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빅딜설'은 사실인가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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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월간중앙> 기사의 진실과 부당한 압력의 실체 추적

 

‘진실 보도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점, 독자와 국민 여러분께 사죄합니다. 권력과 거대 자본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지난 6월20일 중앙일보사 계열의 시사 잡지 <월간중앙> 기자들이 비장한 성명을 발표했다. 기사 삭제에 대한 항의였다. <월간중앙> 7월호에 실릴 예정이던 ‘자크 로게-청와대-김운용 위험한 3각 빅딜 있었다’는 제목의 기사가 ‘권력과 거대 자본’의 부당한 압력으로 빠졌다는 것이다.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내부의 부조리를 외부에 폭로하는 사례가 드문 데다 그 외압의 실체가 청와대와 삼성그룹이라는 사실이 추후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6월24일 한국기자협회는 ‘정치 권력과 거대 자본이 결탁해 언론을 좌지우지한 이번 행태는 국민의 알 권리와 편집권을 짓밟는 한편 언론사를 길들이려는 구시대적 작태와 다름없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6월23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홍석현 주미대사 및 모 회사인 중앙일보와 특수 관계인 삼성의 외압을 밝힌 것은 중앙일보 계열사 소속 직원으로서는 ‘생존권’을 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격려했다.


성명서 발표 이후 관련자들의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애초 <월간중앙>이 보도하려 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둘째는, 그 내용이 사실인지, 셋째는 누가 기사 삭제 압력을 넣었는지이다.


<월간중앙> 7월호에 게재 예정이었던 문제의 기사는 모두 11쪽에 달하는 장문이었다. 핵심은 지난 5월20일 김운용 IOC 전 부위원장이 돌연 IOC 위원직을 사퇴한 배경에  자크 로게-청와대-김운용 간의 ‘빅딜 협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김운용 전 부위원장을 7월 총회 이후 가석방하는 조건으로,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총회 이전 자진 사퇴를 하고, IOC는 한국 체육계의 3대 과제를 적극 돕는다는 것이 빅딜의 핵심이다.


 
<월간중앙> 기사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미 청와대·삼성·중앙일보은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빅딜설의 내막은 이렇다. 4월15일 스위스 로잔에서 김정길 대한체육회 회장이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김부위원장 후임 IOC 위원 직을 한국인이 승계할 수 있도록 해 줄 것, 2014년 겨울 올림픽 평창 유치와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등을 요청했고,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김부위원장의 자진 사퇴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며 두 사안을 연결했다. 김운용 의원이 37개국 IOC 위원 60여명 에게 로비한 명단을 내세워 IOC를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5월3일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함께 김운용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비서실장은 국익을 위해 사퇴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완강히 사퇴를 거부하던 김운용은 결국 이 제안에 따라 자진 사퇴했다. 여기까지가 ‘빅딜 시나리오’의 내용이다.

'청와대는 기사 내용 부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월간중앙>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세계적 스캔들이 될 수 있다. 이런 의혹을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한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모든 답변을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에게 미루었다. 김대변인은 “김우식 비서실장이 김운용 전 부위원장을 만난 적은 있지만 가석방 이야기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월간중앙>이 취재 확인을 요청해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를 만났을 때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했는데 기자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월간중앙>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월간중앙> 취재 기자는 “청와대 관계자는 기사 내용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관계가 틀렸다고 항의한 게 아니라 국익을 위해 기사 게제 시점을 싱가포르 총회가 끝나는 한 달 뒤로 늦춰달라고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일단  4월15일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이 로게 IOC 위원장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당시 면담 자리에 배석했던 대한체육회 황보성 비서실장은 “대한체육회의 현안이 태권도·평창·IOC위원 한국인 승계 문제였으므로 로게 위원장 면담에서 그 세 가지 이야기가 오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운용 위원 사퇴를 조건으로 빅딜은 없었다. 로게 위원장이 그럴 전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회담은 2시간이었는데 그 중 한 시간은 동석자가 없는 비공개 회담이었다.


5월3일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운용씨를 만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 날은 김운용씨가 구치소 밖으로 나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날이었는데 김비서실장이 세브란스병원 진료실을 찾았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김운용 부위원장과 연대 동문이어서 친분이 있었다. 당시 회동에 청와대 윤후덕 업무조정비서관도 대동했으며, 여당 ㅇ의원도 동석했다. 김운용씨측에서는 가족이 동석했다. 이날 회동의 정황을 아는 한 관계자는 “면담이 끝난 후 김운용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각서를 써서 청와대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자기를 조속히 석방시켜 준다면 7월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 참석해 태권도 정식 종목 유지와 IOC 위원 한국인 승계등 주요 현안을 해결한 뒤 적당한 시기에 IOC 위원 직에서 자진 사퇴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적절한 시기에 사퇴한다’는 모호한 각서를 믿을 수 없었다. 청와대가 7월8일 총회 전 석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김운용은 끝내 5월9일 IOC 앞으로 사퇴서를 보냈다.

로게위원장, 지난해 11월 극비 방한

자크 로게 위원장은 <월간중앙> ‘빅딜설’ 보도와 관련해 “IOC위원장으로서 어느 종목의 올림픽 정식 종목 유지 및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한 번도 확답을 준 적이 없으며 IOC 위원 선임에 관해서도 말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로게 위원장과 통화한 박용성 IOC 위원(대한상공회의소 의장)의 전언이다. 


자크 로게 위원장과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지난해 11월3일 자크 로게 위원장이 극비리에 서울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이 방문에 관한 뉴스는 국내 주요 언론  에 등장하지 않았으며 <매일경제>가 <재계 라운지>라는 토막 동정 난에 짤막히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IOC위원장이라는 국빈급 인사가 CIA국장처럼 비밀 방문을 했다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11월3일은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고혈압과 백내장 치료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되어 병원에 있던 시점이었다.


자크 로게 위원장의 처지에서 김운용이 싱가포르 총회에 등장하는 것은 악몽 같은 상황이다. 이미 ‘불가리아의 김운용’ 슬라프코프 IOC 위원이 싱가포르에 나타나겠다고 밝혀 우려되는 상황에(부속기사 참조)  김운용까지 등장한다면 ‘클린 IOC’를 외쳐온 로게의 입지가 흔들린다. 자크 로게 위원장의 이런 뜻은 여러 경로로 한국측에 전달되었다. 로게 위원장과 한국 체육계를 잇는 끈은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이건희·박용성 IOC 위원 외에도 K라고 불리는 한 한국인이 ‘밀사’ 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딜 시나리오대로 상황 전개돼

4월15일 로잔 회담과 5월3일 세브란스 면담에서 정말 ‘빅딜’이 오갔는지는 확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명시적인 확약이 없더라도 ‘김운용 의원 자진 사퇴→IOC의 한국 지원→가석방’은 IOC-청와대-김운용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해결책이었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확인 결과 이미 김운용씨가 서울구치소의 추천을 받아 가석방 심사 대상에 올랐고, 6월23일 법무부 심사를 받았다. 가석방될 가능성이 있다.


 
<월간중앙> 기사 사태의 세 번째 논란은  외압을 행사한 주체다. 기자들은 성명서에서 ‘권력과 거대 자본’을 외압의 주체라고 명시했다. 한나라당은 6월22일 “청와대와 관련 대기업 간부가 해당 언론사 간부를 수 시간 간격으로 연쇄 접촉하고 나서 기사가 빠져 버렸다. 따라서 이번 <월간중앙> 기사 탄압 사태의 몸통은 당연히 청와대이고 꼬리는 관련 대기업이다”라고 논평을 냈다.


하지만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청와대의 압력은 큰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ㅇ비서관이 <월간중앙> 대표와 취재 기자를 만난 날은 6월15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6월호 기사 삭제 파문을 겪은 바 있는 <월간중앙>의 태도는 완강했다. 출고를 앞둔 해당 기사는 17일 낮까지도 전혀 삭제될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6월17일 오후부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고위 관계자가 <월간중앙>에 전화를 했다. 두어 시간 후인 4시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구조본) ㅈ 상무가 <월간중앙> 편집실을 찾았다. ㅈ상무는 삼성그룹, 특히 상층부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조정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ㅈ상무는 <월간중앙> 편집실 회의실에서 1시간 가까이 있으며 <월간중앙> 김진용 대표와 허의도 편집장을 만났는데, 그날 저녁 9시께 기사 삭제가 정식으로 통보되었다. 기사 삭제에 청와대의 의중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17일 압력의 주체는 <중앙일보> 혹은 삼성이었다. <중앙일보> 홍석현 사주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매형이다.


삼성 구조본 ㅈ상무는 “사적인 일로 찾아갔을 뿐이다. 평소 김대표와 친분이 있었다. 기자들이 오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잡지사 기자(<월간중앙>은 아님)는 ”일반대중의 통념과 달리 요즘 언론사에 기사 압력을 넣는 것은 정치 권력이 아니라 대기업이다. 특히 삼성의 경우는 관계자가 방문하는 것이 기자들에게 큰 압박이다”라고 말한다.


<월간중앙>에 실릴 예정이었던 기사에는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IOC위원이며 김운용 위원과 이건희 회장과의 관계는 지난 재판 과정에서 일부 드러난 바 있다. 2004년 4월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증인으로 요청하기도 했는데, 김부위원장이 2001년 삼성으로부터 받아 유용한 것으로 알려진 7억원은 IOC 위원장 선거에 나선 자신에게 준 개인 후원금이었다고 주장했다. 2004년 8월 이건희 회장은 재판부에 김운용 전 부위원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11월3일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극비 방한했을 때, 이건희 회장과 서울 한남동 영빈관 승지원에서 만찬을 같이 했다. 이건희 회장은 7월8일 싱가포르 IOC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싱가포르 IOC 총회는 태권도 정식 종목 유지 여부가 위원들의 투표에 의해 판가름 나는 중요한 자리다. 이 때문에 정부는 세 팀으로 나누어 IOC 위원들을 상대로 공개 로비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최근 그루지야와 불가리아가 2014년 겨울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평창 올림픽 유치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터진 <월간중앙> 기사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서는 국익 논란이 일고 있다. 오마이뉴스 게시판의 한 네티즌(아이디: JHA60)은 “그런 사실을 공개하는 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냐”라고 비난했다.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이번 <월간중앙> 보도가 태권도 정식 종목 유지·평창 겨울 올림픽 유치·IOC 위원 한국인 승계 등 한국 정부의 노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자  김상수씨(문화기획자)는 “지금 벌어지는 국익 논쟁은 착란 현상이다. 태권도는 우리의 국기인데 이렇게 밀실 야합으로 정식 종목이 되는 것은 오히려 태권도를 더럽히는 것이다”라고 <월간중앙>을 옹호했다. <월간중앙> 취재 기자는 “진실은 국익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리고 국익을 단기적인 이익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1968년 창간된 <월간중앙>은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때 강제 폐간되었다가 1988년 복간되었다. 당시에 언론 탄압의 주체는 정치 권력이었지만, 25년 후 지금 압력의 주체는 대기업과 국익 여론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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