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서글 픈 초상’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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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파이낸셜 뉴스 압수 수색…기사 삭제한 대가로 금품 수수한 혐의

 

“만약 기업 협찬이나 광고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 어느 경제 신문, 어느 언론이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지난 8월30일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뉴스 편집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날 편집국 분위기는 비상 총회를 앞두고 어수선했다. 1주일 전이었던 8월22일 경찰청 특수수사과 수사관들이 파이낸셜 뉴스 여의도 본사에 영장을 가지고 들어와 사장실·경영지원실·광고국을 뒤지며 압수 수색했다. 압수 수색은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경찰은 컴퓨터와 회계 서류 10여 상자를 가져갔다. 경찰은 파이낸셜 뉴스가 몇몇 기업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거나 편의를 보아주는 조건으로 회사와 간부들이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는 첩보를 올해 7월 말 접수했다. 제보 내용은 주로 2002~2003년에 일어난 비리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미 당시 근무했던 퇴직 직원들이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이 언론사를 압수 수색한 것은 이례적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3년 전인 2002년 5월 정유업체 에쓰오일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했던 부서다. 우연히도 이번 파이낸셜 뉴스를 압수 수색한 단서가 된 첩보 내용이 바로 2002년 에쓰오일 주가 조작 기사와 연결되어 있다

2002년 5월16일자 기사 삭제 건에 대해 한 퇴직 기자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한국은행 어음부도율 기사를 썼는데 통상적인 기사여서 딱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 기사가 톱(머리 기사)에 올라 있어 놀랐다. 나중에 그 자리에 에쓰오일 주가 조작 기사가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에쓰오일 주가 조작 기사를 쓴 담당 기자는 ㅈ기자였다. ㅈ기자는 경찰이 에쓰오일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주가 조작·분식 회계 혐의를 잡았다는 기사를 출고해 초판 대장 1면에 실었지만 에쓰오일 임원과 홍보팀장이 본사를 방문한 뒤 갑자기 기사가 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 사건 직후 사표를 던지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도 했던 ㅈ기자는 우여곡절 끝에 2003년 4월 퇴사했다. 지금 ㄱ신문에서 일하는 ㅈ기자는 “나는 현장 기자로서 기사 요건이 된다고 보아 기사를 썼다. 다른 언론이 전혀 다루지 못했던 특종이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두 달 뒤 경찰은 에쓰오일 주가 조작·분식 회계 수사를 공식 발표했고, 에쓰오일 김선동 대표는 그 해 10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당시 항의 방문을 했던 에쓰오일 홍보팀장은 “그 기사에 사실과 다른 게 많다는 내용을 듣고 바로잡기 위해 찾아갔을 뿐이다. 금품 제공 등은 터무니없는 음해다”라고 말했다.


경제 신문이 취재원의 항의를 받고 기사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근래 파이낸셜 뉴스는 빈도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4월 금감원 특종 기사 삭제다. 2005년 4월25일자 가판에서 파이낸셜 뉴스는 금융감독원이 전자 공시 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이건희·정몽구 회장 등 그룹 총수들의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개인 신상 정보가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눈길 끄는 소재 때문에 다음날 다른 언론이 일제히 따라 보도했을 정도로 뉴스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 특종 보도를 파이낸셜 뉴스 배달판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파이낸셜 뉴스는 이틀 뒤인 4월27일에 ‘서울 국제금융 포럼’ 행사를 열었고 이 행사의 후원 기관 중 하나가 금융감독원이었다. 4월27일 저녁 이정재 금융감독원장이 주제 강연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파이낸셜 뉴스가 놓친 ‘가판 특종’ 중에는 2004년 11월29일자 가판에 실린 LG전선 사명 변경 기사도 있었다. LG그룹과 분리된 LG전선그룹이 그룹 이름을 LS로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LG전선그룹의 항의를 받고 배달판에서는 빠졌지만, LG전선그룹은 실제로 이름을 LS로 바꾸어서 파이낸셜 기사가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2004년 7월8일자에서는 특종은 아니었지만 ‘CJ-해찬들 법정 공방‘도 어찌된 일인지 빠졌다.


 

파이낸셜 뉴스는 기사 삭제뿐만 아니라 기업 후원금 문제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파이낸셜 뉴스는 2004년 가을 폐 휴대전화 재활용 캠페인을 벌이면서 몇몇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에 후원을 요청했다. 2004년 10월27일 언론 전문지 <미디어 오늘>이 파이낸셜 뉴스가 휴대전화 업체에 ‘억대 후원금을 요청했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당시 캠페인에 참가했던 한 휴대전화 업체 관계자는 ”후원을 요구받은 것은 맞지만 액수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경찰 압수 수색의 단서가 된 첩보 가운데에는 에쓰오일 기사 삭제 건 외에 한 이동통신사 캠페인 후원금 전용 의혹도 있다. 한때 파이낸셜 뉴스 노조는 회사측에 광고 실적을 기자 인사에 반영하지 말 것과 부당한 광고성 특집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파이낸셜 뉴스는 2000년 6월 출범한 신생 매체다. 전재호 사장이 전체 지분 가운데 최소 95% 이상을 가지고 있고, 넥스트미디어홀딩스가 주요 채권단이다.


지금 파이낸셜 뉴스의 내부 분위기는 침통하다. 한 기자는 “출입처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 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들 중에는 이번 사건의 핵심이 노조 문제라고 보기도 한다. 파이낸셜 뉴스 노조는 지난 1년여 동안 회사와 극한적인 갈등을 빚어 오면서 거의 와해 단계에 와 있다. 노조 집행부 자원자가 없어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만이 겨우 직책을 이어갈 정도다. 지난 8월18일 회사측이 노조위원장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으며 대기 발령을 냈다. 이런 정황 때문에 경찰에 첩보를 준 내부 고발자가 현 노조위원장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기자들로만 구성된 파이낸셜 뉴스 노조원들은 8월30일 총회를 열고 노조위원장 불신임안을 82%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노조위원장은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총회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편집국 분위기가 노조위원장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임호섭 노조위원장은 “내가 회사를 음해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 경찰 조사 파문의 핵심은 사주 비리다. 나라고 회사가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한편 파이낸셜 뉴스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청 관계자는 9월 중순쯤 경영진을 소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다른 경제 신문도 근거 있는 제보가 있다면 수사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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