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주변에 쓴소리꾼이 없다”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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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병상 고언/연정 제안 등 최근 정치 행보에 우려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은 자타가 공인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다.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2002년 대선을 총지휘했고,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도 최대한 많은 의원을 신당에 합류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영어(囹圄)의 몸이다. 불법대선자금 모금과 4억원 뇌물 수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구속된 그는 복역한 지 16개월 만인 지난 5월2일 3개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지병인 중증혈관경련성 협심증 치료를 위해 시내 한 대학 병원에 입원을 허락 받은 것이다.

입원한 다음날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위로 방문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정씨 병실에는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30대 초반에 정치를 시작해 5선을 이루기까지, 여야 정치권은 물론 각계에 쌓아 놓은 인맥이 두터워서다. 하지만 그는 지난 두 달간 정치적 언급은 극도로 삼갔다. 사정이 어찌되었든 불법을 저지른 구시대 정치인으로 낙인 찍힌 처지이고, 사면이니 특권이니 하는 얘기가 오가는 마당에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던 그가 최근 병실을 찾은 한 여당 의원에게 이례적으로 자신의 심정을 절절히 털어놓았다. 참여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창업 공신으로서 보고만 있기에는 돌아가는 사정이 너무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정씨는 우선 노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걱정했다. 그는 “노대통령은 고집은 세지만 실용적인 사람이다. 자기와 다른 의견이라도 합리적이다 싶으면 얼마든지 수용한다. 문제는 요즘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인터넷 정치 그만 하라”

그에 따르면, 청와대 참모들은 대체로 너무 어리고, 비서실장이나 수석급 중에는 정치적 조언을 할 만한 사람이 드물다. 그나마 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 체제에서는 보완이 가능했는데, 문실장이 당의장이 된 후로는 오히려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반론을 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씨가 노대통령이 뭔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연정론을 제기한 것이다. “연정론에 집착하는 노대통령의 진정성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이상이지 정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라고 진단한 그는 연정은 될 가능성도 없지만 되어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이 잘못될수록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는 사람들인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설령 장관을 맡는다 해도 과연 제대로 국정을 이끌어 가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어줍지 않은 연정론 대신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내각에 전면 포진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자꾸 열린우리당을 멀리 두려 하지만, 어차피 정권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함께 지는 것이다. 특히 정권 재창출은 열린우리당 몫이다. 따라서 어려운 때일수록 여당 의원들을 대거 기용해서 남은 기간 함께 노력하고 함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다음 선거를 의식하기 때문에, 자기 실적을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 임기 말로 갈수록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과는 체질적으로 다르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씨는 또 노대통령이 인터넷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나타냈다. 노대통령 자신은 인터넷을 통해 전체 여론을 빠짐없이 점검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여론은 주로 양 극단을 대변하고, 그것도 감정적일 때가 많다. 여기에 빠지면 자기와 같은 의견에 대해서는 ‘거 봐라, 내가 맞지’ 하며 위안을 삼고, 자기와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반감이 앞서면서 어떻게든 설복해야겠다는 승부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말 없는 다수의 여론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라는 것이 정씨의 논리다. 

“정무팀 없앤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정씨는 따라서 노대통령이 하루빨리 인터넷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신 각계각층 인사들과 직접 만나 민심을 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대통령 좋다는 것이 뭔가. 대통령이 틈 나는 대로 밤 마실을 다녀야 한다. 추기경 집, 총무원장 집에도 가고, 불쑥불쑥 시장에 나타나 상인들과 소줏잔도 기울이고, 젊은 의원 서너 명씩 불러 번개 모임도 하고... 이런 말 하면 경호 얘기부터 꺼낼 텐데, 그거야 말로 핑계다. 적막강산 같은 청와대 안에 갇혀 모니터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현장에 나와 생생한 여론을 들어야 정확한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씨는 노대통령이 정무팀을 없앤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뜻에서, 또 그런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자꾸 정무팀을 없애는 모양인데, 그것 역시 노대통령이 현실보다 명분에 집착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연정’ 얘기까지 공론화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정무팀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공식적인 정무팀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평가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는 것이 낫지, 정무팀을 아예 없애서 대통령 혼자 판단하도록 만들거나, 또는 일부 측근의 말만 듣고 정무적 결정을 하도록 방임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느냐는 얘기다. 노대통령은 지난 해 정무수석실을 없앤 데 이어, 최근 비서실장 산하에 남겨 두었던 정무기획 비서관 자리마저 없앴다.

이런 노대통령의 판단에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정대철 전 고문은 화살을 김원기 국회의장에게로 돌렸다. 주변에 직언할 사람이 없으면, 그나마 노대통령이 정치적 사부로 생각하는 김의장이라도 총대를 메주어야 할 텐데,  ‘입법부 수장’이라는 이유로 마냥 뒷짐만 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노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때 그나마 고집 센 노후보에게 쓴소리를 도맡아 한 사람은 김원기·정대철 양날개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입법부 수장에다 탈당까지 했다는 이유로, 다른 한 사람은 아예 날개가 꺾인 처지여서 대통령 주변에 쓴소리꾼이 사라진 셈이다.

제2, 제3의 쓴소리꾼이 절실하다는 정씨는 그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노대통령 입에서 ‘지금 훈화하시는 겁니까?’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건 기분 나쁘다는 의미다. 그 소리가 나오지 않는 선에서라면 얼마든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도 대통령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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