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핵 대타협’ 재시동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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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이 재추진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만 남았다. 후 주석이 6월 안에 핵 해결사로 방북하고, 그 답례로 김위원장이 6자 회담 복귀를 선언 할 가능성도 있다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이 재추진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만 남았다. 후 주석이 6월 안에 핵 해결사로 방북하고, 그 답례로 김위원장이 6자 회담 복귀를 선언 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 중국이 협상을 재개한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정밀 추적했다.

한반도 상황은 항상 겉과 속을 동시에 들여다보아야 한다. 지금처럼 위기설이 난무할 때는 특히 그렇다. 표면에 떠도는 위기설에 현혹되다 보면 속에서 일어나는 국면 타개 움직임을 놓쳐버릴 수가 있다. 지난 4월18일 영변 5MW 원자로 가동 중단 이후 약 한 달여의 ‘공중전’을 거친 현재 몇 갈래 해법이 수면 아래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북·중 간에 전개되고 있는 후진타오 주석 방북 재추진 움직임이다. 베이징의 한반도 소식통은 “중국측이 최근 후 주석 방북을 위한 북한 설득을 마무리했다. 이제 김정일 위원장의 최종 결심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에게 ‘언제든 결심이 서면 연락 주기 바란다’는 수준까지 제안이 들어갔고, 중국의 고위급 대표단이  실무 조정을 위해 언제든 방북할 준비 태세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이 후 주석의 방북에 대해 선뜻 답하지 않고 고민 중인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리빈 주한 중국대사도 언급했듯이, 후 주석이 방북할 경우 김위원장이 6자 회담 복귀를 선물로 내놓아야 할 텐데, 6자 회담 복귀 후 미국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확신이 안 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지난 세 차례 6자 회담 때와 달리 미국이 과연 북한과의 협상에 성의를 보일 것인지 최종 판단을 못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지난 5월10일 “김위원장이 핵 보유와 폐기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는데, 바로 같은 맥락의 얘기이다.

결국 북한은 후주석 방북에 앞서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뭔가 확실한 대답을 확보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지난 4월 초 강석주 부상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측에 제시했던 ‘6자 회담 복귀를 위한 선결 조건’에 전향적인 답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 국무부가 최근 밝힌 대로 뉴욕 채널을 통해 북·미가 접촉할 경우, 북한이 직접 미국의 의중을  확인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의 전향적 태도가 확인되면 6월 안에 후 주석이 방북하고 김위원장이 그에 대한 답례로 6자 회담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후 주석 방북 이외에도 북·미 양국 간에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직접 교섭이 전개될 수도 있다. 미국측이 1994년의 카터 방북을 연상케 하는 빅 이벤트를 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 수면 아래서는 핵 문제의 가닥을 잡기 위한 노력이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 전에 북한이 핵실험 같은 파국적 행위를 먼저 감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국제 사회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6월 말 안에 어떤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지난 4월 초 강석주 부상의 방중을 계기로 본격화했던 북핵 대타협의 장정이 무산된 이후 한 달 반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재점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자.

1단계: 강석주 방중과 요구 사항 전달
지난 4월2~5일 진행된 강석주 부상의 비밀 방중은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을 위한 북·중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길게 보면 지난해 9월의 이장춘 방북과 10월의 김영남 방중, 그리고 박봉주 총리 방중 등을 통해 북·중 간에 무르익은 북핵 대타협의 마지막 수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측은 5월9일로 예정된 후주석의 모스크바 방문(2차 세계대전 60주년 전승 기념행사)에 앞서 평양 방문을 실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즉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6자 회담 복귀를 약속받은 뒤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모스크바에 감으로써 동북아 리더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지겠다는 계산이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강부상이 베이징을 방문하고 돌아간 직후까지도 중국은 매우 낙관적 분위기였다. 후 주석의 4월 말 또는 5월 초 평양 방문 얘기가 이때 흘러나온 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이 사태를 낙관적으로 본 이유는 강부상의 몇 가지 조건들에 대해 미국이 최소한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오판이었다.

강부상은 후 주석이 방북하기 앞서 미국과의 교섭을 통해 최소한 세 가지 정도의 조건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즉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기 위해 이 정도는 미국이 해주어야 한다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그 첫째가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사과하는 것이고, 둘째는,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이 핵 동결에 나설 경우 보상할 것. 그리고 셋째는, 핵 포기에 상응해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강부상은 당시 이 세 가지 중 첫 번째와 뒤의 두 가지 중 하나만 되어도 복귀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다소 완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막상 미국과 이 문제에 대한 협상에 들어가면서 벽에 부딪힌 것이다. 당시 미국측은 폭정의 전초기지에 대해서는 라이스 국무장관의 주권 존중 발언과 6자 회담 틀 안에서 북·미 양자 접촉을 보장하는 선에서 성의를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6자 회담 복귀 전에 들어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중국은 미국을 설득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후 주석의 4월 말 5월 초 방북도 무산되었다.

 

강석주 방중 당시 북한이 6자 회담 복귀의 구체 조건을 적시해 내세웠다는 점은 김정일 위원장의 고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 6자 회담 복귀가 문제가 아니라 복귀 이후 미국이 어느 정도 해줄 것인가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 어느 정도 보장을 받고 협상에 임하고 싶다는 것이다. 왕자루이 부장이 5월10일 발언에서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위해 미국이 한마디만 하면 된다”라고 한 것도 이런 정황과 관련되어 있다.

2단계: 북한의 실력 행사와 중국의 방치
미국의 완강한 태도로 후 주석 방북이 무산되기에 이르자 미국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심해졌다. 북한도 심하지만 미국은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미국 언론들은 마치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북 식량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 5월10일 왕자루이 부장이 “북한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미국의 강경 태도가 문제다. 중국은 미국을 설득 중이다”라고 한 발언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은 북한보다 미국이 더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대북 봉쇄 요구란 가당치 않은 것이다.

중국은 실제로 지난 4월18일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실력 행사에 나서기 시작하자 이를 먼 산 구경하듯 방치했다. 미국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핵실험설에 대해서는 4월22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이 ‘미국 당국이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포착해 동맹국에 통보하고 중국에게 설득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1보를 전하면서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미루어 북한이 이 무렵부터 함경북도 길주의 지하 동굴 주변에 트럭들을 배치해 왔다갔다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언론들은 마치 제철 만난 메뚜기들처럼 부산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미국 정찰 위성이 통과하는 시간에 맞추어 ‘트럭 쇼’를 감행하는 이유가 뭐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미국 외교협회 핵 전문가 찰스 퍼거슨 같은 사람의 문제 제기는 잘 들리지 않는 듯했다.

3단계; 힐의 방중과 미·중 절충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미국의 6자 회담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한·중·일 순방의 일환으로 4월26일 베이징을 방문했다. 미국 일부 언론이 ‘중국이 대북봉쇄 동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그 시점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고 한다. 물론 힐이 봉쇄에 동참해 달라고 타진한 것은 사실이나 중국의 거센 반격에 오히려 수세에 몰렸다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그렇게 얘기하기 전에 미국도 성의를 보이라고 강공을 편 것이다. 결국 ‘미국도 전향적인 방안을 찾아보겠다’면서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에서 서울로 돌아온 힐은 5월2일자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한다는 것을 전제로 북·미 양자 접촉을 할 의사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바로 그가 얘기한 전향적 방안이었던 셈이다. 이후 미국 국무부 역시 힐과 같은 맥락의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 비슷한 시각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는 미국 국무부의 뉴욕 채널 가동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었다. 당시 이들과 회동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미국측에서 접촉 제의가 들어오면 적극 응하겠다는 분위기였다”라고 전했다.

4단계; 네오콘의 저항과 힐의 좌절
그러나 국무부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약 1주일 후 다시 뉴욕을 찾은 이 전문가는 “대표부측이 매우 실망하는 분위기였다”라고 다시 전했다. 접촉 제의는 고사하고 미국 언론들은 한반도 위기설을 더욱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5월6일 뉴욕 타임스가 길주 일대에 핵실험 관측대가 설치되었다고 보도함으로써 핵실험설에 더욱 불을 지폈고, 5월9일자 국내의 한 신문 역시 ‘미 국방부 핵심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6월중 북한 핵실험설에 동참했다. 핵실험설은 곧바로 선제공격설로 비약했다. 5월8일 NBC 방송은 미군 당국이 북한 영변에 대한 선제공격 계획을 수립했다고 열을 올렸고, 국내 일부 인사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7월 북폭설을 흘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 집중된 위기설의 배후에 네오콘과 미국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힐의 베이징 방문 직후 국무부를 중심으로 북·미간 뉴욕 접촉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미국이 북한에 양보할 경우 미국의 지도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논리로 힐을 비롯한 국무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경우 자신들이 주도해온 미·일 동맹 강화와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가 타격을 받을 것을 염려한 것이다( 관련 기사 참조).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으나 바로 이 시기인 5월2일부터 일본의 대북 강경파 아베 신조가 워싱턴에 모습을 나타내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다녔고, 체니 부통령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노골적으로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이들 강경파의 준동으로 힐을 중심으로 한 국무부 팀의 입지가 축소되었던 것이다.

5단계: 북한 외무성 성명과 라이스의 화답, 그리고 후진타오 방북 재추진
2월10일 핵보유 선언 이후 엇나가기만 하던 북한 외무성이 오랜만에 적시타를 날렸다. 5월8일 성명을 통해 ‘북한이 6자 회담과 별도의 조·미 회담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한다고 하고 6자 회담 안에서 쌍무 회담을 한다고 하니 만나보고 최종 결심을 하려고 한 것이다’라며 한결 타협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당시 외무성 성명의 배경에 대해 “원래의 의도와 무관하게 미국 강경파가 상황을 과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라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궁지에 빠진 미국 내 협상파에 힘을 보태는 구실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힐을 통해 자신의 의중을 밝혀온 라이스 국무장관이 그 다음날인 5월9일 즉각 반응했다. 미국은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있으며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할 경우 북한을 위해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고무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라이스를 중심으로 한 국무성 협상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지기 시작하자 지난 5월10일 리빈 주한 중국대사가 외교부 출입기자들에게 익명을 전제로 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서울 주재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라는 다소 이상한 꼬리표를 단 채 후진타오 주석이 북한 방문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여러 각도로 돌려가며 얘기한 것이다. 발언의 핵심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을 위해서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즉 6자 회담과 관련해 고무적인 뭔가가 있어야 한다.....6자 회담을 먼저하고 후 주석이 방북하거나 후 주석 방북 후 1,2주 있다가 6자 회담을 하는 방안도 있다.” 등등.

한마디로 현국면은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을 타진 중이니 미·일 언론이 부채질하는 한반도 위기설 등에 지나치게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내 언론은 미·일 언론의 위기설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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