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땜질 “앓느니 죽지…”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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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새 우주왕복선 개발’ 전격 발표…“단열재 결함 보완에 한계”

 
미국 국립항공우주국 즉 나사(NASA)가 마침내 기존의 우주 왕복선을 포기하고 사고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본격적인 차세대 우주선 개발에 나섰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에 이어 2003년 콜롬비아호의 대폭발 참사를 일으켰던 단열재 결함 문제가 이번 디스커버리호 발사 때에도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0~20년 전 설계된 기존의 우주 왕복선 체제로는 ‘완벽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최근 신임 나사 국장으로 취임한 마이클 그리핀 박사는 “차세대 우주선 개발은 콜럼비아호의 참사를 불러왔고 이번 디스커버리호의 안전을 위협했던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사는 빠르면 이달 중 차세대 우주선에 대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미 주설계 시공사로 록히드 마틴·노드롭·보잉 사 등이 선정되었다.
 
사실 나사측은 콜럼비아호 참사 직후 단열재 결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일류 엔지니어를 총동원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지난 1980년대 이후 챌린저·콜럼비아·디스커버리·아틀란티스·인데버 호 등 모두 5대의 우주 왕복선을 운행해왔다. 이 가운데 챌린저와 콜럼비아 호를 폭발 참사로 잃었고 지금은 나머지 3대로 운행 중이다. 따라서 두 번이나 사고를 낸 단열재 결함 문제 때문에 또다시 디스커버리호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컸다.

나사가 지난 2년 반 동안 단열재 결함 연구와 수리 비용으로 무려 14억 달러를 투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말끔히 해결된 것으로 알았던 단열재 결함 문제가 이번 디스커버리호를 통해 다시 발생한 것이다.
 
단열재 결함 보완에만 14억 달러 날려

 
디스커버리호는 발사 2분만에 연료 탱크 바깥 쪽에서 단열재 조각이 떨어져나간 데 이어 우주선 하단에서도 단열재 파편이 떨어져나갔다. 정밀 카메라 진단 결과, 단열재 사이의 틈새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갭 필러’(gap filler), 즉 충전재가 디스커버리 선체 안쪽에 두 개나 튀어나와 너덜거리고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우주선의 대기권 진입 때 공기 흐름을 방해해 해당 부위의 온도가 섭씨 200도까지 올라가 자칫 폭발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사측이 급기야 디스커버리호에 대해 24년 간의 우주왕복선 비행 사상 처음으로 비행중인 우주인으로 하여금 해당 결함 부위에 대한 수리 작업에 나서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주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열재 결함을 수리하는 데는 기일도 오래 걸리거니와 비용도 엄청나게 든다. 현재 거대한 액체 연료 탱크는 대당 가격이 4천5백만 달러. 올해 하반기 발사할 예정이던 아틀란티스호와 인데버호에 부착될 연료 탱크가 현재 제작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여분으로 8대의 연료 탱크가 생산 단계에 들어가 있다. 이들 연료 탱크는 디스커버리호가 귀환한 뒤 문제의 단열재 결함에 대한 원인 분석과 처방이 끝날 때까지 사용이 중단된다.

무려 2백50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우주 왕복선은 흔히 현대 첨단 과학기술의 결집체로 불린다. 그럼에도 우주선의 대기권 통과와 재진입시 발생하는 섭씨 1,370도의 고열을 견뎌낼 수 있는 완벽한 단열재는 아직 개발하지 못한 상태다.
 
나사는 2년 전 콜럼비아 참사 직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디스커버리호 결함이 발견되자 곧바로 모든 우주선 발사 계획을 무기한 동결했다. 이에 따라 당장 오는 9월과 11월로 잡혀 있던 두 차례의 우주선 발사 계획이 취소되었다. 이번 동결 조처로 인해 연료 탱크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 루이지애나 주와 우주 왕복선 기지가 있는 플로리다 주의 직원 수만 명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실제로 지난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참사 이후 우주선 발사 동결 조처로 수백 명이 일자리를 잃은 바 있다. 그뿐 아니다. 오는 2010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을 완료하고 기존의 우주 왕복선 선단을 퇴역시키려던 부시 행정부의 계획도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새 왕복선, 원추형에 짐칸·조종석 분리

나사는 이번 디스커버리호의 발사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매년 3~4차례씩 최소 열다섯 차례의 우주선 발사를 계획했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현재 러시아와 협력해 우주 공간에 건설 중인 국제우주정거장의 완전 가동을 오는 2010년까지 실현시키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었다.

현재 미국 나사가 추진 중인 차세대 우주왕복선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 우선 지금은 우주선에 우주인작업 공간과 짐칸을 따로 두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우주인 전용 우주선과 화물선 전용 우주선으로 분리하는 것이이다. 또 다른 특징은 우주선 본체와 화물칸을 가급적 연료 탱크와 로켓 추진체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설계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주선은 연료 탱크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유사시 초강력 엔진에서 뿜어대는 불길은 물론 단열재 이탈에 무방비 상태다. 그러나 차세대 왕복 우주선은 맨 하단에 연료 탱크을 배치하고 바로 그 위에는 짐칸을, 그리고 맨 위에 승무원 조종석을 배치하는 일자형 구조로 설계된다.

또한 짐칸도 기존의 한계 용량인 20t에 비해 다섯 배나 더 많은 100t까지 화물을 실을 수 있다. 일자형 구조이니 만큼 우주선 길이도 지금의 56m보다 훨씬 길다. 예를 들어 무거운 화물만을 실어 나르는 대형 우주선의 경우 연료 탱크를 포함한 길이가 무려 105m에 달하며, 우주선만 실어 나르는 소형 우주선도 70m가 넘을 전망이다.

또, 지금은 우주선 모양이 비행기와 흡사하지만 앞으로는 원추형의 캡슐 모습을 띠게 된다. 우주인이 타는 조종석이든 화물을 실은 화물칸이든 똑같은 모양이다. 따라서 지구 귀환 때에도 현행 우주선처럼 남부의 플로리다주 우주 기지가 아닌 서부 지역에 낙하산을 펼친 채 착륙하게 된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여러 이점을 들어 대체로 새 우주선 개발에 호의적이다. 우선 새 왕복 우주선에 장착될 초강력 로켓이 화물을 최고 100t이나 실어 나를 수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이 정도면 달은 물론이고 화성, 심지어 더 먼 우주 공간까지도 필요 충분한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거의 완벽한 비상 탈출 장치를 갖춘 새 왕복선은 기존 왕복선보다 사고 위험을 최소 10배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새 우주 왕복선 기안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스코트 호로위츠 박사는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새 우주선은 안전하고 단순하며, 기존의 기술을 대폭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발이 빨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다. 차세대 우주 왕복선 제작에 소요될 수백억 달러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의회의 승인을 받아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사는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 예산을 타다 쓰기 때문에 단 1센트를 지출하더라도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올해 나사의 예산은 1백62억 달러로 그중 30%인 50억 달러가 우주 왕복선 사업에 투입되었다.

워싱턴에 소재한 군사·우주 전문 연구 기관인 글로벌 시큐리티의 존 파이크 소장은 “나사가 기존의 예산 범위 안에서 기존의 우주 왕복선 사업은 물론 차세대 우주선 개발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재원을 염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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