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니” 머리 싸맨 ‘잠룡’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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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선 주자들 ‘연정론 방정식’ 놓고 동상이몽…대다수는 반대 또는 무시

 
오죽 답답해서였을까, 정치 현안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고 건 전총리가 먼저 물었다. “어제 대통령의 (임기단축)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것 같습니까.”

지난 8월31일 고씨의 연지동 사무실에서다. “걱정이네. 참.”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국민들이 머리가 아프겠어.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이니 머리가 아프지.” 딱 여기까지였다. 의원내각제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
 
는 다시 입을 닫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나홀로’ 정치 행보에 고 건 전총리를 비롯한 차기 대권 주자들은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정국 주도권을 노대통령이 한손에 틀어쥐면서, 2선 후퇴든 임기 단축이든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화하면 대권 로드맵 자체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정동영 장관, 가장 난감

열린우리당 대권 주자인 정동영 장관측은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 정장관과 가까운 인사는 “지금은 끌려가는 대로 그냥 끌려가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큰 고민은 따로 있다. 언제까지 노심과 계속 코드를 맞출 것인지 여부이다. 대통령이 ‘선도투’를 하면서 인기가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 장관이 계속 노대통령과 행보를 같이해 ‘리틀 노무현’으로 비치면 동반 몰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해답은 없다. 그래서 침묵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김근태 장관측은 말을 아끼면서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폭풍 전야이다. 김장관의 한 측근은 ‘민감하게’라는 의미에는 여차하면 장관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와 회담해 청와대 구상이 구체화하고 완결판이 나오면 그 이후에 장관이 견해를 밝힐 수도 있다.”

최근 노대통령과 김장관 사이에는 서먹한 관계를 회복시킬 만한 계기가 있었다. 노대통령이 홍석현 주미대사 후임을 김장관에게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장관은 서울대 백낙청 명예 교수를 추천했다. 하지만 백교수가 완강하게 거절해서 ‘노-김 합작’ 카드는 불발로 그쳤다. 이를 두고 밀월 관계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있지만, 김장관측 관계자는 “그건 그것이고, 대통령의 연정 구상은 별개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김장관측의 입장은 명확하다. 지역구도 완화라는 목표가 정당하더라도, 한나라당과 연정이라는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나 남북관계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전력해야지, 국민들은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 정치 문제를 대통령 혼자 주도하는 것을 반대한다. 김장관의 입장 표명은 상황에 따라 10~20일 안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은 연정론 고사 작전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표측은 노대통령과 회담에 응한 이유도 연정론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측은 박대표가 회담에 응한 것 자체를 못마땅해 한다. 한 측근은, 회담에 응할 필요도 없는데 응한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명박 시장측은 무시 전략으로 일관할 계획이다. 최근 이명박 시장은 사석에서 연정이든 개헌이든 노대통령이 주도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현체제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이 낫다고 복심을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무시 전략을 펴는 이시장측과 달리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이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9월1일 손지사는 한나라당 대전·충남 정치 아카데미에 참석해 노대통령의 구상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당에 대해서도 영남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손지사의 한 측근은 앞으로 정치 현안에 대해 자주 발언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과 대권 주자들 간의 머리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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