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뽑았는데 어디를 치랴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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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3대 관전 포인트

 
“검찰은 도청 사건 수사가 대북 송금 사건의 전철을 되밟게 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 10일 한 검찰 관계자는 ‘안기부 도청 사건(이하 도청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고민을 이렇게 압축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가운데 특검이나 특별법을 통해 전모가 밝혀지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도 싫다는 것이다. 검찰이 서울중앙지검 공안·특수부 검사 15명으로 수사팀을 짜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수사 시작 단계에서부터 안팎 상황이 심상치 않다.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검찰이 편파 수사를 하고 있다며 반발이 드세다. MBC 이상호 기자를 소환할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부터 조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청 사건에만 집중할 뿐 사건의 또 다른 축인 정계-재계-관계-언론계 유착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며 검찰 간부들을 경찰에 고발한 것이 상징적이다.

최용익 MBC 논설위원은 지난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언론포럼 토론회에서 “이번 사건은 이건희 게이트라고 불러야 한다”면서 “도청 내용을 수사하고 이건희 회장을 구속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는 검찰에는 쇠귀에 경읽기인 것 같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향후 검찰의 수사 방향은 럭비공과 같다. 어디로 튈 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법이나 특검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논란이 어떻게 결말나느냐,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느냐는 것 등이 주요 변수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 세 가지 주목할 점을 짚어보았다.

이건희 회장 소환될까

검찰이 지난 9일 이학수 삼성 부회장을 소환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소환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X파일 녹취록에는 ‘회장님께서 말씀하십디다’는 등 이학수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언급한 대목이 여럿 있다. 일부 언론은 이부회장이 소환되자 ‘검찰, 이건희 회장 소환 검토’라며 이회장을 소환해야 한다는 데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건희 소환’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10년이 넘는 수사 경력이 있는 한 검사는 “소환되지 않을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심증이 아니라 죄를 범했다고 판단되는 증거가 뒷받침이 되어야 소환할 수 있는데, 지금은 ‘말’ 이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학수 부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도청테이프 내용에 대해)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검찰로서는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친다. 현 단계에서 실마리를 찾기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수가 있다. 도청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 여부다. 만약 검찰이 수사를 하는 쪽으로 결정한다면 수사는 이회장을 소환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수사하라는 주장이 얼마나 여론의 호응을 얻는가는 이회장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압수수색 할까

 
김승규 국정원장이 “압수수색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사상 최초로 국정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루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0일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수사 브리핑에서 “압수수색을 할 대목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당분간’이라는 말에 주목하면서 검찰이 시기 조절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검찰 한 관계자는 “검찰로서는 막상 압수수색을 했는데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협조’해서 이루어지는 모양이 되면 형식적인 압수수색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고, 당장 ‘강제’ 압수수색을 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국정원 특성상 어디를 압수수색해야 하는 지, 어느 수준까지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지 등 모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에 오래 근무해 검찰을 잘 아는 김승규 국정원장과 검찰 수뇌부 사이에 이와 관련한 모종의 이야기가 오가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수사 의지를 보이고 최소한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기와 형식, 절차 등을 따져보고 있다는 관측이다. 검찰은 현재 “2002년 3월까지 도청이 이루어졌다”는 국정원의 발표를 뒷받침할 아무런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도청을 했던 실무자들의 진술서라도 달라고 국정원측에 요청했으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테이프 내용, 수사할까

김종빈 검찰총장이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직까지 검찰의 공식 입장은 “도청 내용에 대한 수사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 조짐도 엿보인다. 대검 연구관들이 검찰총장에게 불법으로 얻은 정보라도 수사의 단서로 삼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검 한 관계자는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이론은 재판과 관련한 것이다. 검찰은 독수독과 이론을 제외한 상태에서 수사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테이프 내용을 수사하는 것이 헌법을 위반하는 것인가 등을 따져보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최대한 늦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특검·특별법 논쟁이 가닥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검찰 또한 입장을 분명히 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공개 불가’ 공세가 얼마나 호응을 얻는가도 변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이 국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거나, 심지어 “국정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이런 주장이 미칠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국내 정보에 있어서 국정원은 경찰과 더불어 양대 산맥이다. 양적으로는 경찰 정보가 월등하지만, 질적으로는 전문적인 분석 인력을 갖춘 국정원 정보력이 한 수 위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이 폐지되거나 상당 부분 약화될 수 있다. 검찰은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수사력이 있는 경찰이 국내 정보까지 독점해서 막강한 기관으로 거듭날 것으로 본다. 가뜩이나 국가청렴위원회라는 견제 장치가 생긴 마당에 경찰의 힘마저 세진다면 향후 검찰의 위상이 변화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 폐지는 곧 경찰이 독자적인 정보 예산을 운용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연 1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경찰이 쓰는 정보·보안 예산은 국정원에서 나온다. 정보는 돈에서 나오고 정보력이 기관의 힘을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국정원은 돈과 보안 감사를 통해 경찰을 장악해 왔다.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도청사건’ 막후에는 기관 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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