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위해 주저없이 도끼 휘두른다
  •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5.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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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 입단한 ‘맨유’ 퍼거슨 감독은 어떤 인물인가

 
요즘 한국 축구의 화두는 박주영(20·FC서울)과 박지성(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박주영은 지난해 10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과 MVP에 뽑힌 뒤 K리그와 대표팀에서도 소나기골을 터뜨려 올 시즌 한국 축구의 키워드로 자리했다.

박지성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을 2004~2005 시즌 네덜란드 리그 정상과 유럽 축구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올려놓으며 스타 반열에 들었다. 특히 박지성은 한국 축구사를 빛낼 대업을 이루어냈다. 한국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로 축구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게 된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스페인·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의 3대 빅리그’로 꼽힌다. 게다가 1백26년 전통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아스날과 함께 프리미어 리그 최고 명문 구단. 이 팀 사령탑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64). 1986년부터 20년 동안 팀을 이끌고 있는 그의 지도력과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무명에서 최고 감독으로 :그는 1941년 12월31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선박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아마추어 축구단에서 공격수로 뛰었다. 23세까지 퀸스파크 등 아마추어 팀에서 활약한 그는 1964년 스코틀랜드 던펌라인에서 프로 선수로 전향했다. 1967년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레이저스에 이적했지만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한 채 1973년 은퇴했다.

그 후 1974년 스코틀랜드 이스트 스터링에서 코치를 맡았고, 1978년 에버딘 감독으로 부임해 8시즌 동안 세 차례 리그 우승과 네 차례 FA컵 정상을 차지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스코틀랜드 대표팀을 잠시 이끈 뒤 1986년 11월 맨유 감독이 되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우승 트로피를 20여개 안겼다. 그가 최고 성적을 낸 것은 1999년.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와 FA컵 정상에 올랐고 유럽 챔피언스 리그마저 석권했다. 그는 그 해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외모는 서글서글한 동네 아저씨 같지만 그는 고집이 세고 자기 주장이 무척 강하다. 그의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선수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개성이 강한 데이비드 베컴. 베컴은 2003년 라커룸에서 퍼거슨 감독이 걷어찬 축구화에 맞아 눈두덩이 찢어지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또 맨유로 이적할 때 퍼거슨 감독과 사전에 접촉한 사실을 폭로한 네덜란드 수비수 야프 스탐과 벤치로 밀려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린 프랑스 골키퍼 바르테즈도 가차없이 팀에서 쫓겨났다.

지도자라면 누구나 그렇지만 그는 정말 지기를 싫어한다. 맨유 구단이 홈페이지에 ‘퍼거슨은 승리에 병적인 집착을 갖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이다. 맨유의 득점이 후반에 집중되는 것도 퍼거슨 감독의 강한 승부욕에서 비롯했다.

탁월한 전술·전략 :퍼거슨 감독은 절대 운이나 직감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만큼 철저한 전술과 전략을 바탕으로 경기를 지휘할 뿐 결코 도박처럼 경기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간판 선수를 과감하게 내보내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다. 일부에서 `‘정신 나간 지도자’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시즌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놀랄 만한 성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선박 수리공 시절부터 매우 열심히 일했다. 감독이 된 뒤에도 그의 이런 성격은 선수들에게 그대로 주입되었다. 아무리 세계적인 공격수라고 해도 수비를 위해 몸을 던져야 하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팀이 맨유다.

그가 선호하는 시스템은 4-4-2. 거의 포메이션을 바꾸지 않는다.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순도 높은 역습이 그가 좋아하는 축구. 맨유는 1990년대 전원이 참여하는 강한 수비, 빠른 윙 플레이어에서 공격수로 이어지는 역습을 펼친 프리미어 리그 첫 번째 구단이었다.

 
심리전에 능한 지도자
:그는 동기 유발을 잘 하는 노련한 지도자이다. 너무 자주 선수들을 압박할 경우 오히려 팀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반드시 필요할 때만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인다. 1999년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전반을 0-1로 뒤진 뒤 하프타임에 그는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우승 트로피는 너희들 바로 6피트 앞에 놓이겠지만 누구도 트로피에 손을 댈 수는 없다. 트로피를 만지고 싶다면 자신의 능력을 모두 쏟아내라.” 맨유는 후반 2골을 퍼부으며 경기를 뒤집었다.

그는 곤경에 처한 선수들을 완벽하게 보호하면서 선수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1995년 에릭 칸토나가 관중에게 이단옆차기를 해 8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을 때, 베컴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백태클로 퇴장당해 ‘탈락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았을 때 퍼거슨 감독은 융단 폭격을 가하는 언론으로부터 그들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그러나 반대로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는 가차없이 내쫓았다. 그래서 언론들은 그를 ‘팀을 위해서라면 주저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자’라고 평가한다.

유망주 발굴 능력 :선박 수리공으로 어렵게 일하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는 감독이 되어서도 사치스러운 투자를 증오했다. 지도자라면 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러나 그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가 아니면 영입하지 않는다. 2000년 이적료 3천만 달러(약 3백억원)에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맨유로 온 공격수 반 니스텔루이가 대표적인 사례. 그는 맨유 소속으로 100경기에서 무려 79골을 기록해 ‘반니는 퍼거슨의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초기 비난을 완전히 불식했다.

데니스 어윈·에릭 칸토나·폴 잉스·앤디 콜·로이 킨·데이비드 베컴·라이언 긱스·폴 스콜스·반 니스텔루이…. 그가 지금까지 맨유 유니폼을 입힌 선수들은 하나같이 맨유와 각국 대표팀에서 당당히 주전으로 뛰었다. 맨유가 지금도 전세계적인 부자 구단으로 꼽히는 데는 퍼거슨 감독의 확실하면서도 낭비 없는 투자가 크게 한몫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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