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살고 ‘펑크’에 죽는 그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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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노출 테러’ 유탄을 맞은 홍대앞 밴드는 누구인가, 그들의 실체를 들여다보았다.

 
지난 8월3일 저녁. 홍대앞 라이브 공연장 롤링홀에서 인기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의 공연이 열렸다. 거친 여름비에도 불구하고 열성 팬 3백여 명이 몰려들었다. 공연장은 이들과 밴드가 한데 어울려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공연 막바지, 크라잉넛이 출세곡 <말 달리자>를 부르자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솟았다. ‘닥쳐!’ ‘닥쳐!’ 팬들은 가사를 따라 부르며 격렬한 슬램(서로 몸을 부딪치며 노는 것)을 연출했다. 크라잉넛 보컬 박윤식씨가 입에 머금은 물을 객석을 향해 내뿜었다.

1996년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출범한 크라잉넛은 인디 밴드 1세대에 속한다. 이제는 록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성공한 펑크밴드이기도 하다. 이 날 공연은 크라잉넛의 대중적인 인기를 남김 없이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닷새 전인 7월30일 오후, MBC <음악 캠프> 생방송 현장. 한 펑크 밴드가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들의 행위에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일반 대중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록 마니아들은 이 사건을 놓고 다른 논란을 벌였다. 그 중 국내 최대의 인터넷 록음악 동아리인 ‘네이트 록 동호회 WATTZ’에 올라온 의견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처음 기사를 보고 화면을 봤을 때 이놈들 참 멋진 놈들이라고 생각했다.···인디 밴드들이 뭔가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이들이 한심한 양아치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서에서 얼굴 가리고, 생방송인 줄 몰랐다느니···’(아이디 meercat). 일반 국민들이 이들의 행위를 두고 논란을 벌일 때, 록 마니아들은 이들의 행위가 펑크다웠냐 아니었냐를 두고 논란을 벌였던 것이다.

사실 외국 록 밴드 공연에서 밴드 멤버들이 옷을 벗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1960년대 말 도어즈의 리더 짐 모리슨은 공연중 바지를 벗어 경찰에 연행되었다. 1990년대 영국의 모던 록 밴드 펄프는 마이클 잭슨의 공연 게스트로 나와서 엉덩이를 까 화제가 되었다. 레드핫칠리페퍼스가 옷을 완전히 벗고 성기에 양말을 걸친 채 공연한 사건은 유명하다.

외국 펑크 밴드들 ‘과격 퍼포먼스’ 잦아

물론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일정한 의도에 따른 해프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령 레이지어게인스트더머신은 ‘반전’이라는 정치 이슈를 내걸고 옷을 벗었다.

일반적인 록 밴드에 비해 펑크 밴드의 경우 훨씬 과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1976년에 결성한, 펑크록의 원조 섹스피스톨즈가 대표적이다. 섹스피스톨즈는 공권력과의 마찰로 음악 활동의 상당 부분을 보냈을 정도다. 옷을 찢거나 벗어젖히는 것은 물론 악기를 두드려 부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기존 영국 사회의 주류 질서를 부정하고, 영국 여왕을 모독해 난리가 난 적도 있다. 당시 섹스피스톨즈는 영국 주류 사회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었다. 섹스피스톨즈의 공연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을 때 영국의 일간지들은 사상 최악의 방송 사고라고 비난했다. 방송을 보고 방송사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사람도 있었다. 이런 섹스피스톨즈의 파행은 펑크의 태생과도 관련된다. 

 
1970년대는 록 음악의 전성기였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등 하드록 밴드의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고, 핑크 플로이드 등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은 록의 음악성을 한 차원 높였다. 이들은 대규모 군중을 거느리고 메인 스타디움에서 공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기를 들고 록 정신으로 복귀하자고 부르짖으며 등장한 팀이 섹스피스톨즈였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음악에 메시지가 강한 가사를 얹어 부르는 것이 이들의 음악 소신이었다. 이 밴드의 리더 쟈니 로턴과 시드 비셔스 등은 찢어진 티셔츠와 천연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하고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단순하고 거칠어 큰 평가를 얻지 못했다.

문제 일으킨 멤버는 백댄서 아닌 ‘크루’

섹스피스톨즈와 동시대에 출범한 펑크 밴드들이 클래시·댐드·버즈칵스·스트랭글러스이다. 이 중 클래쉬는 펑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밴드다. 클래쉬의 리더 조 스트러머는 왜 음악을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희망이 되고 싶었다.” 클래쉬의 음악은 롤 모델을 찾지 못한 채 암울한 일상을 보내던 1970년대 청년층에 큰 영향을 미쳤다. ‘쓰레기같은 세상, 네 멋대로 살아라’는 정서야말로 당시 클래쉬의 구호이자 스스로 쓰레기임을 선언한 펑크의 정신이었다. 클래쉬에 의해 펑크는 일종의 ‘태도’를 넘어서 ‘사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흔히 섹스피스톨즈를 펑크의 창시자로, 클래쉬를 완성자로 부른다.

 
이번 해프닝 때 무대에 오른 누군가가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해서 또 다른 비난을 받았다. 그 옷은 클래쉬가 입고 다니던 옷을 본뜬 것이었다. 럭스 멤버들뿐만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펑크 밴드는 다양한 종류의 클래쉬 티를 즐겨 입는다. 클래쉬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경배 대상이다. 8월3일 공연한 크라잉넛의 보컬 박윤식씨도 클래쉬 티를 입고 있었다. 홍대앞에서 만난 한 펑크 밴드 멤버는 클래쉬를 존경하며, 그들의 음악을 듣고 밴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옷에 그려진 욱일승천기의 의미 또한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경멸하는 의미라는 것이 밴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때 펑크 레이블을 운영하기도 했던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씨는 “펑크 밴드들은 원래 역설적인 표현을 즐긴다. 섹스 피스톨즈는 공연 때 나치의 철십자 문양을 달고 나와서 ‘퍽큐, 파시스트’를 외쳐댔다. 클래쉬 티도 비슷한 맥락이다”라고 말했다.

클래쉬 티와 함께 사건 초기 언론에서 가장 큰 혼선을 빚은 것이 ‘크루’의 개념을 둘러싼 오해였다. 방송 제작진을 비롯해 대다수 언론은 무대에 오른 이들을 백댄서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동료’의 뜻으로 쓰이는 크루는 펑크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음악 평론가 박준흠씨는 “펑크는 밴드만의 음악이 아니라 팬과 함께 어울려야 맛이 나는 음악이다. 펑크 밴드들에게 크루는 열성 팬임과 동시에 ‘우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다른 록 장르와 달리 펑크에서는 크루들이 무대에 올라가 함께 노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말했다.

펑크록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사그라들었다. 펑크를 부활시킨 것은 1990년대 초반 등장한 너바나였다. 너바나가 발표한 앨범 <네버 마인드>는 섹스피스톨즈의 대표 앨범 <네버 마인드 더 볼록스>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헌사)였다. 너바나는 펑크는 아니었고, 흔히 얼터너티브록으로 불린다. 너바나에 의해 펑크 정신이 되살아났다면, 그린데이 같은 네오펑크 밴드들은 펑크에 팝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이로써 펑크는 대중적으로 재탄생했다. 

너바나 리더 추모 공연이 ‘효시’

국내 펑크 밴드들은 1990년대 중반 너바나와 그린데이의 곡을 카피해 부르면서 서서히 등장했다.

1995년 4월5일. 홍대앞 라이브클럽 드럭에서 ‘역사적인’ 공연이 열렸다. 이 날은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이었고, 드럭에 모인 팬들이 자체 추모 공연을 벌인 것이다. 이들은 며칠 전부터 연습을 하고 밴드를 급조해 공연을 치러냈다. 주동자는 드럭 주인 이석문씨와 현재 인디 밴드 코코어에서 활동하는 이우성씨였다. 물론 당시는 인디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을 때였다.

 
이 날 공연은 홍대앞 인디 음악의 효시이자 일종의 음악 혁명이었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씨는 “리스너들이 동시대의 음악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몇 달만 연습하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펑크라는 음악은 몇 년의 연습과 음악 이론을 공부하고도 무대에 오르기 힘들었던 기존 메탈 밴드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크라잉넛·노브레인·레이지본 같은 펑크 밴드들이 등장했다. 럭스 또한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펑크를 시작했다. 현재 홍대앞에는 이들 외에도 타카피·게토밤즈 등 펑크 밴드 50여 팀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어디서 활동하느냐,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느냐 등에 따라 골수 펑크에서 팝펑크 등으로 분류된다.

이번에 해프닝을 벌인 럭스와 카우치를 비롯해 라이브클럽 ‘스컹크 헬’에서 공연하는 밴드들은 홍대앞 펑크 밴드 중에서도 가장 골수 펑크에 속한다. 이들은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등으로 대표되는, ‘거침없지만, 불쾌하지 않은’ 대중적인 펑크 밴드들과는 상당히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펑크는 삶 자체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 모여 공연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다른 장르의 밴드 멤버들에 비해 유대와 결속이 매우 강한 것도 특징이다. 자신을 골수 펑크에 가깝다고 소개한 한 밴드 멤버는 “음악보다 중요한 게 생각이고, 펑크적인 삶이다”라고 말했다. 김작가씨는 “스컹크 헬의 대표 원종희씨와 거기서 활동하는 밴드들은 계약 관계로 묶여 있지도 않고 상하 관계도 아닌 동료들이다. 원씨나 그들은 대중 스타를 꿈꾸지 않았다. 그곳은 일종의 아나키 공동체 같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에서 그들이 보인 태도는 반펑크적이었다”

현재 홍대앞 인디밴드들은 스컹크 헬의 골수 펑크 멤버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여러 밴드를 접촉했지만 하나같이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들 대부분은 친구가 한 일에 대해 내가 뭐라 평가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현재 사태가 전체 인디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촉각이 곤두서 있었다. 내부에서는 이번 일에 대한 공론이 분분하다. 하지만 의도적이건 우발적이건 그들이 벌인 해프닝이 ‘펑크다웠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익명을 요구한 한 펑크밴드 멤버는 “옷을 벗은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보지만, 고의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그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의식을 못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곳에서 만난 밴드 멤버는 “방송 엿 같다고, 옷을 벗을 수도 있다고 본다. 언론과 여론의 과민 반응도 짜증 난다. 하지만 그들이 경찰에서 보인 태도에 실망했다. 그들이 한 짓은 펑크도 아니고, 객기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기회가 전화위복의 계기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밴드 멤버는 “수입과 카피에서 벗어나 이제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펑크 밴드들에게 이번 사건은 ‘너는 과연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느냐’ ‘네 음악의 주장은 무엇이냐’고 자문자답할 기회를 던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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