘간절기’ 옷으로 겨울과 봄에 양다리를 걸치면서 위험을 피해간다.  

날씨 정보에 가장 많은 돈을 들이는 건설업과 에너지 업체 등은 날씨가 사업의 주요 변인이 된다. 수십 곳의 건설 현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건설업은 특히 강수에 민감하다. 콘크리트 타설이나 기초 공사에서 낭비를 줄이려면 비가 언제, 얼마나 오는지가 필수 정보가 된다.   

날씨의 중요성에 눈뜬 기업들이 많지만 아직 활용할 여지는 많다. 케이웨더 박흥록 실장은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외국에서는 광고 집행조차도 날씨를 참고할 정도로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날씨로 인한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날씨 보험이나 날씨 파생 상품도 성업 중이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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