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작은 권리 누리네
  • 김은남 기자 (ksisapress.com.kr)
  • 승인 200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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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참정권 일부 얻어…“국적법·선거법 개정은 시대적 필연”

 
서울역 앞 대우빌딩 지하 1층에서 중식당 ‘만다린’을 운영하는 추본경씨(56)는 일반에 중국 요리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자수성가한 전문가’로 학교 강단에도 종종 선다. 그런 추씨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직함 가운데 하나가 한성화교협회 외무부회장이다.

국내 최대 화교 단체의 간부로서 그는 요즘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10 년여에 끈질기게 로비한 결과 화교들이 참정권 일부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30일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화교사(史)에 한 획을 그은 날이라 할 만했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이 날, 국회는 선거 연령을 현행 20세에서 19세로 낮춤과 동시에 영주권을 소유한 장기 체류 외국인에 대해 지방 선거 투표권을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치관계법을 통과시켰다. 

물론 이 법에서 지칭한 장기 체류 외국인이 화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장기 체류 외국인의 범위를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으로 특정한 만큼 실질적으로는 화교가 그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선거관리위원회는 본다. 현재 선관위가 추정하는 화교 유권자 수는 1만1천여 명에 달한다.

이쯤이면 그렇게 많은 숫자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방 선거의 특성상 화교들이 몇천명 씩 모여 사는 서울 서대문구나 마포구, 인천 같은 데서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입후보자도 이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게 된다.

실제로 추회장은 앞으로 낮은 수준에서부터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해 가겠다고 밝혔다. 화교 장애인을 국내 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는 것, 화교 학교에 일정 수준 지원해 달라는 것 등이 그가 시급하게 꼽는 요구 사항이다.

화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면에는 뿌리 깊은 피해 의식이 깔려 있다. 1960~1970년대 10만명을 웃돌았던 국내 화교 수는 오늘날 2만 명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 등 역대 정부의 각종 차별 정책을 견디지 못한 화교들이 줄지어 이 땅을 떠났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외국인 영주권이 발행되는 등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테면 화교들은 “교육세를 꼬박꼬박 내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게 과연 무엇이냐”라고 반문한다.

의무는 ‘태산’인데 권리는 ‘쥐꼬리’

납세 등 의무를 강조할 때는 화교들을 ‘한국인’ 취급하면서, 납세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의 영역에서는 이들을 ‘외국인’ 취급한다는 것이 화교들의 불만이다.

문제는, 신세대 화교일수록 이런 차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사는 화교를 총 5세대로 구분하는 추회장은, 3세대 이하 화교의 경우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곧 타이완에서 태어나 자의 반 타의 반 한국에 들어온 1~2 세대 화교는 언제라도 중국에 돌아가겠다는 신념으로 웬만한 차별에는 눈을 감고 살아가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3세대 이하 화교는 사고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여름이면 막된장에 풋고추 찍어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마작보다 고스톱을 즐기는’ 이런 한국화한 화교들에게는 국적 개념이 날로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고 추회장은 말했다. 따라서 이에 걸맞게 국적법과 선거법이 바뀌는 것은 시대적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간 우리는 재일동포에 대한 참정권 부여를 거부하는 일본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우리 스스로는 국내 거주 영주권자에게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범해 왔다. 이번 법안을 대표 발의한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이런 모순을 극복하고 재외 동포의 권익을 적극 옹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법안 통과의 의의를 찾았다. 

국내 거주 화교들은 오는 7월27일 제주도가 행정 구조 개편안을 놓고 전국 최초로 실시하는 주민 투표에서부터 그들이 새로 얻은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단 제주의 경우는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이 아니라 지난해 개정된 주민투표법에 따라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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