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 브라운관 뒤에서 날다
  •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05.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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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이즈> <너의 곁으로> 등 드라마 OST 연속 히트…“영상에 종속” 우려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대중 음악 부문이 최근 드라마 음악의 활기로 모처럼 미소를 짓고 있다. MBC 드라마 <내 사랑 김삼순>이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드라마의 배경 음악도 덩달아 인기가 폭발했다. 극중 주요 장면에 흐르는 이 드라마의 삽입곡 <쉬 이즈(She Is)>와 <비 마이 러브(Be My Love)>는 현재 컬러링 부분 상위권에 올라 있다.

SBS 드라마 <패션 70s>과 KBS 2TV 드라마 <러브홀릭>도 주제가만큼은 신세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과거에는 드라마가 떠도 부산물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드라마 시청률과 함께 음악의 히트라는 전리품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 들어 지상파 방송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드라마 음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노란 잠수함’이라는 드라마 음악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도 생겨났다.

드라마 OST의 대들보, 노란 잠수함

<내 사랑 김삼순>의 음악도 노란 잠수함의 작품이다. 그 노래들을 부른 가수는 음악 마니아들에게나 이름이 알려진 그룹 ‘클래지콰이’로, 이들은 이 드라마 음악과 함께 대중적 존재로 떠오를 가능성을 확인했다. 드라마 음악은 언제나 생소한 신인이 스타로 뻗어날 수 있는 공간임을 증명한 셈이다. 지금도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제곡을 불러 지명도 확보를 노리는 신인 가수들이 많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드라마 OST가 신인의 터전이라는 원칙도 깨졌다.

드라마 음악이 중요해지다 보니 기성 가수들도 경쟁적으로 이 판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중견 가수 이승철이 젊은 팬들에게 친숙해지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도 2003년 드라마 <로즈마리>의 <그냥 그렇게>와 지난해 <불새>에 삽입된 <인연>이 거푸 사랑을 받은 덕분이었다.

조성모는 작년 떠들썩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부른 곡 <너의 곁으로>에 힘입어 예전의 위력을 되찾았고, 독집 앨범으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한 박효신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일본 가요를 번안한 <눈의 꽃>으로 다시 인기 상승을 누렸다. 박효신의 라이벌인 김범수의 경우도 철 지난 자신의 히트송 <보고 싶다>가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면서 주목되었고, 여세를 몰아 <해신>에서 부른 <니가 날 떠나>로도 인기를 맛보았다. 심지어 슈퍼스타 조용필도 <영웅시대>의 주제가 <빛>을 노래했다.

인기 가수들도 드라마 OST로 골드 러쉬

이미 영역을 구축한 인기 가수들도 음반 시장이 몰락함에 따라 활동의 폭이 좁아지다 보니 너도나도 드라마 음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앞으로 스타급 가수들이 가요 순위 프로에서가 아니라 드라마 사운드트랙에서 기싸움을 벌일 것이다”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노란잠수함 같은 기획사에는 드라마 음악을 해보겠다는 가수의 부탁이 쇄도하고 있다.  

달라진 드라마 음악의 위상은 음반으로도 나타난다. 전에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하면 무조건 영화였다. 아무리 드라마가 크게 히트해도 여간해서 드라마 OST는 발매되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는 대작 영화라도 OST 출시가 뜸한 반면 드라마는 주말극이든 주중 미니 시리즈든 거의 예외 없이 앨범을 내놓고 있다. 벨소리와 컬러링은 말할 것도 없고, 음반 매장을 가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음악은 앨범으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이 정도면 OST라는 말의 무게 중심이 영화에서 드라마로 옮겨갈 판이다.

음악 관계자들은 드라마 음악이 갑작스레 사랑받고 있는 것을 음반 시장 불황의 여파라고 진단한다. 음악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당장 지불할 비용이 없고 늘 가까이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음악에 그나마 관심이 몰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음악 자체의 질적 상승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특히 삽입된 곡보다는 배경을 타는 연주 음악, 즉 스코어 부문의 도약이 두드러진다.

드라마가 영화 못지 않은 스케일과 위용을 자랑하면서 드라마 음악에 우수한 인력이 대거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곡가이자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교수인 박호준씨는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드라마 음악이 상업적 가치가 덜하나 좋은 음악이 호흡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그간 <재즈> <아일랜드> <환생> 등의 드라마 음악을 맡았다.

드라마 OST 수준도 한 단계 높아져

드라마 음악은 특성상 멜로디가 영상과 어우러져 호소력이 있는 데다 강한 연상 작용을 일으켜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낸다. 만약 주인공이 나올 때마다 특정한 음악이 흐른다면 그 음악은 거의 히트가 보장된다. 하지만 그러한 영상에의 종속성 때문에 음악적 색깔 보유에 민감한 가수들이 드라마 음악을 꺼려왔던 것이다. 지금은 경계와 무관심의 시선을 완전히 거두었다.

드라마 음악의 호황은 다시금 음악은 영상과 묶여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영상 시대의 무소불위 파워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제 영원히 음악은 홀로 설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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