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강남, 비루한 강북?
  •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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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키워드]서울의 재발견:<태풍태양>의 강남, <극장전>의 종로

 
‘나 잡아봐라~’의 경지에 필적할 만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의, 놀랍도록 깜찍한 수작들(예를 들자면 사자상에 손을 집어넣고 짐짓 깜짝 놀라는  따위의)이 없었다면 로마의 스페인 광장이 지금처럼 팬터지 가득한 매혹의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

혹은 <아비정전>에서 <2046>까지 왕자웨이의 모든 영화들을, 뿌리 없이 부유하는 도시 홍콩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현대를 벗어난 모호한 시공간의 무협 멜로 <동사서독>에서조차 왕자웨이는 모든 개인들을 엇갈리는 시간과 관계 속에서 뿌리 없이 떠도는 인물, 곧 의인화한 홍콩으로 만들어버린다.

왕자웨이의 모든 연애담은 데뷔작 <아비정전>에서 장궈룽과 장만위가 함께했던 ‘1분간’을 제외하면 홍콩의 1999년(중국 반환 데드라인)처럼 각자의 ‘유효 기간’을 가진 러브 스토리이고, 결국은 유효 기간을 넘겨버리고 엇갈린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금빛 가발과 레인코트를 입은 <중경삼림>의 린칭샤(임청하)처럼 영국식과 중국식이 ‘짬뽕’된 도시, 그래서 그 어느 하나의 ‘오리지널리티’도 갖지 못한 도시 홍콩은 왕자웨이의 영화 속에서 정체성을 잃고 늘 엇갈리기만 하는 모든 인물들을 규정한다.

한국영화에 의해 재해석 되는 서울의 공간들

영화는 이처럼 공간을 반영하고 해석하며 창조한다. 서울에 관해서라면 최근 개봉한 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문화지리학’을 보여주는 작품은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이다. 잠실, 올림픽공원·테헤란로 등 <태풍태양>의 강남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에서의 종로와 일종의 대구를 이룬다. 그것은 각각 강남과 강북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대구이면서 ‘과거로부터 절연된 신인류의 새로운 놀이터’와 ‘오래되고 낡았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습관’ 사이의 풍속학적 대구이기도 하다.

<태풍태양>은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에 미친 젊은 ‘패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 속 배경의 80% 이상은 대낮의 강남이다. 10대 후반~20대 초반 인라이너 패거리의 빠르고 공격적이며 위험하고 역동적인 스케이팅은 올림픽공원과 테헤란로와 한강 둔치를 누빈다. 그들이 꿈꾸는 인라이너의 천국은 도시의 그물망으로부터 격리된 밤섬으로 설정된다.

꼬불꼬불한 뒷골목과 밀집한 주택가와 상가, 실핏줄 같은 우회 도로들이 많은 강북과 달리 계획 도시로서 강남은 직진성과 광장성이 좋다. <태풍태양>은 강남의 대로와 공원, 마천루가 그려내는 직선과 높이, 광장의 매력을 최초로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태풍태양>은 암울한 개발 시대의 추억, 이른바 ‘말죽거리 잔혹사’를 잊고 모든 과거와 절연한다.

또 <태풍태양>의 강남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진부한 ‘소비와 유흥의 기호학’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 차라리 가까운 것은 ‘놀이의 사회학’이다. 가족 관계가 삭제된 이 영화 속 ‘신인류’들은 개발의 쓰디쓴 부산물 따위는 근심하지 않는다. 일산 신도시의 굴착기가 깔아뭉갠 삶들을 근심하고 기리는 <초록물고기>의 정서는 이제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소비와 유흥의 기호학과 개발의 경제학을 벗어난 ‘매력적인 놀이터’ 강남은 <태풍태양>이 새로 해석하고 창조한 서울의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영화 속에서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인라이너들의 ‘나이트 라이프’ 무대를 상상해 본다면 아마도 홍대앞 클럽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인라인 스케이트와 근친성을 가지는 문화는 힙합과 펑크, 테크노와 ‘나이트클러빙(nightclubbing)’이기 때문이다. 이는 청년 문화에 관한 한 전통적인 연대-이대앞 신촌이 종로와 연속성을 갖는 데 반해 홍대앞 신촌은 오히려 1990년대 이후 형성된 ‘압구정동’ 문화와 근친성을 갖는다는 가설과 관련될 것이다.

<태풍태양>의 테헤란로와 대구를 이루는 <극장전>의 종로

<태풍태양>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맞은편에 선 <극장전>은 적어도 김승옥의 <1964년 서울>로까지 거슬러올라갈 만한 지리멸렬한 삶들의 연대기이자 그 단면이다.

종로통 뒷골목 어딘가에 있는 비좁은 여관, 인사동의 선술집, 보기만 해도 시큼한 냄새가 느껴지는 맥줏집, 택시를 잡으려고 오랫동안 서성대던 대로변. 아버지와 형을 거쳐 나에게로 내려왔을 것만 같은 이 떨치기 어려운 습관들은 어제 술자리와 오늘 술자리 정도의 ‘차이’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오랜 극장가였던 종로는 그렇게 원본을 알 수 없는 기억과 역사들이 반복되는 공간이다.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장풍대작전>에서 용산은 심심한 서울을 견디기 위해 전설의 팬터지를 불어넣어 창안한 공간이며, 곽재용 감독의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야경이 멋진 서울은 노동과 경쟁의 팍팍한 현실을 잊기 위한 낭만적 발명품이다. 그리고 사라져가고 있는 곳. <귀여워>의 청계천과 황학동은 비루한 남근들이 구원의 여신을 기다리며 농짓거리나 하면서 제 나름의 카니발을 준비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서울은 그 어디쯤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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