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고 건 도우미들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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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권자들의 공통점은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시한 원조 격인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시민들은 그들이 뽑아놓은 지도자가 목에 힘줄 만하면 도편투표란 것을 해서 국외로 추방하는 위세를 부렸다. 현대 정치학자들은 유권자들이 대개 전임자와는 성격이 대비되는 후임자를 뽑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경우에 대입해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전두환씨가 외향적이고 말이 많았던 반면 후임인 노태우씨는 내성적이고 뒤로 일을 많이 꾸미는 형이었다. 김영삼씨는 노씨와 달리 희로애락을 얼굴에 표시 내고 다니는 형이었고, 그 후임인 김대중씨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 성격은 DJ보다는 YS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양김 시절 정치인들의 특징은 말을 지독히 아끼거나 아예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YS는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풀어놓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어수선하게 말하곤 했다. DJ는 간혹 재치 있는 농담을 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지루하게 나열식으로 얘기를 늘려 빼기 일쑤였다.

구여권에서 킹메이커로 이름이 높았던 고 김윤환씨도 말이 지독하게 어눌했다. 한때 구여권의 최고 실력자였던 그가 스스로 대권 도전을 포기하고 킹메이커에 만족했던 것은 연설 실력이 형편없어서였을 것이라고 기자들이 생각했을 정도였다. DJ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까지 도운 김원기 국회의장도 거의 반벙어리나 마찬가지인 인물이다. 두 시간을 인터뷰해도 한 줄 써먹을 말이 없을 정도로 쓸데 있는 말을 아낀다.

참여정부가 과거의 정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말이 현란해졌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를 필두로 여권에는 말 모자라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여권의 말이 경박하다고 비난하는 야권 인사들의 말 실수도 만만치는 않다. 한나라당에서 말을 제일 잘한다는 전여옥 대변인이 최근 대졸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어휘가 짧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나, 여간해서는 얘기가 관공서 공문서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고 건 전 총리의 도우미들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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