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세균 청소 뒤탈은 없나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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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유해성 논란 ‘잠복’…유력 기관들은 “무해” 판정
 
 의약품 중에는 멀티 혹은 탤런트 소리를 듣는 제품이 적지 않다. 해열제로 개발되었다가 거의 만병통치약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아스피린, 우울증 치료제로 명성을 떨치다가 최근 비만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프로작이 대표적이다. 이 의약품들은 특정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되었다가 나중에 또 다른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탤런트·멀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최근 라면에 조사(照射)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방사선도 이제 탤런트 혹은 멀티 소리를 듣게 되었다. 본래 용도와 전혀 다른 목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방사선은 원래 치료용으로 개발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병원에서 몸 속을 촬영하거나, 암 세포를 죽이는 데 쓰이고 있다. 그런데 그같은 방사선이 어떤 연유에서 식품을 관리하는 데 쓰이게 되었을까. 

 국내 소비자만 모르고 있었지, 방사선 조사 식품은 이미 50여년 전 미국에서 등장했다.  이후 감자의 발아 억제, 양념의 오염 방지, 돼지고기의 선모충 박멸, 과일의 숙성 방지, 채소의 해충 제거 목적으로 쓰임새가 늘면서 방사선 조사량도 점점 더 불어났다.  

 한국에서 처음 방사선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1980년대 말로 추정된다. 소비자시민모임(소시 모) 김재옥 회장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사선 조사 공장을 세우고, 희망 업체를 모집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일본처럼 방사선 조사 식품을 감자 하나로 한정하라’고 요구하자, 방사선 조사는 의류를 살균하는 목적으로만 이용되었다. 이후 식품의 약품안전청(식약청)은 원자력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스물여섯 가지 식품(표 참조)에 대해 방사선 조사 허가를 내주었고, 시민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그 식품들을 섭취해 왔다. 

 문제는 방사선을 쪼인 식품이 어떤 것인지 소비자들이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식약청 법규에는 엄연히 방사선 조사 식품은 그 사실을 표기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업체들은 그동안 표기를  안 해왔다. 식약청은 식약청대로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속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식약청 한상배 연구관(식품규격과)은 “법규에는 완제품에만 방사선 조사 식품임을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방사선 조사 허가 식품 목록에서 알 수 있듯, 그동안 완제품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식약청이 국민의 알 권리·선택의 권리를 무시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방사선 조사 식품임을 표기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기피할까 봐 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소시모 김재옥 회장은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방사선 조사 식품은 인체에 위험한가.

 그 사실을 알려면, 우선 그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 한다. 방사선 조사는 식품을 본래 상태에 가깝게 보존하기 위해 단파장인 감마선과 X-선 등을 쪼이는 것을 말한다. 그 작업에는 감마선을 방출하는 방사능 물질( 코발트 60 또는 세슘 13)이 들어 있는 방사선 발생기가 이용된다. 

  방사선 발생기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식품을 투과한다. 그러면 에너지가 발생해 식품 속 생물체에 작용한다. 즉 식품 속에 숨어 있던 병균이나 곰팡이들을 몰살시키는 것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방사선 발생기가 방사능이 생길 만큼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고, 조사를 받는 식품이 코발트 60이나 세슘 137에 노출될 확률도 전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방사선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식품을 지나가 버려, 그것이 식품에 남을 확률도 없다고 주장한다.
 
‘식품내 세포 DNA 변형’ 의심도

많은 동물 실험에서도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식품이나 식성분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에게 그것을 먹이고, 동물의 성장과 건강 추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20여년 전, 미국 육군과 미국 농무부는 그 과정을 밟았다. 방사선 고용량을 조사한 닭고기를 6년간 생쥐·개·토끼·쥐 들에게 먹인 것이다. 그 결과 방사선 조사 닭고기가 동물이나 인체에 위험하다는 아무런 증거도 나타나지 않았다(1985년).   

 
 방사선 조사 식품은 영양학적으로도 일반 식품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저용량 방사선 조사 식품은 식품이 갖고 있는 영양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다만, 고용량 방사선을 조사한 일부 식품에서 비타민 측정치가 다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같은 변화는 통조림용 식품에서 나타나는 변화보다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 원자력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보건기구·세계식량기구·미국과학건강협회 같은 이름 있는 기관에서는 방사선 조사 식품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인정한다. 현재 방사선 조사 식품은 40여 나라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품목은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일본은 감자만 허가하고 있는데, 매년 1만5천~2만t에 발아 억제를 위해 방사선을 쬐고 있다. 1990년 전 세계에서 유통된 방사선 조사 식품은 약 50만t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이 방사선 조사 식품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소시모 김재옥 회장은 “방사선 식품의 모든 것이 모호하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환경운동가들은 방사선 조사 작업에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엄청나다는 이유를 들어, 유전자 조작 식품처럼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 주장에 따르면, 식품이 짧은 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받게 되면 그 내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무엇보다 식품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이 과산화수소 등 독성이 강한 액체로 변해 식품 세포를 파괴한다. 따라서 채소나 과일같이 수분을 많이 함유한 신선한 식품은 조사를 할 수 없다. 짓무르듯 형체가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녹색평론> 제69호).  

 더 큰 문제는 그 엄청난 에너지로 인해 식품을 구성하는 세포의 DNA 차원에서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 변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일부 식품 전문가는 방사선이 조사된 식품의 영양 물질이 변형되어 ‘특이 방사선 산물’이 생성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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