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이기명 ‘욕’ 보는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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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오일 게이트’ 관련 여부 집중 수사…“둘 중 한명은 구속 불가피” 분석도

 
“마지막 큰 고개를 넘었다. 어렴풋이 보인다. 그런데 뚜렷하지가 않다. 안개가 끼어 있다. 하지만 오리가 물 위에서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물밑에서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듯이 조사는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사건’(유전의혹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박한철 3차장은 지난 5월12일 오전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5월1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을 구속함으로써 이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는 한 고비를 넘겼다. 검찰은 여론을 등에 업고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 등 감사원이 고발한 관계자들을 차례로 구속했다.

이제 검찰의 칼끝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과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를 겨누고 있다. 유전 의혹 사건의 배후 인물로 거론된 이들에 대한 조사에 검찰은 사활을 걸고 있다. 면죄부를 줄 경우 당장 축소 수사 논란이 일면서 특검 논란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구속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이광재 의원이다. 지난 5월9일 검찰이 전격적으로 그의 집과 의원회관을 압수 수색한 것은 검찰의 의지와 고민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역 의원에 대한 압수 수색은 검찰총장의 결재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치인 수사를 하면서 최고 어려운 곳이 의원회관이다. 집- 지구당사무실- 의원회관 순으로 압수 수색을 하기가 어렵다. 정치 탄압 논란이 불거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수백 억원이 차떼기로 오간 대선자금 수사를 할 때도 정치인들의 집 이상을 압수 수색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이의원과 관련한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거나 ‘최근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검찰권 조정 문제 가 불거지면서 정권과 불편한 상태인 검찰이 무력 시위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무성했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다르게 본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로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이의원을 구속하지 못하더라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 특검까지 염두에 둔 행보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의원에 대한 압수 수색에서 검찰이 내용 있는 증거물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광재 의원 처벌할 혐의점 못 찾아

서초동 주변에서는 검찰이 이의원을 형사 처벌할 만한 뚜렷한 혐의를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하이앤드 사장 전대월씨가 이의원 측근에게 8천만원을 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했으나 씀씀이를 추적한 결과 이의원과 뚜렷한 연결 고리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 변호인인 석윤수 변호사는 “이의원이 도와주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었겠느냐. 전씨는 지금도 이의원이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고 주장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을 주목하고 있다. 왕영용 본부장에게 유전 사업을 청와대에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추진 현황을 수시로 보고 받은 그가 이의원과 네 차례 만났고, 박남춘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현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 황영기 우리은행 행장과 남다른 친분을 맺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의원을 소환하는 시기는 현재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김씨의 입이 언제 열리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유전사업을 최일선에서 이끌어간 김씨와 신광순 전 철도청장이 동반 승진한 배경과 이번 사건의 연관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들을 도운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김씨는 유전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던 지난해 9월3일 철도청장에서 건교부 차관이 되었고, 신씨는 철도청 차장에서 청장으로 승진했다. 최초로 러시아 유전 사업을 기획했던 쿡에너지 권광진 대표도 “이들이 동반 승진한 것이 우연이겠느냐”라며 이와 관련해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결국 이의원과 관련한 검찰 수사의 핵심은 ‘돈’보다는 ‘막후 지원’ 여부를 밝히는 데 쏠리고 있다. 이의원이 개인적으로 이득을 챙기기보다는 에너지를 확보한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전사업을 바라보고 관계자들을 도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은 이기명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검찰의 이같은 태도는 그와 연결 고리 역할을 한 허문석씨가 해외에서 도피 중인 것과 관련이 깊다. 이씨가 허씨와 함께 정동영 통일부장관이나 박양수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만나는 등 한덩어리가 되어 움직인 흔적이 여럿 포착되었지만, 허씨가 없는 상태에서는 수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허씨가 출국 직전 이씨와 접촉했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허씨의 도피는 뒤집어 보면 이씨가 이 사건에 깊이 관련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인물은 이씨가 운영하는 사무실에서 이씨를 도운 박 아무개씨다. 박씨가 유전의혹사건이 불거진 이후 “(사건과 관련해) 이씨의 심부름을 했다”라고 주변에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일했던 박씨는 여권 실세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씨는 “그에게 심부름을 시킨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검찰은 이미 이씨와 관련한 광범위한 물밑 내사에 들어가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광재 의원처럼 이씨 주변에 대해서도 조만간 강도 높은 수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이씨는 “허문석·전대월 씨가 서로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라면서 유전사업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박한철 3차장은 5월12일 주역의 괘를 뽑아 보았는데 천지가 막혔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수사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시사했다. 당분간은 참고인 조사 등 물밑 작업에 주력할 것이라며 “누군지는 말할 수 없지만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라는 말도 했다.

이광재·이기명, 유전의혹사건의 두 핵심 인물에 대한 조사를 앞두고 검찰은 그동안 모아놓은 모든 파일을 들춰보고 있다.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과 수사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검찰이 과연 이들을 구속하는 데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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