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못하니 아이도 못 갖고…
  • 문정우 전문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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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집값 폭등→혼인 비용 큰 부담→만혼·독신 급증→출산율 저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곧 망할 것 처럼 보였다. 강력 범죄율이, 그 중에서도 청소년 범죄율이 가파르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인이 서부 개척 시대처럼 총을 차고 거리를 나다녀야 하나 하고 걱정할 무렵인 1990년대 후반부터 범죄율은 극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와 언론은 범죄율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온갖 분석을 내놓았는데, 괴짜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에 따르면, 그것은 말짱 헛소리였다.

그는 엉뚱하게도 낙태 허용이 범죄율 감소를 불렀다고 보았다. 20년 전 미국 법원이 낙태를 허용함에 따라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가 줄어들게 되어 범죄율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치관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바람에 사람들은 종종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우리 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보수 언론은 현정부를 때리는 호재로 삼기도 한다. ‘경제 정책과 교육 정책의 끊임 없는 실패로 아이 낳기가 끔찍해진 게 근본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식이다. 조선일보의 한 데스크는 칼럼에서 ‘현정부 출범 후 사교육비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한 번이라도 정확하게 조사한다면 해답은 금방 나올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여성들은 대체로 산모에 대한 정책적 배려 부족을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30대인 한 직장 여성은 “아이를 낳아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기르기가 너무 끔찍해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는 것이다. 직장마다 탁아소를 하나씩 지은다면 문제는 금세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성계가 아니더라도 이른바 여성의 출산 파업이 출산율 저하의 주된 요인이라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대부분 언론의 사설이나 칼럼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늘어나고 있으나 여성이 마음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지 못해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승권씨(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 그가 지난해 한국인구학회 전기 학술대회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의 출산력 저하는 유배우 부인의 출산 감소보다는 미혼자의 혼인 연령 상승과 독신에 주로 기인’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혼 여성들이 아이를 덜 낳아서가 아니라 미혼 여성들이 결혼을 안 해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적령기 남녀 미혼 상태의 46.3%가 비자발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청년실업, 아파트값 폭등으로 인한 결혼비용 부담 증가 등경제 문제로 미혼 남녀가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는 현상이 출산율 저하를 부르는 숨은 요인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출산율 저하는 ‘무관’

서울대 대학원 류원규씨(사회복지학과 박사 과정)의 주장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 22개 나라의 정책과 합계출산율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에서 ‘출산률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통념과 반대로 여성의 경제 활동 비율을 오히려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현상이 출산율 저하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 연구에서 ‘가족 해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그러운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혼이나 독신선언과 같은 가족 기능을 약화하는 행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라야 여성은 부담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책이나 제도 못지 않게 문화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9월중 저출산 원인을 세밀히 분석해 대책을 내놓을 예정인데, 뾰족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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