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위원은 ‘들러리’였나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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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증인 아무도 못만나…다른 과거사 규명에도 한계 예상

 
김형욱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민간 위원들의 역할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발표에서 핵심은 신현진이라는 연수생의 증언이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이 암살 지휘 책임자였고, 그런 김부장이 권총과 독침을 주었을 것이며, 동유럽인 살인청부업자 2명을 고용해 관용 차량으로 파리 근교에서 총살했다는 등의 진술은 오로지 신현진씨의 진술에 기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신씨를 국정원 진실위에 참여한 과거사 위원들은 최소한 한 번이라도 만나보았어야 옳다. 그러나 민간 조사위원들은 아무도 신씨를 만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중간 조사 결과 발표장에 앉아 국정원측의 일방적 조사를 뒷받침해주는 ‘들러리’ 역할을 했다. 지난 5월26일 국정원 발표장에서 기자가 사회를 맡은 안병욱 교수에게 ‘중요 증언자인 신현진 연수생을 면담했느냐’고 묻자 그는 만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그 이유에 대해 안교수는 ‘수사 기술이 뛰어나고 훌륭한 국정원 고위 관계자까지 나서서 조사했다는데 우리 아마추어 민간 위원이 그런 사람을 만나면 조사에 방해가 될까 봐 안 만났다’는 요지로 답변했다. 민간 조사위원들의 이같은 태도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 그들이 왜 들어가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벌써부터 시민·사회 단체 일각에서는 신씨의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암살 배후로 몰아간 국정원 발표에 대해 정치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기본적인 면담 조사도 해보지 않은 채 국정원측의 일방적 조사 내용을 추인해준 민간 위원들의 책임을 따지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간 위원 중 한사람인 효림 스님은 “나도 그 부분이 매우 불만이다. 민간 위원들이 이상열 공사라든지 유일하게 입을 연 연수생 신현진씨를 최소한 한번이라도 만나서 면담이라도 했어야 하지만 그런 일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발표가 나왔다. 민간 위원들이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는지 나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효림 스님은 최근 국정원측에 과거사 진실위 민간 위원 직을 탈퇴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결국 김형욱 사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민간 조사위원들이 사실상 해당 기관의 과거사 조사에서 구경꾼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현재 국정원과 국방부의 과거사 자체 조사 방식은 신뢰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방식이라면 나머지 과거사 규명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할 것이 없으리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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