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도 IQ 물려받을까
  • 표정훈(출판 평론가) ()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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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 <천재 공장>/생생한 사례로 우생학 허구 고발

 
전설적인 무용가 이저도라 덩컨이 작가 버너드 쇼에게 말했다. “저의 미모와 선생님의 두뇌를 합하면 얼마나 멋진 아기가 태어날까요?” 쇼의 대답인 즉 “나의 육체와 당신의 머리를 닮은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하지요?” 쇼의 재치를 보여주는 유명한 우스개 일화다. 천재 남자와 천재 여자 사이에서는 천재 아이가 태어날까? 1980년 미국에서 ‘후손 선택을 위한 저장고’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노벨상 수상자의 정자를 기증 받아 지능지수(IQ) 160 이상의 여성 회원들에게만 정자를 제공한다는 정자 은행이다.

1999년 문 닫을 때까지 19년 동안 이 은행을 통해 2백17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플로츠는 그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을지, 그들이 정말 천재인지 4년여에 걸쳐 조사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그런 은행(?)을 설립한 사람이라면 뭔가 특별한 고집이 있었을 것 같다. 설립자 로버트 그레이엄은 합성 안경 렌즈를 발명해 억만장자가 된 사람으로, 복지 정책 때문에 무능력자들이 재생산되고, 그런 열등인자들 때문에 인류가 퇴행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정자 은행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더 나은 인간을 만들겠다는 우생학은 역사가 길다. 가깝게는 나치 독일의 예가 있고, 멀게는 고대 스파르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스파르타의 남편들은 건강한 아기를 생산하기 위해 건강하고 멋진 청년이 자기 아내를 임신시킬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20세기 초 미국·영국에서 활발하게 연구된 우생학은 백인 기독교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 우생학은 흑인·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테러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의 우생학 지지자들은 정신지체자·알코올 중독자·간질환자·빈민·범죄자·정신병자 등과 그들의 가족을 모두 거세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공공연히 밝혔다. 그들 대부분이 유전적인 요인과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우생학적 통념 때문에 1930년대가 끝나갈 무렵 3만5천명이 넘는 미국인이 불임 수술을 받았고, 1960년대까지 2만5천명이 더 불임 수술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의 정자는 활동성 떨어져 ‘무력’

이 책에서 가장 궁금한 점, 과연 노벨상 수상자 정자 은행은 성공했을까? 이 은행에서 제공받은 정자로 태어난 30명을 취재한 저자에 따르면, 설립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아이들 모두가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또 머리가 뛰어나더라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정자 은행 출신 아이  2백17명 가운데 실제 노벨상 수상자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노벨상 수상자 3명에게 정자를 기증받았지만, 그들의 나이가 많은 탓에 정자의 활동성이 떨어져 임신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머리에 키 작은 천재를 여성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전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환경적 요인, 후천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뜻이 된다. 의학에서 질병 발생의 후천적 요인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쌍둥이 비교 연구가 쓰인다. 예컨대 쌍둥이가 서로 떨어져 살았을 경우 그들의 유전자 조건이 동일하다고 보고, 성장 환경 또는 생활 습관 차이가 어떻게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유전자에 의해 영향 받는 요인은 대략 30% 정도이며, 나머지는 후천적인 요인으로 결정된다. 나이가 들수록 유전적 요인이 더 강하게 발현되는 경향이 있지만, 후천적 요인이 70%에 달한다는 점은 이 정자 은행의 설립 목적이 애당초 달성할 수 없었던 것임을 말해준다. 

더구나 기증된 정자로 태어난 사람이 얼굴도 모르는 진짜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같은 아버지의 정자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복 형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 기증자의 정자에서는 무려 50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는 근친상간의 위험이 있는 수치라고 한다. 그 50명은 평생 서로가 같은 아버지를 두었는지 모르고 지낼 가능성이 크다. 

소설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는 진짜 아버지, 즉 정자 기증자를 만난 아들 톰이 등장한다. 톰이 만난 정자 기증자는 존경할 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지금까지 길러준 아버지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아버지와 피를 나누지 않은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게 단지 혈연의 문제일까요? 가족의 울타리에 누가 따뜻한 손길을 내미느냐, 이게 중요한 거죠.” 아직까지 혈연의 신화, 핏줄의 신화에 갇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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