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형제의 난, 재벌 개혁 논의 불붙일까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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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문제는 단순히 총수 일가의 재산 다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족벌 경영과 ‘가족회의’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의사결정 구조, 경영권 승계 방식, 지배구조에 대한 거센 논란

 
옛말에 형제는 ‘남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아니 때로는 형제가 남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을 만나곤 한다. 겉으로나마 우애 있는 집안으로 칭송되었던 두산가(家)가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추악한 집안 싸움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양쪽 모두 상대방 흠집 내기 정보를 다투어 수집하는 등 치열한 탐색전에 들어갔지만, 어느 한쪽이 선제 공격을 감행하기는 위험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세간의 여론이 차가운 데다가, 어떤 사안이든 얽히고 설켜 있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두산가 경영권 분쟁의 발단은 7월20일 박용오 회장측이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 관련 비리를 담은 진정서를 검찰에 내면서부터다. 두산그룹이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상공회의소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전격 추대한 지 이틀 후다. 측근을 통해 진정서를 접수시킨 박용오 전 회장은 다음날인 21일 모습을 드러내 “(두 동생이) 수천억원 비자금을 조성해 사적으로 유용하고 해외 밀반출을 해왔던 것이 적발되자 공모해 형을 회장 직에서 축출하고 모함하는 작태를 보였다”라고 폭로했다.

명예회장 직으로 물러난 것이 자신의 의사가 아니었다는 박용오 회장의 주장은 다음날 반격에 나선 박용성 회장에게서도 확인된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원칙에 입각한 형제간 아름다운 대물림이라는 당초 주장을 뒤엎고 박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을 차지하고 싶어했고 이를 제지하자 계열 분리를 주장했다. 공동 소유·공동 경영 원칙에 어긋나 가족회의에서 (회장 교체로) 결론 낸 것이다”라고 밝힌 것이다. 또 이번 사건의 성격도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박용오 회장의)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돈 앞에 형제 없다’는 세간의 평은 틀렸고 ‘원칙(공동 소유·공동 경영) 앞에 형제 없다’가 맞다고 주장했다.

경영권 분쟁, 2라운드 접어들어

물론 박용성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진정서 내용을 전면 부정했다. 그는 “가뭄에 콩 나듯 회사에 나온 사람이, 골프나 치러 다니는 사람이 그 많은 비리를 어떻게 조사할 수 있었는지, 회사 문제를 잘 알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라며, 고소인(박용오 전 회장)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박용성 회장이 되물었듯이 진정서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진정서의 골자는 박용만 부회장이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와 함께 미국 위스콘신에 ‘뉴트라팍’이라는 위장 계열사를 차려 8백70억원을 밀반출했다거나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태맥’ ‘동현엔지니어링’ ‘넵스’ 같은 회사를 통해 각각 7백억원, 2백억원 등 비자금을 총 1천7백억원 조성했다는 것이다. 진정 내용의 진위 여부는 7월25일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가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두산가 분쟁은 1라운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1라운드의 폭발력이 채 꺼지기도 전인 8월8일 두산그룹이 두산산업개발이 1995~2001년 2천7백97억원에 이르는 분식 회계를 해왔다는 사실을 공시를 통해 터뜨렸다. 2라운드를 연 것이다. 이것은 당시 회장으로 재임하던 박용오측을 겨냥한 것으로  박용성·박용만측의 ‘맞불’로 해석되었다.

물론 박용오측도 응전했다. 두산가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1999년 두 차례에 걸려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 유상 증자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박용성 회장 등 일가 28명이 대출금으로 주식을 인수했고, 대출금 2백93억원의 5년치 이자 1백38억원을 회사가 대납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측은 이례적으로 시인했다. 사실이지만, 8월5일 오너들이 자진해 갚았다는 것이다. 5일이라면 폭로되기 겨우 닷새 전이어서, 분쟁이 없었다면 과연 갚았겠는가 하는 의문을 낳았다.

그후 진원지가 불분명한 합병·매수(M&A)설이 나도는 등 국지전이 계속되었다. 6남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동복 형인 박용만 부회장과 함께 두산그룹 계열사 삼화왕관을 인수하려는 했다는 내용이었다(두산가는 1~4남과 5~6남의 어머니가 다르다). 이것은 용성·용만측이 용오측이 두산산업개발을 인수하려 했다고 공격한 데 대한 맞불로 해석되었지만, 용오 측은 이를 부인했다. 

양측의 싸움은 소강 상태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분명하다. 박용오 전 회장 형제들의  ‘반역자’를 단죄하는  ‘보복’ 조처’도 잇달았다. 그를 가문에서 축출했을 뿐더러 두산산업개발·(주)두산 이사회를 통해 회장 직에서 해임했다. 사무실과 비서, 승용차도 빼앗았다고 한다. 박용오씨의 차남인 박중원 두산산업개발 상무도 해임했다. 또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손병천 전 춘천CC 상무는 물론 두산에 몸 담거나 부자재를 납품했던 그의 부친과 형, 동생도 내쳤다고 박용오측은 주장했다.

두산가 분쟁의 단초는 가족회의에서 회장 교체를 본격 논의했다는 올 5월, 늘려 잡아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던 1월로 보지만, 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는 증언이 나와 흥미롭다. 두산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YO(그룹내 박용오 회장의 애칭)의 장남 박경원씨( 당시 두산건설 상무)가 보유하고 있던 (주)두산 주식을 매각한 2000년부터 분쟁이 예고되었다고 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진원지는 두산산업개발

이번 분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꼽히는 박경원 현 전신전자(감시용 카메라 제조업체) 부회장은 2000년 할당받은 지분을 포기했을 뿐더러 2002년 3월 아예 사표를 던지고 독립을 선언했다. 형제 경영을 전통으로 여기던 두산가에서, 게다가 현직 회장의 장남인 그의 행동은 분명 일탈로 비쳤다. 두산가 장자인 박정원 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을 필두로 다른 4세들은 두산 명함을 갖고 경영 수업에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두산가의 공동 소유·공동 경영 원칙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 셈인 박경원 부회장의 독립 선언에 대해 그의 핵심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경영과 관련해 삼촌들의 텃세가 심했고 사촌들 간에 갈등과 반목도 없지 않았다.” 이 측근은 특히 YS(박용성 회장)보다  YM(박용만 부회장)이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있으면서 자기 세력을 심어 비리와 전횡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싸움의 표적이 박부회장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산가 4세 박경원씨의 탈 두산행은 3세대간 지분 변화도 초래했다. 박용오 당시 회장은 그룹 지주 회사 격인 (주)두산 지분을 1998년 3.95% 보유했으나 2004년에는 1.80%로 크게 떨어졌다. 사업 부진으로 고전했던 장남을 돕기 위해 보유 지분을 계속 팔았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지분이 0.46%에서 3.72%로 크게 늘어난 동생 용만씨를 뺀 형 용곤·동생 용성씨도 지분이 떨어졌지만, 지분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을 뿐더러 용오씨보다는 훨씬 많았다. 이미 공동 경영을 할 수 있는 토대인 공동 소유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두산산업개발이라는 회사의 향방이 중요해진다. 양측 모두 이 회사가 경영권 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용성·용만측은 두산산업개발 계열 분리를 용오씨가 주장해 그룹 회장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용오씨측도 이 회사의 독자 경영을 주장했다는 사실 자체는 시인하고 있다. 그룹을 통째로 먹으려는 의도라는 용성·용만씨 쪽과 달리, 용오씨 쪽은 법적 분리가 아니라 그저 독자 경영을 요청했다고 주장해, 양측의 온도차가 감지될 뿐이다.

세대 거듭될수록 가족 경영 파탄 필연적

두산산업개발은 두산그룹의 모태인 동산토건에서 이름을 바꾼 두산건설의 후신이다. 부실했던 두산건설은 2003년 현대그룹 계열사인 고려산업개발을 전격 인수하고 지난해 합병하면서 기업 내용이 좋아졌다. 두산그룹측은 그러자 용오씨측이 갑자기 욕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시점은 다소 엇갈리지만, 실제로 당시 박용오 회장이 올 들어 가족회의 등에서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독자 경영 혹은 계열 분리를 주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올 들어 두산 4세대로 지분 이동이 본격화하는 정황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자신은 지분이 적고 아들은 한 주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들 부자(父子)가 그룹에서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키웠을 법하다(재벌 전문가인 김진방 인하대 교수).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두산산업개발 합병·매수를 둘러싼 상반된 주장이다. 용성·용만씨측인 두산그룹은 용오씨측이 우호세력을 동원해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주장했지만 용오씨측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용오씨 쪽의 지분 변동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친 것인지, 아니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인지는 엇갈리지만, 용성·용만씨측이 적대적 인수 가능성에 대비했던 흔적은 발견된다. 회장을 교체하기 겨우 사흘 전인 15일 시간외 거래를 통해 두산산업개발이 보유중인 (주)두산 5백50만주 가운데 2백80만주를 두산 계열사와 4세에게 전격 매각한 것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지주 회사 격인 (주) 두산 경영권을 보호하려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회장 교체 전후에 양측의 갈등이 노골화한 정황도 적지 않다. 박용오 회장측은 동생의 비리를 고발하는 투서라는 전대미문의 반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당시 제주도 상공회의소 여름 세미나에 참석했던 박용성 회장도 알고 있었다고 밝혔던 것이 좋은 예다. 회장 교체 직전의 마지막 가족회의가 보안요원을 세워야 할 정도로 살벌했다는 증언도 있다.

두산가 분쟁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검찰 수사 결과가 관건이겠지만, 두산가 3세대의 동반 퇴진은 물론 사법 처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본다. 만약 그렇다면 4세대로 경영권을 이양하는 것도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소장(변호사)이 지적하듯이, 두산 문제는 단순히 총수 일가의 재산 다툼이 아니라 이른바 족벌 경영과 ‘가족회의’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의사결정 구조, 경영권 승계 방식에 대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재벌 개혁의 당위성이 재차 부각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순환 출자라는 지배 구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급물살을 탈 공산이 크다. 이것은 비단 두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8월18일 ‘삼성공화국 토론회’를 열고 재벌의 금융 계열사 분리를 위한 금융 관련 법 개정과 함께 순환 출자 금지·기업분할 명령제 도입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국의 재벌들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비결은 순환 출자에 있다. 두산그룹은 (주)두산-두산중공업-두산산업개발-(주)두산으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3월 말 현재 두산산업개발은 (주)두산 지분을 24.88%, (주)두산은 두산중공업 지분을 41.5%, 두산중공업은 두산산업개발 지분 을 30.08%를 갖고 있다.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두산산업개발 7.5%, (주)두산 10.38%, 두산중공업 0.02%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가족 수십 명이 나누어 갖고 있다. 선대부터의 전통이라지만, 두산가는 공동 소유하고 있어 공동 경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두산산업개발 계열 분리(혹은 독자 경영)라는 박용오 전 회장 요구를 다른 형제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지배 구조가 순환 출자 구조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대가 거듭될수록 가족 수는 많아질 수밖에 없으니 이들 간의 이해 관계 충돌이나 분화 요구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두산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두산의 경영권 분쟁은 이런 지배 구조가 촉발한 필연적 사건일 뿐이다. 그래서 재계 관계자는 LG 구·허씨 동거 체제가 LS·GS 그룹으로 분화한 것이나 삼성가·현대가 분리라는 전례에서 보듯이 두산가도 결국 형제 별로 기업을 할당해 계열 분리를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몫을 정해 독자 경영을 하되 시간을 두고 얽혀 있는 지분을 정리해 법적 분리 요건을 갖출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두산을 둘러싼 다른 이해관계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총수 일가가 이렇게 합의한다 해도 보유 지분이 너무 적어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두산가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양측의 공방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박용오 전 회장과 그의 장남 박경원씨는 측근을 통해 전달한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도 e메일을 통한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다. 박회장은 “지금 상황(검찰 조사)에서 무슨 말을 한들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분히 검찰 수사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박부회장도 “결국 진실은 하나이지만, (지금은) 말을 안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라고 답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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