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처녀' 김삼순을 아시나요?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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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한 트렌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요즘은 무엇이든 '국민' 수식어가 붙어야 모양이 나오는 것 같다. '국민 가수, 조용필' '국민밴드, 윤도현 밴드' '국민 배우, 안성기' '국민 여동생, 문근영' '국민 타자, 이승엽' 등등. 얼마 전 차기 대권을 노리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진영에서는 박대표를 '국민 언니'라 부르자며 흰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이 '국민'자 항렬에 새 식구가 들었다.바로 '국민 노처녀' 김삼순이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오는 김삼순은 '나이 많고, 얼굴 안 되고, 몸매 안 되고, 성격 안 되고, 집안 안 되고, 능력 안 되는' 대한민국 노처녀다. 이 '국민 노처녀'를 시집 보내기 위해 지금 전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진을 치고 있다.

'국민 노처녀' 김삼순

김선아와 현 빈을 내세운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 안방극장을 평정하고 있다. 방영 2주 만에 시청률 30%를 돌파한 <내 이름은 김삼순>은 ‘김삼순 어록’까지 유행시키며 <파리의 연인> 이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서른 살 노처녀의 일과 사랑 이야기’라는, 그리 흥미로울 것 같지 않은 주제를 내세운 이 드라마가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명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내 이름은 김삼순>은 사실 클리세(상투성)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 사각관계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의 뼈대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구성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평범한 처녀와 ‘현대판 백마 탄 왕자’에 해당하는 재벌 2세의 사랑 이야기 역시 ‘캔디렐라’ 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길 가다가 원자폭탄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서른 살 노처녀와 재벌 2세의 사랑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도록 <파리의 연인>이 그랬듯, 이 드라마 역시 두 남녀 주인공의 황당한 만남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파리의 연인>이 멜로적 성격이 강했던 것에 반해, <내 이름은 김삼순>은 로맨틱 코미디 성격이 강하다.

'캔디렐라' + 로맨틱 코미디 + 트렌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주인공 여성이 큰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있다. 주인공 남성은 초반에는 호감이 가지 않는다. 둘의 첫 만남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각자 상대가 있거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커서 이루어질 것 같지 않게 보인다. 다투다가 서로 변화한다. 맺어진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트렌디 드라마의 주요 설정 역시 재현된다. 기억상실증은 등장하지 않지만 트렌디 드라마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애용되는 불치병은 이 드라마에서도 애용된다. 삼순(김선아 분)의 연적인 희진(정려원 분)이 미국에서 암을 치료받고 돌아왔는데 아직 완치되지 않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결론을 예감하게 만든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사실 대중 문화의 거대한 콜라주(찢어 붙이기)다. 어디서 본 듯한 스토리, 익숙한 캐릭터, 짐작 가능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기획 당시 김PD와 김도우 작가는 50 편이 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분석했다. 덕분에 이 드라마는 캐릭터 구축과 스토리 전개,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착실한 사전 기획은 드라마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실성을 가지면서도 판타지를 만족시켜 주는 남녀 주인공 캐릭터,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 듯 모를 듯 모호하게 만들어 흥미를 유발하는 스토리 구조,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특한 재미를 가질 수 있도록 완결성 있게 만들어진 것이 이 드라마의 장점이다. 

드라마의 백미는 김삼순의 캐릭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주인공 김삼순의 캐릭터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르네 젤웨거와 <아멜리에>의 오드리 또뚜부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하늘까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두루 겸비했다. 특히 ‘구로동 샤론 스톤’ 염정아와 함께 코믹한 여배우 캐릭터를 양분해왔던 김선아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성취를 그대로 브라운관으로 끌고 들어왔다.

김선아는 김삼순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데 이는 김선아가 자신이 주연했던 영화 속 캐릭터를 '자기 복제' 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김선아 혼자서 '원 우먼 쇼'를 펼칠 때다. 스크린을 통해 구축한 자신의 캐릭터를 브라운관에서 '원 소스 멀티 유스'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현실의 김선아, 김선아가 영화를 통해 쌓아온 캐릭터, 드라마 속 배역이 ‘삼위일체’를 이루어내며 드라마의 매력이 배가되었다.

갖은 욕설을 포함해 극단적인 구어체를 구사하는 김선아의 캐릭터가 드라마를 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면, 현빈의 캐릭터는 여성 시청자의 욕망과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김삼순이 '있을 법한' 캐릭터라면 현진헌은 '있었으면'하는 캐릭터다. 이 두 캐릭터를 통해 <내 이름은 김삼순>은 현실에 굳건히 두 다리를 딛고 피안의 세계를 조망하게 해준다.

<아일랜드>를 통해 일약 ‘MBC 드라마국의 황태자’로 떠오른 현빈은 냉정함과 따뜻함,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양날의 칼날로 여성 시청자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현빈의 캐릭터 역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남자주인공 상이다. 그러나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과 이동건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동시에 구현되고, <발리에서 생긴 일>과 <봄날>의 조인성이 보여준 패션감각을 재현하는 현빈은 한 단계 진화된 캐릭터를 구현해 낸다.  

여기에 상대를 감동시키기 위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 주는 정도의 센스, 네티즌이 여기저기 퍼 나를 감각적인 사랑의 밀어를 속삭여 주는 정도의 센스, 아줌마 팬을 위해서 남자 주인공이 목욕 장면 등을 통해 살짝 몸짱 몸매를 보여주는 정도의 센스를 보여주며 그는 여성 시청자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관습적인 설정보다 새로움으로 승부 걸어

그러나 <내 이름은 김삼순>은 이런 ‘안전장치’에만 의존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비슷하면서도 2% 다른 드라마를 만들려는 MBC 드라마국의 자존심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HD베스트극장 <늪>으로 몬테카를로 TV페스티벌에서 최고작품상을 수상한 김윤철 PD는 기존 드라마의 장점을 재활용하는 것만큼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에도 나름으로 주목했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드라마의 곳곳에 배어 있다. <겨울연가> 이후 트렌디 드라마의 주요 코드로 등장했던 것이 바로 출생의 비밀이다. 그러나 <내 이름은 김삼순>의 두 주인공은 출신 성분이 분명하다. ‘방앗간집 셋째 딸, 김삼순’과 ‘여관집 둘째 아들, 현진헌’은 전대에 어떤 인연으로도 얽혀 있지 않다. 김PD는 “출생의 비밀은 매력적인 극적 장치다.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또 다른 특징은 악역이 없다는 점이다. ‘캔디렐라’ 드라마에 꼭 등장했던 ‘이라이자’가 이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삼순(김선아 분)의 연적인 희진과 희진을 사모하는 헨리 모두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단순한 선악구조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트렌디 드라마보다는 정신 연령이 높다. 김PD는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고 싶어서 관습적인 설정을 많이 포기했다. 쿨하게 만들겠다.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취재후기>

김삼순 역을 소화하기 위해 김선아씨가 몸무게를 6kg이나 불렸다고 하는데, 촬영 현장에서 직접 보니 16kg은 불린 것 같더군요. 멀리서도 김선아씨의 '우람'한 체격이 돋보였는데, 특히 하체가 튼튼해 보여서 마치 역도선수를 보는 듯햇습니다(실제로 드라마를 보면 여자들만 사는 김삼순의 집에 역기가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김삼순의 캐릭터를 위한 설정인 듯) . 

그동안 영화에서 나름대로 육감적인 몸매를 보여준 배우였는데,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과감히 망가졌더군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위해 연예인이 몸무게 늘이고 줄이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버리고 과감히 드라마에 '올인'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시청자와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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