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노동자 정신은 검진 대상”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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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등 ‘Top man Group’ 정신 건강 연구하는 정혜신씨 인터뷰

 
‘CEO와 스트레스’ 설문조사 작업을 함께 진행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오래전부터 CEO처럼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많이 해야 하는 탑맨그룹(Top man Group)의 정신건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주)정혜신 심리분석연구소’를 설립해 새로운 형태의 심리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놓고 정혜신씨와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CEO들의 직업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데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원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적게 받지 않나?
    물론 그렇다. 그러나 CEO들이 자기 직업에 만족감을 느끼는 주된 심리적 경로는 성취감이다. 성취감이 개인적 뿌듯함과 강렬한 희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리적 행복감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핵심  키는 개인적, 내적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가이다.
    객관적 성취의 세계에만 익숙하게 살아온 남자들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하지만, 단순한 것을 아는 것이 그들에게는 제일 어려워 보인다. 

많은 CEO들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CEO는 운동이 최선이어서라기보다 접근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어서 선호하는 것 같다. 물론 몸의 건강이 자신감을 준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다. 현대사회에서는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신체가 깃든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면역세포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그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 사소한 이유로도 신체의 병이 생긴다. 암, 성인병, 면역 관련 질환 등이 대표적 질병이다. 스트레스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아시아권에서 1위이고, 전세계적으로도 톱 랭킹 권에 드는 고(高)스트레스 국가다. 이제 몸의 건강만 신경 써서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 같다.

그렇다면 CEO들은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저런 방법들을 무턱대고 찾기 전에 먼저 ‘내가 누구와 있을 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뻤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알 수 있다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행복감을 느끼는 일, 상황, 상대는 백인백색이다. 답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CEO들이 그렇게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정신과 상담에 대해서는 꺼려한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정신과’하면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찾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전에 비해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어져서 ‘그런 사소한 문제로 정신과 의사를 찾느냐’고 할 만한 개인적 고민들을 가지고도 정신과 의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CEO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평균치보다 덜 개방적인 편이다. ‘그런 개인적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개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 심해서 도저히 견디지 못할 수준에 이르러야 병원을 찾는다. 그래서 문제의 본질을 알고 미리 해결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것을 결국 혹독한 심리적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 최근 외국에서는 조직원의 정신적 에너지와 성과와의 연계성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발표되고, 실제 조직에서도 조직원의 심리적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체감하면서 CSO(Chief Spiritual Officer)라는 개념까지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긍정적 징후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하지 않아도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몸에 병이 없어도 건강검진을 해서 큰 병을 미연에 방지하듯이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많은 정신노동자들의 경우 정신건강도 검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문제가 심각해져서 불면이나 두통, 무기력, 집중력 감퇴 등의 신체적인 증상까지 나타나는 상황이 되면 상담보다는 약물치료가 더 도움이 된다. 이럴 때는 깊이 있는 상담치료가 오히려 힘들다. 

그렇다면 정신과 상담을 통해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나?
상담을 통해 문제해결의 솔루션을 급히 찾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정교하게 알면 해결은 단순하고 명확해진다.
심리분석을 하면 자신의 심리구조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심리에너지가 누수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그러면 문제해결의 방향이 정해지고 그로 인한 개별적인 해결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주요 의사 결정에 악영향을 끼친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CEO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자기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 아닌가?
드물지만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도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인내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일종의 ‘확신범’이 아닐까. 이번 조사에서도 드러났듯 ‘악영향이 없었다’고 답한 이들일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실제론 더 높게 나오지 않았는가. 자기의 스트레스 현실과 내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영향이 없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자기 자신이나 가족보다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일수록 ‘정신과 상담은 필요없다’고 단언하는 경향이 높았다. ‘조직인간’적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에 대한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배려가 적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유형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대한 인내력에서 가장 취약하다. 동일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고꾸라지는 진다는 사실도 개인적 행복감을 상대적으로 잘 느끼지 못하는 남자들의 부족한 정서적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 정신의학의 결론이다.

한 기업의 CEO라도 CEO이전에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 자기 에너지를 극대화하면서 최고의 효율로 살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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