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름통’ 우지끈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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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강타한 허리케인, 유가 위기 부채질…“100달러까지 상승” 전망도

 
미국 에너지 업계가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후폭풍에 휘청대고 있다. 더불어 세계 유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카트리나가 강타한 미국 남부 멕시코 만은 루이지애나·앨라배마·미시시피 주를 끼고 있는 석유 기지로, 미국 석유 생산의 35%를 담당할 정도로 석유 회사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또 미국의 대표적인 정유공장 밀집 지대이다. 미국은 원유를 하루 1천만 배럴씩 해외에서 수입하는데, 그 중 60%가 멕시코 만의 항구를 통해서 들어와, 텍사스 주와 앨라배마 주에 이르는 멕시코 만 연안을 따라 배치된 정유 시설로 향한다.

이번 카트리나 여파로 코노코·필립스 등 서너 곳의 정유회사가 물에 잠겼다. 문을 닫은 정유회사는 하루 32만5천 배럴 생산량을 자랑하는 세브론을 비롯해 줄잡아 열 군데에 이른다. 또 하루 49만4천 배럴 생산량을 자랑하는 엑손모빌 등 서너 회사가 감산에 들어갔다. 유가가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소비자들의 수요가 하늘을 찌르는 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가동량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정유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석유 생산 또한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 지역에 밀집한 석유회사들이 하루 생산하는 석유는 1백50만 배럴이지만, 카트리나의 여파로 8월30일 현재 석유 생산의 95%, 천연 가스 생산의 88%가 중단된 상태다. 석유회사들은 또 멕시코 만 근해에 설치된 해상 석유 시추선 8백19개 가운데 6백15개에서 작업 인부를 긴급히 철수시켰다.

석유 생산 95%, 천연 가스 생산 88% 중단

석유분석가들이 특히 염려하는 것은 본토의 석유 기지로 연결되는 해저 송유망 4천개의 안전 여부다. 석유회사들은 지난해 대형 허리케인 이반이 바다 속 진흙을 파헤쳐 망가뜨린 해저 송유망을 대부분 복구했지만, 이번에 이반보다 더 강력한 카트리나의 직격탄에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재 엑손모빌이나 세브론 등 이 지역 굴지의 석유회사들은 해상 시추선은 물론 해저 송유망에 대한 기초적인 점검에 나섰지만 피해 조사가 끝나려면 앞으로 며칠, 혹은 수주 더 걸리며, 손상된 시설을 복구하려면 몇 개월은 족히 걸릴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 해안경비대가 항공기를 멕시코 만을 조사한 결과 해상 곳곳에 설치된 석유 시추선과 해저용 석유 굴착 장치가 무너졌는가 하면, 일부 바다에는 기름이 유출되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미국 석유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석유연구소 수석 경제학자인 존 펠미 박사는 “휘발유는 물론 제트유와 기타 에너지 원료를 생산하는 정유 시설이 물에 잠겼다고 보도되고 있는데, 이야말로 정상적인 정유 활동을 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해 지역에는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아 시설 복구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석유 생산 활동 차질로 인해 빚어질 부정적인 효과다. 유가는 8월30일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한때 배럴당 70 달러를 넘어섰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배럴당 80 달러, 심지어 100 달러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일부 분석가들의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 카트리나가 끼친 정유시설 피해가 완전 복구되지 않을 경우 9월 말이면 배럴당 80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라이스 대학 에너지 전문가인 아미 재프 교수의 관측이다.

배럴당 80 달러는 유가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던 1980년대 초와 비슷한 가격대로 당시 고유가 충격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허리케인 이반이 멕시코 만을 덮쳤을 때 불과 몇주 만에 유가가 10달러 이상 오른 사실도 이번 카트리나 피해가 부를 유가 파장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잣대이다.

재프 교수는 “현재 상황으로 보면 배럴당 80 달러는 충분히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가격대이다”라고 단언한다. 워싱턴에 소재한 민간 경제 연구 기관인 국제경제연구원의 에너지 분석가 필립 벌리거 박사는 “지난해 9월 허리케인 이반이 엄습한 뒤 1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완전 복구가 안된 석유 시추선과 해저 송유망이 수두룩하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소비 위축→경기 침체 가능성

경제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고유가 시대가 본격화할 경우 이것이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다. 당장 미국 경제가 문제다. 고유가는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 내수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내수 시장의 침체는 또한, 미국 시장에 수출과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세계의 주요 경제권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석유 공급 차질로 인한 유가 추가 상승 그 자체도 직접적으로 세계 경제를 압박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 경제학자들이 설립한 글로벌 인사이트 사가 분석해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트리나의 여파로 앞으로 두 달간 미국의 일반 소비자들은 갤런당 3달러씩 휘발유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3/4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도 0.5%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연구소는 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까지 치솟는 최악의 상황이 오고 그에 따라 휘발유값이 갤런당 3달러 50센트에 육박할 경우, 미국 경제는 올 연말을 기해 침체의 늪에 빠질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이코노믹 아웃룩 그룹의 버나드 바몰 소장은 “카트리나가 몰고온 충격파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허리케인은 원유 및 정유 업계에 최악의 재난이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7억 배럴에 달하는 전략 석유 비축분을 긴급히 전용해 석유 부족분을 메우는 것에서 한가닥 희망을 찾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8월31일 비축 석유의 전용을 공식 발표했다. 이럴 경우 미국 에너지부는 멕시코 만에 있는 석유회사들에 대한 정확한 피해 조사가 끝나는 대로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비축 석유를 방출한다.
워싱턴·정문호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재난관리청(FEMA)이 사상 최대의 허리케인 재난에서 그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사상 최대 물피해의 심각성는 재난관리청으로도 역부족이다.

올해 창립 36년을 맞은 재난관리청은 8월29일 카트리나가 엄습하기 며칠 전부터 긴급 구조 의료팀 23개와 구조 수색팀 7개, 수의 방역팀 2개를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 사전 배치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막상 카트리나가 2백50억 달러 이상의 재난 피해를 안기며 루이지애나·앨라배마·미시시피 등 남부 여러 주를 강타하자 재난관리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대책에 따라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주민 대피와 구조 활동에 나섰다.
 
이번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뉴올리언스 주민 48만여 명이 카트리나가 엄습하기 직전 긴급 대피해 피해를 극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재난관리청이 이미 1년 전 마련한 대피 계획 덕분이었다.

한치도 빈틈 없는 재난관리청의 이같은 대응은 지난해 미국 남부 플로리다를 포함해 동부 여러 주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4개와 싸우면서 실효성이 입증되었다. 재난관리청은 우선 정확한 예보에 근거해 피해 우려 지역에 물·식료품·발전기 등 필수품을 일찌감치 배치해놓는 보급 계획을 마련했다. 이같은 계획에 따라 개당 5백명을 지원할 수 있는 컨테이너 17개가 지원되어 이재민 8천5백명에게 공급됐다. 또 재난관리청은 의료진 8천명을 갖춘 국가재난 의료시스템 산하 의료팀를 인수해 허리케인 피해 지역에 급파했다. 그 덕분에 지난해 재난 당시 1만명이 넘는 환자가 도움을 받았다.
 
재난관리청의 대책은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 9월 허리케인 이반과 프란세스가 각각 뉴욕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덮치자 재난관리청은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 자원봉사자들을 구했다. 그랬더니 불과 8주 만에 전국에서 2만1천명 이상이 자원했다.

통상 허리케인 재난을 당하면 피해 주민 수십만 명이 물에 잠기거나 파괴된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들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기 위한 ‘긴급 집단 거주처’ 계획을 신설한 것도 특징이다. 이번 카트리나의 엄습으로 거의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수십만 주민들도 이 계획의 수혜자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체계적인 대응 외에도 재난관리청은 미국 적십자사를 통해 구호요원 5천명을 뉴올리언스 등 피해 지역에 급파했는가 하면, 각 주와도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방위군 5천여 명을 동원했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물피해는 이같은 노력도 허사로 만들고 있다. 뉴올리안즈 등 수해 지구에서 약탈과 살인 사건까지 발생하자 미 정부는 치안 확보를 위해 난동자들에 대한 사살권까지 인가했다. 한편 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사망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미국 미시시피 주에서만 1백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미 당국은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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