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끝났지만, 상처는 그대로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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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폭행 사건 그후/가해자 유죄 확정…합의·탄원 영향으로 형량 낮아

 
“성폭행이 아니라 성행위였다니까요.” 지난해 12월17일 밀양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당시 제자들이 연루된 된 ‘밀양연합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해 이렇게 변호했다. 밀양연합 사건이란 2004년 12월7일 울산 경찰이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울산에 사는 한 여중생이 밀양 지역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1년 동안 수십 차례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이다. 범행 관련 학생이 무려 44명에 이를 정도로 많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광화문에서 가해자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까지 열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밀양 현지 주민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 2004년 12월 취재진이 밀양에서 만난 동료 학생·후배·경찰·교사 들의 절대 다수가 가해자를 옹호하고 있었다. 강요된 강간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화간이었다는 주장이다. 밀양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들은 “(구속된) 형들이 그러던데요. 그냥 같이 놀다가 서로 좋아서 한 거라던데요”라고 말했다. 구속된 학생들이 다니던 창원ㅎ직업학교 교사는  “여학생이 정상적인 애가 아니다. 여자가 헤픈 거다”라고 말했다. “재판 결과를 보면 언론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교사도 있었다.

“화간이었다” 주장 사라지지 않아

과연 그랬을까? 사건이 처음 고발된 이후 8개월이 지난 지금, 사법 처리 결과와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의 현주소를 되짚어봤다. 먼저 사건 관련 형사 재판은 모두 끝이 난 상태였다.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면 재판부는 가해자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4월12일 울산지방법원 재판부가 인정한 공소 사실 가운데에는, 예를 들어 2004년 5월22일께 가해자 4명이 서로 공모해 야외 테니스장에서 주먹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때리고 팔다리를 잡아 꼼짝 못하게 한 채 성폭행하고 이후 도망치는 피해자를 붙잡아 다시 성폭행한 일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유죄 인정 여부와 달리 형량은 대체로 가벼웠다. 관련 피의자 44명 가운데 13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그냥 풀려났다. 20명은 검찰 조사 단계에서 기소 없이 소년부로 송치되었다. 재판에 정식 기소된 사람은 10명이었다.
5월23일 부산지법은 기소된 10명 가운데 한 명(18세)에게 장기소년원송치(7호), 다른 4명에게 단기 소년원 송치(6호) 처분을 내렸다. 7호 처분은 2년 이내 교정시설, 6호는 6개월 이내 교정시설에 수감하라는 명령이다. 나머지 5명에게는 보호자와 자원보호자의 감호위탁·보호관찰·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40시간의 교화 프로그램 수강 명령을 내렸다.
7호 처분을 받은 가해자는 원래 부산소년원에 수감되어 있었으나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여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소년원에 이감된 상태다. 7호처분을 받은 가해자와 6호 처분을 받은 가해자 일부가 항고했으나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형량이 가벼운 이유는 죄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피해자측이 가해자 부모와 합의하고 가해자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썼기 때문이다. 합의문과 가해자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는 재판에서 가해자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것은 재판 이후 가해자측이 외부에 ‘무죄’라고 홍보하는 다니는 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가해자측 변호인 사무실의 한 관계자는 7월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재판 결과에 대해 “(성행위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결론 났다”라고 표현했다가 기자가 후속 질문을 하자 “항거 불능 정도의 강제성은 없었다”라고 고쳐 말했다. 그는 “집단 강간은 분명히 없었다. 애들이 놀다가 그렇게 된 것인데 처벌을 받은 것은 노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법원 판결문과는 다른 주장이다.

피해자, 전학할 학교 못찾아 한동안 고생

 
왜 피해자가 합의를 하고 탄원서를 썼을까?  그 배경에는 피해자 집안의 불우한 환경이 있었다. 피해자 주변의 정황에 대해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sisters.or.kr ) 이미경 소장이 7월14일 <나눔터> 50호에 쓴 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피해 여학생의 법적 친권자였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에 폭력이 심한 사람이었다. 사고 당시 여학생 어머니는 이혼해 떨어져 살고 있었다. 지난해 11월25일 사건을 경찰에 고발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이모가 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반면 아버지는 사건을 무마하는 데 바빴다. 가해자 부모들은 합의를 얻기 위해 피해자 집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들락거렸다. 어머니는 합의를 완강히 반대했지만, 친권자인 아버지가 합의에 동의했다. 당시 피해자는 자살 기도 이후 강제 입원 수용된 상태였다. 아버지는 독립해 살기를 원하는 피해자에게 따로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피해자가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가는 차 안에 가해자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 동승해 합의를 종용하기도 했다. 자고 있는 피해자를 깨워서 탄원서 쓰라고 강요한 일도 있었다. 합의서와 탄원서 뒤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합의금은 아버지의 전세금 마련 등에 쓰였다. 사태를 깨달은 피해자가 합의를 후회했지만 이미 재판은 끝난 상태였다. 피해 학생은 다시 가출해 어머니를 찾았고,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합의금은 어머니에게 한푼도 주어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월세방에서 동사무소 보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친권 변경을 요구했고 결국 아버지의 동의와 법원의 결정으로 친권이 바뀐 상태다.
사고 이후 피해자는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전학을 위해 고등학교 10여 곳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장기 결석생이라는 이유로 전학을 거부하는 학교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학에 성공했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전학 이후에도 가해자 부모 한 명이 학교 교실까지 찾아와 면담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합의와 탄원서 외에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부분은 성폭행 이후 벌어진 가해 집단과 피해 여학생과의 교류 관계였다. 재판부는 ‘사건 진행 중에도 (피해자과 가해자가) 친분관계를 유지한 점‘을 언급했다. 재판정 밖에서 피해자에 관한 악성 유언비어가 퍼진 것도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피해자에게 이른바 정상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하고 일방적인 편견이다. 집단 성폭행 피해자의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았다”라고 말했다. 불우한 가정 환경에다 집단 성폭행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어린 피해자의 복잡한 심리를 재판부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4월12일 1심 판결 때 판사는 형량을 낮춘 근거로 ‘사고 이후 피해자가 평온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판사가 이 말을 하고 있던 그 순간, 피해자는 10여 일째 학교에 결석하고 있는 상태였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재판 결과를 떠나 사회에 큰 반향을 남겼다. 현재 국회에는 밀양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 8개가 발의되어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집단 성폭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7월21일 다음카페 모임인 ‘밀양연합사건이 던진 과제와 해법’(cafe.daum.net/wpqkfehdhkwn) 회원 3명이 서울 합정동에 모였다. 지난 반년 동안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며 광화문과 인사동에서 시위와 서명을 해 온 네티즌들이다. 카페 회원 수는 6천3백명에 이른다. 이들이 받은 서명 7천개는 강지원 변호사가 준비하고 있는 수사 경찰 등을 상대로 한 민사 소송에 자료로 쓰일 예정이다. 지난 7월21일 저녁 회원들은 밀양 성폭행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 <그들만의 로망>을 보면서 토론을 했다.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에 출품된 8분짜리 동영상이다. 직접 재판 참관도 했던 카페 운영자 최재호씨(20)는 “처음 집회 때는 1백20명이 나왔는데 한 달 뒤 3차 집회 때는 10명이 나왔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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