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하기 전에 팬 확보하라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6.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비 가수의 ‘스타 되기 프로젝트’ 핵심 전략은 팬클럽 구성·활용

 
유재하의 ‘재’ 김현식의 ‘현’ 김광석의 ‘석’을 따서 재현석으로 예명을 지은 강인천씨(23)는 이제 막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가수다. 그는 지난 1년간 중견 작곡가 정우식씨로부터 혹독한 가수 수업을 받아왔다. 요즘 그는 매일 밤을 새워가며 녹음실에서 첫 싱글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

합숙소에 가서도 그의 가수 수업은 끝나지 않는다. 큰소리로 책을 읽으며 발음 교정하기, 거울 보고 자기 소개를 하며 표정 연습하기, 세미 정장에 맞는 제스처 연습하기,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신체 리듬 유지하기, 트레이닝 내용을 기록하고 향상되는 부분에 대해서 모니터링 보고서 쓰기 등등. 

강씨를 데뷔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매니저 조호열씨(32)가 요즘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팬클럽 관리다. 아직 데뷔하기 전이지만 그는 인터넷을 뒤져 팬을 ‘영입’했다. 지난 6월1일, 그는 힘들게 영입한 팬을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에 불러 강씨가 ‘격려 잔치’를 열어주도록 주선했다. 이처럼 조씨가 팬들에게 지극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성공적인 데뷔 여부가 전적으로 팬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스타 배출구는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이었다. 가요 프로그램 출연 여부는 신인 가수 홍보 피라미드의 최고 정점에 있었다.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 매니저들은 스포츠 신문 기자를 찾아가 기사를 구걸하고, 라디오 방송 횟수를 채우기 위해 PD에게 읍소해야 했다. 그러나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이 5% 내외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시청자층이 10대에 한정되면서 매력을 상실했다. 

방송사 프로그램보다 라이브 공연 선호

 
매니저들이 눈을 돌린 것은 시청률이 높은 쇼·오락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가는 것이 이름을 알리는 데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쇼·오락 프로그램보다 더 선호하는 것은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노래를 빨리 알릴 수 있고, 요즘은 드라마 OST가 벨소리로도 인기가 좋아 수입도 짭짤하기 때문이다.

운만 좋으면 한류 스타까지 될 수 있는데, <겨울연가>의 류가 대표적인 경우다. 정우식씨는 “예전에는 돈을 받고 OST 음반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획사에서 신인을 데뷔시키기 위해 드라마 제작사에 돈을 주고 OST 제작을 맡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방송보다 매니저들이 더 공을 들이는 것이 있다. 바로 공연이다. 특히 대형 가수의 라이브 무대는 주요 섭외 대상이다. 아직 자신들의 무대를 세울 능력이 안 되는 신인 가수들은 대형가수의 라이브 무대에 게스트로 서기 위해 공을 들인다. 대형 라이브 무대를 자주 갖는 윤도현밴드의 탁현민 공연팀장은 “신인 가수들에게 공연 능력은 중요하다. 요즘은 음반 판매가 저조해 공연 수익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신인 가수에게 공연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팬을 모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형 가수 공연을 통해 팬의 일부를 분양받아 홀로서기의 기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 버즈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성장했다. 윤도현밴드의 콘서트 무대에 게스트로 데뷔한 버즈는 이후 여자 중학교와 여자 고등학교 축제를 도맡아 찾아다니며 팬을 규합했다. 이렇게 모은 팬들을 바탕으로 이들은 자체 콘서트를 열었다. 

 
신인 가수를 데뷔시키는 매니저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도 바로 팬클럽 전략이다. 팬은 요즘 신인 가수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세력이다. ‘진성 당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가수는 가수로서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팬은 음반 시장 불황의 마지막 지지대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음반이 나오면 수십 장씩 사주고, 콘서트를 열 때면 지방 공연까지 찾아가서 보아주는 이들의 도움이 없으면 가수는 살아 남기 힘들어진다.

정치판 빼어 닮은 인기가수 팬클럽

흥미로운 사실은 팬클럽의 역학 구조가 정치권과 닮았다는 점이다. 최고권력자와의 친밀도에 따라 권력 관계가 재편되듯이 팬클럽의 권력 관계는 스타와의 친근도에 따라 결정된다. ‘누가 대기실에 들어갈 수 있느냐, 스타가 누구를 아는 척하느냐’에 따라 팬의 위상이 결정되는 것이다. 정보력도 중요하다. 스타의 공식 일정은 물론 비공식 일정까지 파악해야 한다.

주군(스타)을 향한 충성 경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스타의 매니저와 가족도 공략 대상이다. GOD멤버인 윤계상의 팬이었던 서지희씨(22)는 “가족과 가까워져는 팬들이 많다. 가족과 상의해 스타에게 냉장고나 홈시어터, 심한 경우에는 차를 사주기도 한다. 나도 친한 팬들과 함께 돈을 모아 윤계상 아버지와 함께 골프채를 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신인 가수의 경우 유동 표를 어떻게 잡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신화 팬클럽이었던 이영민씨는 “팬들이 일편단심으로 한 가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비해 ‘잡팬’이 많아졌다. 여름엔 댄스 가수를 쫓아다니고 가을엔 발라드 가수를 쫓아다니는 계절형 팬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잡팬’들은 대부분 신인 가수를 좋아한다. ‘선점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창당 멤버가 되면 스타와 가까이서 친하게 지낼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인데. 이들은 인터넷에서 뜰 만한 신인 가수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신인 가수 매니저들은 ‘잡팬’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데, 이들이 움직이는 양상은 ‘조직 선거’를 연상시킨다. ‘조직이 움직여야 뜬다’는 것인데, 이들은 새로운 팬클럽을 만드는 것을 ‘신당 창당’에 비유하며 설명했다. 버즈 팬클럽에서 만난 조영화·서지희·차은영·이영민 씨는 조호열씨의 회유에 재현석 팬클럽으로 이적했다. 그동안 팬클럽 활동을 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들은 곧바로 역할 분담을 하고 본격적인 ‘잡팬’ 규합에 나섰다. 

팬들의 조직력이 신인가수 인기 모으는 원동력

젝스키스 팬클럽 활동을 시작으로 버즈 팬클럽을 거쳐 재현석 팬클럽에 합류한 조영화씨(22)는 미디어 담당이다. 학교 다닐 때 타고난 입심으로 다른 팬클럽을 제압하고 팬들을 자기 진영으로 규합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앞으로 온라인 투표 조작(특수한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한다)과 게시판 도배질을 맡는다.

GOD 멤버인 윤계상의 팬을 거쳐 버즈 팬을 하다가 재현석 팬클럽에 합류한 서지희씨(22)는 홈페이지 담당이다. 그녀는 재현석씨와 미팅을 가진 후에 그의 이미지에 꼭 맞는 파스텔톤의 팬카페를 개설해 주었다. 그녀는 요즘 비슷한 팬카페를 여러 개 만들어 ‘허장성세’를 조성하고 있다.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그녀는 일가친척의 아이디를 총동원했다. 

 
버즈 팬클럽 활동을 하다가 이적한 차은영씨(21)는 조직 담당이다. 그녀는 공개 방송과 팬사인회를 비롯한 각종 오프라인 행사를 맡을 예정이다. 평소 오지랖 넓은 그녀가 이끌 대상은 바로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다. 앞으로 그녀는 이들을 이끌고 현장에서 세 싸움을 지휘하게 된다.  

맞언니 격인 이영민씨(28)는 운영담 당이다. 신화의 멤버 민우 팬으로 팬클럽계에 입문한 그녀는 버즈 팬클럽으로 옮겼다가 다른 팬들을 이끌고 재현석 팬클럽을 창당했다. 재현석 팬클럽 운영진은 모두 그녀가 스카우트한 팬들이다. 사통팔달의 조직 동원 능력에 감복한 기획사는 전격적으로 그녀를 로드매니저로 발탁했다. 팬클럽을 활용한 스타 마케팅에 대해 조호열씨는 “방송은 스타는 만들 수 있지만 가수는 만들지 못한다. 팬클럽 활용 전략은 저비용 고효율의 스타 마케팅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