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탄’ 날벼락 맞은 고2·고3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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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특별 지침 나온 후 자살자까지 발생…교사들도 ‘대혼란’
고교생 4명이 잇달아 자살했다. 4월 중순~5월 초 벌어진 일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 4명이 고2 또는 고3이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회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고1이다. 내신등급제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자탄하는 것도 고1이고, 스스로의 권익을 되찾겠다고 일어선 것도 고1이다. 그런데 왜 그 뒤안에서 새 입시 제도와는 별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고2, 고3이 잇달아 죽어가고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들 또한 바뀐 제도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이다. 내신이 까다로워진 것은 고1만이 아니었다. 내신등급제를 새로 도입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시내 2백72개 고등학교를 상대로 ‘학업성적 관리 종합대책’ 지침을 내렸다.  내신 등급제 실시를 앞두고 엄정한 학사 관리 체제를 수립하라는 내용의 지침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고2, 고3을 대상으로 한 특별 지침도 첨부되어 있었다. 고2, 고3의 경우에는 내신을 산출할 때 △과목별 ‘수’의 비율을 15% 이내로 하고 △과목별 평균 점수는 70~75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다른 시·도 교육청 또한 관할 학교에 유사한 지침을 보냈다.

이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내신 부풀리기’를 예방할 목적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그 결과 고2, 고3 교실에서는 지난해와 정반대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시험이 너무 쉬워 만점자가 속출했던 것이 지난해 상황이었다면 올해는 성적 부진아가 줄을 이었다. 서울 ㅎ여고 3학년 한 반의 경우 수학 과목 중간고사 1등 성적이 95점인 데 반해 2등 성적은 75점이었다.

상황이 이쯤되자 고2, 고3 교실은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지난 4월20일 여고 2년생인 ㅎ양(서울 동작구 사당동)이 목숨을 끊은 것도 중간 고사 와중이었다. 반에서 늘 3등 이내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는 ㅎ양은 가족에게 “중간 고사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와 걱정이 많다”라고 말한 뒤 아파트 11층 비상 계단에서 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경기도 ㅂ여고 최 아무개 교사는 “고1들은 그나마 입시 개선안이 논의되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고2, 고3은 그럴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충격도 더 컸던 듯하다”라고 말했다. 내신을 산정할 때 상대 평가를 하게 되어 있는 고1과 달리 고2, 고3의 경우 절대 평가가 적용된다는 점도 이들을 절망스럽게 했다.  

 최씨는 문제의 지침으로 인해 교사들 또한 혼란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시험 난이도를 높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평균 70점대 학생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무능한 교사로 전락시키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그는 비판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정책 틈바구니에서 유탄 맞는 사람도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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