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잃은 ‘형제 경영’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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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가 갈등, ‘투서 사건’으로 돌출…그룹 회장 교체 인사가 발단

 
재벌 형제의 재산 싸움이 또 불거졌다. 이번에는 ‘형제 경영’을 자랑해 오던 두산 가에서 벌어져 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분쟁은 두산그룹 박용오 전 회장이 박용성?박용만 두 동생이 그룹 용역업체와 위장계열사를 통해 1천7백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 불법 유용했다는 투서를 검찰에 넘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발단은 지난 7월 18일 두산그룹의 회장 교체 인사였다. 두산그룹은 고 박두병 초대 회장의 2남인 박용오 그룹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3남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임명했다. 겉으로는 ‘형제 경영에 입각해 순차적으로 그룹 총괄 경영권을 넘긴 것’으로 보였지만, 안에서는 형제간 갈등의 골이 깊었다.

직접적인 화근은 ‘경영권’이지만 그 배경에는 ‘애물단지 같은 자식’이 자리하고 있다. 두산 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지난해 아내를 잃은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잉꼬부부처럼 함께 살던 아내가 죽고 난 뒤 맘 붙일 곳이라고는 자식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장남이 계속 적자만 내고 있으니 자식을 위해 욕심을 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전 회장은 적자에 허덕이던 장남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두산산업개발 주식을 상당 부분 팔아 치웠다. 그래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해부터 두산산업개발에 욕심을 보이며 계열 분리를 요구해왔다는 것이 두산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공동 경영 공동 소유’를 주장해 온 두산의 다른 형제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박용곤 명예 회장은 올 초부터 박용오 회장에게 은퇴를 권유했다. 최근 인사가 단행되기 하루 전날인 7월 17일 긴급하게 열린 가족회의에서 다른 가족들은 박 전 회장이 끈질기게 요구한 계열 분리에는 반대하고 두산 그룹의 새 회장으로 박용성 회장을 추대했다. 요구를 묵살당한 박 전 회장은 이날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고 한다. 특히 18일 단행된 인사에서 두산가의 4세대 장자이자 박용곤 회장의 아들인 박정원 (주)두산 상사BG 사장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시킨 것이 박용오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박 전 회장은 개인 사업을 하는 장남 대신 차남인 박중원 상무를 두산산업개발 경영지원본부에 두고 기반을 다지게 하는 중이었다. 장남 때문에 주식을 팔아치워 지분율이 0.7%대로 줄어 가뜩이나 불안하던 박 전 회장에게 조카의 부회장 등극은 ‘기름’과 같았고, 급기야 동생들을 고발하는 무리수로 이어졌다.

두산의 다른 형제들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설령 계열을 분리해 두산산업개발을 넘겨주고 싶었다 해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두산산업개발은 ‘두산→두산중공업→두산산업개발→두산’으로 이뤄지는 계열사 순환 출자 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계열 분리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용오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을 차지할 경우 두산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은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고, 나머지 형제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계열 분리를 하려면 지분을 정리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두산 그룹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적어 소유 지배 구조가 취약하고, 잇따른 인수?합병으로 그룹의 자금 부담이 큰 처지였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두산그룹의 총수와 친인척 지분은 4.95%에 불과했다.
두산가는 박 전 회장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에 두산산업개발의 그룹 내 영향력을 크게 줄이는 작업으로 만약의 사태를 예방하는 쪽을 선택했다. 시간외 거래를 통해 두산산업개발이 보유하던 (주)두산, 두산엔진, 두산인프라코어 등 계열사 주식을 두산그룹 4세 11명에게 최근 매각한 것이다.

박용오 전회장 ‘배신’에 ‘그룹 퇴출’로 응징

이로 인해 두산산업개발의 (주)두산 지분율은 22.9%에서 12.8%로 낮아졌고, 박 전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경영권 확보를 시도해도 두산산업개발이 그룹 내에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두산가는 박용오 전 회장의 ‘배신’에 ‘그룹 퇴출’이라는 초강수로 응징했다. 박용성 회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돈 앞에 형제 없는 것이 아니라 원칙 앞에 형제가 없는 것이다. 109년 전통에 금이 갔다고 하는데 열 손가락 중 한 손가락 없어진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란 원칙에 반기를 든 이는 형제라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박 전 회장의 투서를 검토하고,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단순 음해성 투서로 보기에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용성 회장은 "확신하건데 박용오 회장이 주장하는 그런 비리는 없으며, 만약 검찰이 조사를 한다면 조사에 떳떳이 응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본인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형제간의 다툼은 법정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산 가의 형제들 외에도 ‘돈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형제들’은 많았다. 현대, 동아, 한화, 한라 등 수많은 재벌들이 형제간 재산 싸움을 벌였고, 그 끝은 비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최고의 재벌 기업이었던 현대 그룹의 적통을 누가 잇느냐를 놓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두 아들(몽구?몽헌)이 싸움을 벌이면서 2000년 ‘왕자의 난’이 벌어졌고, 현대 그룹은 쪼개지고 말았다. 현대자동차를 손에 넣은 정몽구 회장은 다행히 경영 수완을 발휘해 현대차 그룹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나눠 가졌던 정몽헌 회장은 계열사의 몰락과 검찰 수사 등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자살하고 말았다.

한때 국내 2위의 건설업체였던 동아건설도 최원석 회장과 동생 최원영씨가 재산을 놓고 다투면서 기업 몰락의 단초를 마련했다. 법정 다툼까지 벌이다 뒤늦게 화해를 하긴 했지만, 사회적 신뢰를 잃은 두 형제는 외환위기 때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한화는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이 유언을 남기지 않은 채 일찌감치 타계한 탓에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1990년대 초 형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상대로 부친이 물려준 재산을 독식했다며 상속재산 반환청구소송을 냈었다. 형제간에 30여 차례나 재판을 진행하면서 대결한 결과 빙그레는 한화그룹에서 분가했다.

한때 재계 서열 12위까지 치솟았던 한라그룹도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이 그룹의 몰락을 재촉했다. 동생인 정몽원 회장이 형인 정몽국 전 한라그룹 부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계열사 주식을 허락 없이 처분해 불구속 기소되는 등 형제간 재산 싸움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었다. 물론 한라그룹이 해체된 것은 무리한 사업 확장이 주원인이었지만, 이 역시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과욕을 부렸기 때문인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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