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뜨겁게 정치는 차갑게
  • 서승원 (일본 간토가쿠인 대학 교수 · 정치경제학) ()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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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일본, 강경론에 밀려 냉전식 대결…극한 상황은 피할 듯

 

최근의 중·일 관계는 이른바 '경열정냉(經熱政冷)‘ 상태로 일컬어진다. 무역, 투자, 정부 개발 원조 등 경제 분야에서 고도의 상호 의존 관계가 구조화하고 있는 한편,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로 인해 지난 4년간 양국 정상간 상호 방문이 중단된 상태)와 일본 교과서 검정을 비롯한 역사 문제, 타이완 문제, 조어대(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 중국 잠수함 오키나와 주변 영해 침범 문제, 동중국해 가스 전 개발 문제 등 ’현안‘으로 양국간 정치·외교 대립이 갈수록 첨예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대립적 요인은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대회에서의 반일 소동과 최근 전개된 대규모 애국주의 반일 시위,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의 반중국 정서 확산 등 국민적 차원에서도 상호 불신을 동반했다. 이는 경제를 비롯해 중·일 관계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정냉(政冷)’ 상황을 들어 최근 중·일 관계를 해가 지는 일본과 떠오르는 중국 간의 세력 경합 또는 대결 구도로 파악하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구도는 떠오르는 중국과 ‘보통 국가’의 지위를 원하는 일본의 ‘병존’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서 병존은 경제적 상호 의존과 정치적 경합 관계가 동시에 존재하며, 양국 모두 중대한 정치적 선택(즉 떠오르는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와, 일본에 대해 과연 보통 국가 지위를 부여해도 좋은가의 문제)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선택은 경제·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현재 다소 비관적인 양상에도 불구하고 경제 관계의 진전을 들어 양국 관계를 낙관하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규정하듯이 1970년대 말 이후 구축된 긴밀한 경제적 상호 보완 구조로 인해 양국 관계가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사실 중·일간 무역은 무역액을 기준으로 지난 2004년 현재 1천6백78억 달러로 1972년 11억 달러에서 무려 1백52배가 늘었다. 양국은 현재 서로 최대 무역 상대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일본 재무성 통계). 일본의 대 중국 직접 투자의 경우도 1979년부터 2004년까지 누계액이 6백65억9천만 달러로 같은 기간 중국이 전세계로부터 받아들인 투자액(10,966억 달러)의 약 6%를 차지하고 있다(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자료).

한편 1979년 개시된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 공여 누적액은 엔 차관 약 3조472억 엔(2003년도 말까지의 누계액, 이중 약 9천4백1 억엔 상환), 무상 자금 원조 약 1천4백16억엔, 그리고 기술 협력 약 1천4백46억 엔에 이른다. 이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이 전세계로부터 받아들인 정부 차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상과 같은 경제 협력 관계는 1980년대에 그 기본틀이 형성되었다. 그 결과 이 시기는 양국 관계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양호한 상태를 유지했던 시기로 간주되곤 한다. 일본에서는 현재의 ‘한류 붐’ 이상으로 ‘중국열(熱)’이 뜨겁고, 중국에서도 경제 성장의 모델로, 주요 경제 협력 국가로, 그리고 독립·자주 외교의 일환으로 대일 접근을 강화해왔다.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던 영유권 문제·교과서 문제·일본 총리(당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도 양국 수뇌부 간의 정치적 타협으로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물론 쌍무 관계의 근간으로서 양국 경협 관계의 발전은 미·중·소간 전략적 상황과 중·일 양국의 국내 정치 지형에 의해 촉진된 측면이 있다. 현재와는 상황이 달랐다는 것이다. 미국은 주적 소련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발전된 중국을 원했다. 일본으로서도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중국보다는 온건하고 안정된 중국을 원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미·일이 전면적으로 지원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 국내의 친중국 분위기도 단단히 한몫했다. 다나카파와 오히라파 등 한때 일본 자민당 안에서 주류를 형성했던 ‘친중국파’는 전후 배상의 뒤처리 차원에서, 또 정부의 경제 관련 부처 및 경단련 등 경제 행위자들은 에너지 수입과 거대한 시장 확보 차원에서 중국에 기울어졌다.

그 이면에는 대중국 자본·기술 투입이 중국 경제를 일으켜세워 정치 안정을 가져올 것이며, 그 결과 좀 더 온건하고 자본화한 중국이 국제 사회에 편입될 것이라는 일종의 ‘자유주의 접근법’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해양축과 대륙축의 충돌 가능성 배제 못해

중국으로서도 일본 정부의 적극 협력을 기대했다. 중국은 1978년 ‘중국 석유·석탄과 일본 기술·프랜트 교환’을 주요 골자로 한 장기 무역 협정을 체결했고, 이듬해에는 전후 최초로 일본 차관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1980년대 중반 경제 특구와 개발구를 설치할 때에도 일본 기업의 적극 진출을 기대했다. 1989년 텐안먼 사건 이후 중국이 고립되었을 때 국면 타파에 크게 기여를 한 것도, 대중국 경제 재제의 해제에 앞장 서 일본이었다.

 

하지만 냉전의 종언 이후 양국간 협력을 가능케 했던 조건들은 근거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첫째, 천안문 사건 이후 서방의 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장차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견해가 고개를 들었다. ‘일본 위협론’이 ‘중국 위협론’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 안에서도 대중 강경론자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예상 밖 고도 성장과 이에 동반된 군사비 지출에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들은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 정부의 친중국 태도와 ‘일본 패싱(일본을 무시한 미·중 접근 태도)’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2001년 출범한 미국 부시 정부는 일본의 기대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중국을 염두에 둔 패권국 억제를 전략 목표로 설정하고, 미·일 동맹 강화를 추진했다. 일본 고이즈미 정권이 이에 적극 부응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둘째, 미·일의 군사적 억제와 동맹 강화에 바탕을 둔 전략적 공세는 중국의 전진 방어 전략과 맞물리면서 지역 내 불안정성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중거리 전진 방어· 2050년까지 원거리 전진 방어 능력의 확보를 목표로, 군사비 지출을 늘리고 신형 무기를 구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미·일 동맹 체제에 대응하는 측면이 농후하다. 향후 사태 전개 여하에 따라 해양축(미국-일본-한국)과 대륙축(중국-러시아-북한)이라는 냉전 체제와 유사한 대결 구도가 펼쳐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셋째, 중·일간 상호 보완적인 경제 관계도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예컨대 고지마 도모유키에 따르면, 중국 대외 무역에서 차지하는 대일 무역 비중이 1985년 23.6%에서 지난해 15% 이하로 떨어졌다. 일본의 대중국 투자액도 1990년 중국 해외직접투자의 14.4%에서 2004년 6% 이하로 떨어졌다. 게다가 일본의 정부개발원조액도 대폭 줄었고, 2008년에는 아예 엔 차관 사업이 폐지된다.

마지막으로 중·일 관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최대 요인으로 양국 국내 정치 요인을 들 수 있다. 양국은 각자 정치적 선택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여왔다. 일본에서는 거대 중국의 대두가 아시아 전체 정치·경제에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입장과, 중국은 위협이 아닌 기회이며 중·일은 대립자가 아닌 지역 협력과 통합의 ‘쌍두마차’라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대일 신사고’라는 이름으로, 중·일 접근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와, 일본은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중국을 표적으로 한다는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

현 시점에서 온건한 중·일 협력론은 양국에서 모두 강경론에 밀리고 있다. 저우언라이·덩샤오핑, 다나카 가쿠에이·오히라 마사요시 등 중·일 관계 중시 그룹이 퇴장한 이후, 장쩌민·후진타오,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 등은 저마다 상대국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거나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일반 국민 수준에서도, 반일·반중 민족주의가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결이 아닌 협력의 길로 가려면 양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측은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 그리고 반군국주의 정서를 인정해야 한다. 일본측은 중국의 민주주의 신장 가능성과 경제 활력, 역사 문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정서를 인정하고 평가해야 한다. 양국은 공히 온건 세력의 입지 확대에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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