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편지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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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만큼 콩을 즐겨 먹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조상들은 수많은 종류의 야생 콩을 개량해 밥에 얹어 먹고, 볶아 먹고, 떡고물로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모자라 두부를 쑤고 콩나물을 기르고, 된장 간장을 띄워 사시사철 콩 요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한국인이 이처럼 콩에 집착한 까닭은 무엇일까. 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이 유목민이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본래 육식을 즐기던 유목민인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해 농경을 하게 되면서부터 부족한 단백질을 콩으로 대신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원형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은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스타 가운데는 우리 민족의 이같은 원형 회귀 본능 덕을 본 사람이 많다. 이미자 조용필 김건모 조영남 차범근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한국인의 몽골리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외모 덕분에 더욱 사랑을 받은 스타들이다. 요즘 인터넷 검색 순위 상위권을 장기 점거하고 있는 축구 스타 박지성(사진)이나 박주영도 결코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몽골리안 스타일이다.

사냥을 해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특징은 용감하며, 끈질기고, 무엇보다도 팀워크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사냥하는 도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빚을 수 있기 때문에 부족민 간에 결속력이 강하다. 우리 사회가 유난히 집안과 핏줄을 중시하는 것은 유전자 속에 부족의 일원임을 끔찍히 소중하게 여기게끔 되어 있는 유목민의 정보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인의 원형 회귀 본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한때 자녀의 미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원정 출산이 봇물을 이루더니, 법으로 그것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일자 국적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적 포기자의 부모 상당수는 전·현직 고위 관료, 교수, 변호사 등 이른바 우리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들이다. 5년여 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가 책임을 지겠다며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20년 전부터 프랑스 국적자였던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그러고 보면 전국민이 외모뿐만 아니라 성품도 소박하고 솔직한 유목민 같은 박지성·박주영 선수와 사랑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일종의 헛헛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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