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밑에 산이 있으니
  • 배 병 삼 (영산대 · 정치학) ()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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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칠레의 남쪽에 있다는 파타고니아 고원지대를 보여주었다. 눈길을 끈 것은 해발 2000~3000m 산간지대에 조개껍질이며 굴 껍질들이 잔뜩 깔려있는 장면이었다. 그 지역이 옛날에는 깊은 바다 속이었다가 어느 날 불쑥 솟아올랐다는 뜻이겠다. 그걸 보면서 갑자기 내 발밑도 깊은 바다 속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지중유산(地中有山)이라는 <주역> 겸(謙)괘의 한 구절이 겹쳐들었다. 

  지중유산이란 ‘땅 밑에 산이 있다’는 말이다. 산은 지표 위로 불쑥 솟아오른 땅을 말하는데 ‘땅 밑에 산이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그런데 또 발밑의 땅속 사정을 헤아리면 영 헛말만은 아닌 듯싶다. 

  삶은 달걀을 자르듯 지구를 가르면 핵이 한 가운데 있고 그걸 맨틀이 감싸고, 또 그것을 지각이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지각이란 켜켜이 지층(산맥)으로 쌓인 겹이다. 이는 곧 지표면에 디딘 내 발 아래가 산맥들로 가득 쌓여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평지 위를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곧 산맥의 꼭대기들을 밟아가는 길인 셈이다. 그렇다면 분명 ‘땅 밑에 산이 있다.’

  한편 이것은 정상이라는 점에서는 내가 서있는 평지가 에베레스트 꼭대기와 같다는 뜻이다. 동시에 지구상에서 제일 깊다는 마리아나 해구의 밑바닥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닷물을 빼고 나면 마리아나 해구 역시 또 하나의 '깊숙한 산꼭대기'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지를 걷는 산책길은 마리아나 해구를 기준으로 하면 1만1천m 고지에서 고소병에 시달리는 행군이요, 에베레스트에서 보면 8800m 아래의 심해병에 시달리는 행보다. 우리의 일상이란 이렇게 고소병과 심해병의 두 역설이 겹친 틈새에서 숨쉬는 절묘한 중용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버리는 이 일상의 평상은 결코 일상적이지도 평상하지도 않은, 도리어 지극히 비상하고 비범한 ‘진리의 세계’인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내 발밑’에 있다

문제는 높이 솟은 땅만을 산으로 여기는 눈, 혹은 위로 쳐다보아야만 산을 볼 수 있다는 우리의 낯익은, 그러나 잘못된 습관에 있다. 이 대목에서 ‘지중유산’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베푼다. 평지 위의 편안한 산책이 실은 찬바람이 칼날처럼 덮치는 분수령 위를 걸어가는 것이라면, 아! 함부로 걸을 수가 없다. 길을 걷는다는 것이 정작 등에 땀이 밸 만큼 조심스런 일이 된다.

  최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사건들, 가령 철도공사의 유전사업이나 동아시아위원회의 행담도 위락시설 개입 문제들은 두루 흙 묻은 발로 방만하게 내디딘 족적들이다. 국가의 공로(公路)란 함부로 걸을 수 없기에 특별히 법률과 규칙을 통해 그 길을 닦아놓은 것이다. 그 길들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걸어간 검은 발자국들, 이것이 유전사업과 행담도 사건에 얽힌 행적의 저변이다.   

  길은 넓히면 광장이 되지만 좁히면 외줄이다. 외줄타기야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또 광장도 제 마음껏 나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늘과 바다에도 길이 있어 비행기나 배가 함부로 다니지 못하듯, 광장도 제 마음대로 치달리다가는 남과 부딪쳐 사고가 나기 일쑤인 것이다. 더욱이 그 길이 광장이 아니라 온 나라 사람들이 지켜보는 날카로운 산길(공로)이라면 더 무슨 말을 하랴. <대학>에서 ‘높은 자리의 지도자여. 온 백성이 우러르니 삼가지 않을 수 없다네. 자칫 사사로이 일을 꾀하다간 죽음을 당하리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여기서 멀지 않다.    

  나아가 지중유산의 가르침은 문제의 핵심이 바깥이나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발밑, 또는 나 자신에게 있음을 알려주는 데까지 미친다. 이를테면 이 정부가 내내 강조하는 혁신도, 그 출발점이 나로부터라는 제 발밑 보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말은 한낱 남을 향한 폭력으로 추락하고 만다. 한데 남을 향해 휘두른 폭력은 곧 바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 노자가 말했듯, ‘모든 힘은 되돌아오기(反者, 道之動)’ 때문이다. 그래서 내뱉는 말은 삼가고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지중유산이라는 말이 겸손을 뜻하는 ‘겸괘’에 속해 있다는 것도 뜻이 깊다. 잘못된 문제의 원인은 내 발밑에서 찾는 반면, 좋은 성과는 남에게 돌리는 데서 겸손이 싹트기 때문이다. 나아가 겸손이야말로 참된 힘, 곧 매력을 자아내는 샘이고, 또 그 매력적 힘만이 순수하게 세상을 밝힐 수 있으리라는 것도 지중유산이라는 말 속에 깃든 숨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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