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재벌 봐주기’는 없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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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 전면 재수사…‘법경유착’ 의혹 풀지 관심

 
지난 5월23일 검찰은 주목할 결정을 내렸다.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사건은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이 위장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 72억여원을 조성해 횡령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임회장이 폐기물처리업체를 위장 계열사로 인수한 뒤 폐기 물량을 과다 계산하는 방식으로 계약서와 회계 장부를 조작해 1998년 11월~1999년 7월 돈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2002년부터 이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은 대상그룹 전·현직 임원 3명을 구속했지만 지난해 1월 경리 직원 2명이 해외로 도피했기 때문에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임회장에 대해서는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 ‘참고인 중지 결정’은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사건 수사를 중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재벌 봐주기 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때문인지 재수사를 계기로 검찰 일각에서는 검찰이 재벌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최근의 비판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경유착’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칼’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5대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 혐의, 삼성SDI 노동자들에 대한 휴대전화 위치 추적 사건, 삼성생명의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 등이 잇달아 무혐의 처리된 것을 거론하며 검찰이 재벌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하다.

‘참고인 중지 결정’을 했던 검찰이 재수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가 대상그룹의 위장 계열사이자 폐기물 처리업체인 삼지산업 사장 유 아무개씨 등의 항소심 공판에서 ‘유씨와 임회장이 공범 관계인 것이 인정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 신문이 4월 말 크게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참여연대 또한 법원의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검찰이 임명예회장을 추가 기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임씨에 대한 참고인 중지 결정, 임씨에 대한 사법 처리를 중단한 당시 수사담당자와 지휘 라인에 대한 ‘감싸기’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 사건에 대한 감찰을 요청하는 공문을 법무부와 대검에 제출하고 대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형사부 사건도 아닌 특수부 사건을 재수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어서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인천지방검찰청 고위 관계자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재수사에 착수했다는 것 외에는 할말이 없다”라고 말을 아꼈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일단 재수사에 들어간 이상 구속이든 불구속이든 임회장을 기소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임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린 수사팀에 대한 책임론 또한 불거지지 않을 수 없어 검찰로서는 곤혹스런 상황에 처한 셈이다.

노회찬 의원, 삼성 로비 의혹 제기

 
일단 수사팀은 강도 높게 재수사를 시작했다. 재수사를 천명한 5월23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대상그룹 본사를 전격 압수 수색한 것이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수사관 10여명이 압수 수색을 나왔다. 가져갈 만한 서류는 별로 없었지만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대상그룹을 압수 수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지검의 한 소식통은 재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인천지검 김진태 2차장검사가 과거 임창렬·주혜란 부부를 구속했던 사례를 거론하면서 원칙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4월 말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에 대해 질의했던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 또한 “재수사도 실패하면 큰일이 벌어지니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검찰은 재수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스스로 의혹의 빌미를 제공했다. 2002년 7월부터 이 사건을 수사했던 최초 수사팀은 임명예회장을 여러 차례 소환 조사했으나 그 직후 임씨는 해외로 도피했다. 하지만 2003년 초 검찰 수사팀이 전면 교체되면서 임씨는 검찰에 출두했다. 그 뒤 ‘참고인 중지 결정’이 내려지면서 임씨에 대한 조사가 중단된 것이다. ‘참고인 중지 결정’이 내려진 시기는이종백 당시 인천지검장(현 서울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옮기기 직전이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애초 임씨 처리에 적극적이었던 검찰이 소극적으로 변해간 과정에 대해 강한 의혹을 갖고 있다. 그는 “임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과 사돈 관계(임씨는 이회장의 아들인 이재용씨의 장인이다)이다. 이회장의 처남인 홍석조씨가 인천지검장으로 간 직후 검찰은 공소장에서 임회장이 공모했다는 부분을 삭제하려고 했다가 법원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라면서 즉각 임씨를 구속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삼성의 로비 때문에 수사가 부실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재벌에 대해 검찰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재수사 결과 따라 큰 파장 일으킬 수도

당시 인천지검 특수부장으로서 임씨를 강도 높게 수사했던 송해은 순천지청 차장검사는 “언론 보도를 보고 재수사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수사에 대해 지금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입을 닫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지은 간사는 “검찰이 재수사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임씨에 대한 그 동안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당시 수사 라인에 대한 감찰과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검찰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 이렇게 진행됐다

2002년 7월 : 인천지검 특수부, 임창욱 명예회장 측근 3명 횡령 혐의로 기소
2002년 11-12월 : 임명예회장, 소환 조사에 응한 후 해외 도피
2003년 2월 : 인천지검 수사라인 인사 이동
2003년 3월 : 임명예회장 공모 부분 공소장에 추가
2003년 4월 : 임명예회장, 검찰의 소환에 응함
2004년 1월 : 인천지검, 임명예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
2004년 2월 : 홍석조 인천지검장 취임
2004년 4월 : 검찰, 임 명예회장 공모 부분 공소장 삭제 추진
2005년 1월 : 항소심 재판부, 임명예회장과 피고인들의 공모 인정
2005년 4월 : <한겨레> 보도. 참여연대, 이 사건 관련 기자회견 및 감찰 요청 공문 보냄
2005년 5월 : 인천지검, 재수사 결정

또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임씨 등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도 진행할 계획이다. 돈을 빼돌림으로써 회사와 소액 주주들에게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소송에 필요한 지분(전체 주식의 0.01%)을 모으기 위해 대상(주)의 주식 6%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협조를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재수사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아무 할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일단 재수사 결과가 나온 뒤 감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결과를 지켜본 뒤 그에 맞는 조처를 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은 재벌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를 가늠케 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경우에 따라 검찰 내부에도 큰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김종빈 검찰총장도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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