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들도 벌벌 떠는 제왕적 카리스마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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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통찰력·뛰어난 집중력 지녀…위압적 리더십도 엿보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불려가 혼난 임원이 느닷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적이 있다. 워낙 무섭게 혼나고 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출구를 찾다가 화장실 문을 출입문으로 착각하고 열고 들어간 것이다. 전직 삼성 구조본 간부 김 아무개씨는 “(이회장 얼굴이) 호랑이상인 데다가 한번 꾸짖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혼내기 때문에 혼난 이는 나이나 직급과 상관없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한번은 이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서울 한남동 소재 승지원에 모인 적이 있다. 한 계열사 사장이 한참 보고하고 있는데 이회장이 “사장이라는 것이 말하는 꼴을 봐라! 도대체 뭐라 하는지 아무것도 못 알아듣겠다. 넌 들리냐?”라고 옆자리에 앉은 이학수 부회장에게 물었다. 보고하던 계열사 사장은 이마에 식은땀을 닦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다음 갓 입대한 신병처럼 우렁차게 목소리를 내야 했다.

임직원들에게 아버지처럼 반말로 훈계

이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아버지나 형처럼 반말로 지시하고 훈계한다. 이회장이 평소 창의성을 중시하고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므로 사장단 회의에서는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내로라 하는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단은 한마디도 못하고 거칠 것 없이 쏟아지는 회장 말을 경청해야 한다. 1993년 7월 MBC가 삼성 사내용으로 제작된 이건희 훈시 비디오 테이프를 90분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이회장은 이 프로그램에서 삼성그룹 사장단을 줄지어 앉혀놓고 시종일관 반말로 훈계했다. 

이회장은 ‘제왕적 카리스마’라는 별명답게 초현실적 권위로 삼성그룹을 통치한다. 초현실적 권위는 전체주의 국가의 통치자나 종교집단 교주에게 피지배자나 신도들이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어렸을 때 한번쯤 부모에게 초현실적 권위를 느낀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부모의 약점과 한계를 발견하면 점차 부모에게 반발하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초현실적 권위를 느끼는 상대가 있다면 정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성인이 돼서도 초현실적 권위를 느끼는 이는 아이를 억압하고 미성숙 상태로 머무르게 하는 폭력적인 가장 아래서 자란 사례가 많다. 이 경우 가장은 아주 헌신적이기는 하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행동 특성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주종 관계에서도 예측이 불가능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다가 어떤 때는 따뜻한 리더십의 영향권 안에 있는 집단은 지도자에게 초현실적 권위를 느끼는 사례가 흔하다”라고 말했다.

 
집단 구성원들이 지도자의 행동과 판단을 예측하지 못하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스탠리 빙은 <마키아벨리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저서에서 “직원들이 당신을 대할 때마다 끊임없이 당신 기준을 읽어내도록 만들어 그들이 늘 식욕이 없는 상태로 살게 만들라. 그러면 그들은 하는 모든 일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자기 본의와 상관없이 임직원들이 예측하기 힘든 행동 패턴을 자주 보여 측근 임원들로 하여금 늘 긴장하게 하는 데 귀신 같은 재능을 보인다.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들은 선대 회장인 이병철 회장을 ‘강’에, 이건희 회장을 ‘바다’에 비유한다. 강은 방향성이 있으나 바다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룹 내에서 가장 이건희 회장의 속뜻을 잘 읽는다는 이학수 부회장마저 ‘이병철 회장이 부르면 무엇 때문에 부르는지 대충 감이 잡히지만 이회장이 부르면 왜 부르는지 전혀 감을 못잡는다’고 말한다.

강준만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과)는 저서 <이건희 시대>에서 ‘삼성 사장들은 이건희 생각을 읽어내는 데에 목숨을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용되는 사람일수록 바로 그런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라고 밝혔다. 이회장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하면 가차없이 내쳐진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6월1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이수빈 당시 비서실장과 면담하고 있었다. 이수빈 비서실장이 삼성그룹 사장단 10여 명을 대표해 ‘질 경영’을 부르짖던 이회장에게 “아직까지는 양을 포기할 수 없다. 질과 양은 동전의 앞뒤다”라고 건의했다. 이회장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티스푼을 데이블 위에 던지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4개월 후 현명관씨가 신임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또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회의에서는 한 이사가 업무 보고 도중 쫓겨나가기도 했다. 업무 보고를 받던 이회장이 “당장 나가시오”라고 고함을 질렀고, 그 이사는 쫓겨나간 뒤 대기 발령되었다. 이회장은 당시 “어떻게 지금까지 저런 중역이 삼성에 있는가. 난 책임을 남에게 넘기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사는 수출 부진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다른 계열사 책임이 적지 않다는 뉘앙스로 발언했다가 이회장 심기를 거슬린 것이다. 이회장 리더십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구체적인 부분까지 지시하는 섬세한 사람”

이회장은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우선 시급한 것은 인간미와 도덕성 회복이다. 도덕성을 회복하고 인간미를 살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회장은 인간미·도덕성·신뢰·예의범절을 강조하며 ‘삼성 헌법’이라고까지 칭했다. 하지만 편법 상속이나 대선 자금 불법 공여, 노조결성 관련 직원 매수와 협박처럼 인간미나 도덕과는 동떨어진 행위가 삼성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간부는 “인간미와 도덕, 예의범절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비열하기 짝이 없는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리면서 ‘내가 이런 것까지 지시해야 하냐’고 계열사 사장을 꾸짖는 것을 보았을 때 혼란스러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회장이 매우 섬세한 사람이어서 아주 구체적인 부문까지 직접 지시를 내리는 일이 많다고 하며 이를 ‘지적경영(指摘經營)’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또 “불법 도·감청 테이프에서 나온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학수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 공여에 대해) 이회장이 보고받지 않았을 리 없다”라고 말했다. 정혜신 박사는 “도덕성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도덕적 무장으로 자기를 통제하는 사람은 그만큼 일탈에 대한 욕망도 크다. 예의범절이나 에티켓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 내면을 지배하는 적개심을 감추는 가면으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정작 본인은 이를 의식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이 거둔 경영 성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초현실적 권위에 기초한 리더십이 탁월한 성과로 이어진 것일까? 이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건희 회장이 경영자로서 가진 다른 특성을 찾아야 할 듯하다.
국내외 언론 매체들은 이건희 회장이 지닌 통찰력과 리더십이 오늘날 삼성을 만들어냈다고 입을 모은다. 미래를 보는 탁월한 통찰력, 과감한 선제 투자, 일사불란한 조직 통제력 등등. 입에 담을 수 있는 모든 수사를 동원해 이건희 회장을 경영 천재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이회장이 뛰어난 통찰력과 집중력을 지녔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회장은 무슨 주제나 관심 사항이든지 한번 빠지면 아주 깊이 천착한다. 전직 삼성구조본 관계자는 “일본 NHK 다큐멘터리를 일본 도쿄 지사에서 수십개씩 복사해서 보내오면 3~7일 동안 틀어박혀서 모두 보고 나온다”라고 말했다. 일본 지사는 NHK를 비롯한 일본 방송 다큐멘터리와 신간 서적을 챙겨서 정기적으로 서울로 보낸다. 수십 권씩 도착하는 신간 서적을 이회장은 빠짐없이 읽는다. 이 과정에서 사업과 관련한 영감과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 경영에 활용한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이 1987년 11월 작고하기 전후 이건희 회장은 크게 돌변했다. 전직 삼성구조본 임원 김 아무개씨는 “선대 회장이 살아있을 때 이회장은 낯가림이 심해 사내외 인사를 만나는 것을 지극히 꺼렸고 사고나 행동에서 미숙함이 묻어나왔으나 이병철 회장이 1987년 11월 작고하자 사람이 바뀌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국내외 유명 전문 경영자들을 일일이 만나고 다녔고, 삼성그룹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면서 선대 회장이 보인 카리스마를 갖추어 갔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은 이 시절 앨빈 토플러나 피터 드러커 같은 미래학자의 저서는 빠짐없이 보았다고 한다. 제프리 이멜트 GE회장·칼린 피오리나 전 HP 회장·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 회장을 비롯한 전문 경영인들을 만나고 도올 김용옥·소설가 박경리·송자 전 연세대 총장 등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났다. 이 시절 보고 느낀 것이 정리되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부터다.

김씨는 “이회장은 말이 없기로 유명하지만 일단 말문이 터지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 신경영을 선언하고 로스앤젤레스·프랑크푸르트·오사카를 오가면서 하루 8시간씩 3개월 동안 말하더라”고 말했다. 또 이회장 발언을 받아쓰면서 정리하는 업무를 맡았던 김씨는 “그때 (이회장이) 많이 발언했지만 독창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그때까지 만난 국내외 인사들이 한 말을 정리했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홀로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다 보니 이회장은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28층 회장실에 출근하는 일은 거의 없고 서울 용산 이태원 자택에 머무르거나 외국에 나가는 일이 많다. 이회장은 지난 9월7일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김인주 사장이 검찰에 소환되기 며칠 전 일본으로 출국했다. 업무 파악은 삼성구조본이 제출한 보고서로 갈음한다.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이회장의 경영 행태를 비판한다.  

윤세준 교수(연세대·경영학과)는 “(이회장이) 출근도 하지 않고 베일에 싸여 신격화하고 있어 조직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또 무노조 경영 방식은 조직 구성원을 동반자 관계로 보지 않고 가부장적 지배 체제 아래서 종업원을 소모품으로 보는 전근대적인 경영 행태다”라고 말했다. 또 윤교수는 기업의 성과를 최고경영자의 공으로만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 집단이 거둔 성과는 리더십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나 시스템처럼 갖가지 변수를 총합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프리 페퍼 교수(스탠퍼드 대학·경영학과)는 ‘한 집단의 성공을 의인화해 설명하기 위해 그 집단 리더의 개성·태도·능력에 의해 성공을 창출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신화다’고 지적했다.

“신격화한 이회장, 현장 제대로 이해 못할 수도”

삼성전자 성공담을 이건희 신화로 단순화하면,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IBM 연구원을 지내던 ‘청년’ 진대제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세계 최고 반도체 업체 인텔의 자문연구원이던 ‘청년’ 황창규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삼성전자에 들어와 64메가, 128메가, 256메가, 1기가 D램을 개발한 공로는 사라진다. 또 반도체 개발 초창기 64KD램 개발을 앞두고 실제로 64km를 뛴 초기 반도체 개발 직원들의 땀은 증발해 버리고 만다.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이회장에게 도제식 경영 교육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사장단과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부터 1 대 1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이재용 상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는 두말 할 것 없이 이회장이다. 아직 경영 일선에 선보인 적이 없어 그가 어떤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줄지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재용 상무가 아버지로부터 사람 다루는 법을 충실하게 배우고 있다면, 이병철 선대 회장에서부터 이건희 회장을 거쳐 이재용 상무까지의 경영 행태는 초현실적 권위에 근거한 통치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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