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삼성을 움직이는가
  • 고제규 차형석 기자 / 도움 : 데이터 분석 신호철 기 (unjusasisapress.comr)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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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개 계열사 임원 1천6백39명 입체 분석/영남 47%·SKY 36%·남성 99%

 
9월5일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기준에 따르면, 삼성그룹 계열사는 59개이다. 삼성그룹 직원 수는 13만5천여명에 이른다. 이 거대한 그룹을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주인공들은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 계열사 임원들이다. 이들이 바로 삼성의 미래를 이끄는 주역이다.

그래서 임원진 분석은 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임원진을 분석해 기업 인사에 반영된 사회적 현상도 알 수 있다. 예컨대 성비 등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 임원진 분석은 더욱 의미가 크다. 최고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의 경영 마인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재 경영이기 때문이다. ‘1%의 인재가 99%를 먹여 살린다’는 그의 경영론을 보더라도, 삼성그룹의 미래는 각 계열사 임원진에게 달려 있다.
<시사저널>이 삼성 임원진을 분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임원진 분석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임원진의 고향이나, 출신학교, 나이 등은 개인 신상과 관련되기에 기업의 협조를 받기가 곤란했다.

<시사저널>은 탐사보도 기법인 컴퓨터 활용 취재(CAR:Computer Assisted Reporting)를 활용했다.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시스템을 통해 가장 최근 공개된 분기 보고서와 반기 보고서에서 임원진 명단을 확보했다.

공시 의무가 없는 법인의 임원진은 법인등기부등본을 통해 임원 명단을 확보했다. 이 자료를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데이터 베이스화했다.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 2002년 임원진 명단을 구해 비교·분석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재벌> 시리즈(연구책임자 김진방 교수) 가운데 하나로 ‘재벌의 경영지배구조와 인맥·혼맥’을 분석했다. 이 팀이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임원진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이 데이터 베이스의 기준 시점이 바로 2002년이다. 이 팀은 삼성 임원진 1천2백55명을 분석했다.

이회장 둘째 딸 이서현씨 ‘최연소’ 임원

<시사저널>은 이 명단까지 확보해 비교했다. 이런 비교를 통해 3년 만에 임원이 얼마나 교체되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사저널>은 삼성의 59개 계열사 임원 1천6백39명의 데이터 베이스를 분석했다(금융감독원 전자 공시에 빠진 임원은 개인 신상 자료를 구하기 어려워 분석 대상에서 빠졌다). 겸직자를 제외하고서다. 이들의 나이, 성별, 출신 고등학교, 출신 대학교, 전공은 각 언론사 인물 정보를 통해 확인했다.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임원진이 속한 계열사는 삼성전자로 6백94명이었다.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애니카자동차손해사정서비스는 임원이3명으로 가장 적었다.
전체 1천6백39명 가운데 나이를 확인한 임원은 1천5백41명. 이들의 평균 나이를 따져보니 얼추 50세(49.86세)였다. 40대 임원이 53.0%(8백17명)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41.7%(6백43명), 60대가 4.3%(66명)로 뒤를 이었다. 벼락 출세를 한 30대 임원도 있었는데, 0.8%(13명)로 소수였다.

30대 임원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인공들은 이재용·이부진·임우재·이서현·김재열 등 이른바 패밀리가 대부분이었다.
최고령 임원은 삼성전자의 임 관 회장(71·미등기)이다. 한국과학기술원 원장을 지낸 임회장은 1995년부터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으로 삼성과 인연을 맺고 있다.

전체 임원 가운데 최연소 임원은 만 32세(1973년생) 여성. 바로 이건희 회장의 둘째 딸인 제일모직 이서현 상무보였다. 그녀는 2002년 만 스물아홉 살 나이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그녀는 서울예고를 졸업한 뒤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현대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지난 1월, 그녀는 패션부문 기획담당 상무보로 승진했다.

이서현 상무보를 포함해 삼성의 여성 임원은 전체 임원 1천6백39명 가운데 불과 8명, 0.5%에 그쳤다. (삼성그룹 구조본 홍보팀은 9월9일 현재 여성 임원이 14명이라고 밝혔다). 여성 임원의 직책을 따져보니 8명 가운데 가장 높은 직책은 이정숙 상무와 이부진 상무였다. 

서울대 출신 2백87명으로 부동의 1위

임원 여성 비율만 살펴본다면, 초일류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셈이다. 

 
임원들의 고향을 살펴보니, 영·호남 격차가  뚜렷했다. 고향이 확인된 임원 수는 1천34명. 이 가운데 영남권 출신이 47.4%로 가장 많았다. 호남권은 7.0%였다. 수도권 비율은 30.9%였고, 충청권은 11.7%였다. ‘한국의 재벌팀’이 분석한 결과와 비교해 보아도 큰 차이는 없었다. 당시 출신 지역이 확인된 임원이 6백52명이었는데, 영남권이 41.0%, 수도권이 38.2%, 충청권은 14.1%, 호남권은 5.9%였다. 

영남권 비중이 높은 것은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고향이 경남 의령이라는 점과 관련해 설명할 수 있다. 현재 삼성의 임원진을 이끄는 허리층은 40대 후반과 50대 초반 임원인데, 이들이 입사한 때는 1970년 중·후반이다. 당시만 해도 호남 푸대접이 심해, 지역 연고가 입사와 승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방 대학별 임원 수로 나타나는 영·호남 격차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지방 대학 가운데 부산대학 출신이 78명, 경북대학 출신이 74명, 영남대학 출신이 60명으로 영남권 출신이 많았다. 이에 반해 전남대와 전북대가 각 7명, 조선대 출신은 3명에 불과했다. 대학간 학력 격차를 반영했다고 변명하더라도 10배나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물론 이런 지역 연고도 점차 약해지는 추세이기는 하다. 예컨대 그룹 임원 가운데 외국인 비율이 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현재 외국인 임원은 63명이다. 국적 별로 따져보면 미국 출신 임원이 대부분이다.

학력을 분석한 결과 대졸 이상이 기본이었다. 개중에는 고졸자도 있었으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학력 파악이 가능한 임원은 1천4백36명. 이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2백8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번 결과를 놓고 볼 때, 지난 6월3일 삼성전자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이 강조했던 삼성옹호론이 무색할 지경이다.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진장관은 삼성공화국이니, 삼성 인재 싹쓸이니 하는 비판에 대해 “삼성에서 서울대 출신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라며 적극적으로 삼성옹호론을 폈다. 진장관은 삼성을 발전시키는 것은 ‘학벌’이 아니라 ‘경쟁’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언론은 삼성전자의 상무보 인사들만 분석해, 지방 대학 출신이 서울대학 출신보다 많았다며 진장관의 발언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러나 전체 임원진을 분석해 보니, 역시 삼성은 ‘서울대 공화국’이었다. 특히 CEO의 학력을 살펴보면 진장관과 같은 서울대 출신들이 독식하고 있었다(상자 기사 참조).
서울대에 이어 임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고려대(1백18명)와 성균관대(1백18명)이었다. 연세대(1백11명) 한양대(1백9명)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재벌팀’이 2002년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서울대 출신 임원이 2백98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때도 지방 대학 출신은 전체를 다 합쳐도 2백41명으로 서울대 출신 임원보다 적었다.

유학한 임원 81%가 미국에서 공부

단일 학과 중에서는 경북대 전자공학과가  가장 많은 47명의 임원을 배출했다. 1967년 에 생긴 전자공학과는 1973년에 특성화 학과로 지정되었다. 산업체에서 필요한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국가 프로젝트 차원에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지원을 받았고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 학과로 발돋움했다.

사장대우급인 이종왕 법무실장을 비롯해 판검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서울대 법대 출신들도 약진했다. 서울대 법대는 임원 40명을 배출했다. 또한 가장 임원 수가 많은 삼성전자의 영향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30명)와 한양대 전자공학과(27명) 연세대 전자공학과(21명) 등 이공계 출신들의 강세가 이어졌다. 임원들을 전공 별로 따져보면 경영학(225명)보다 전자공학(252명) 전공자가 많았다. 삼성전자가 그룹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출신 고등학교를 따져보면 서울고(56명) 경북고(45명) 경기고(42) 경복고(34명) 등 이른바 명문고 출신이 많았다.

 
인재 경영을 추구하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론 때문인지, 재교육에 따른 학력 인플레 현상도 임원 사이에  두드러졌다. 학력 파악이 가능한 1천4백36명 가운데 석·박사 학위를 소유한 임원이 무려 5백7명, 35.3%에 해당했다. 전체 임원 10명 가운데 3.5명꼴로 석·박사 학위를 소유한 고급 인재 그룹인 셈이다.

이들 석·박사 학위 소유자 5백7명 가운데 외국 유학을 다녀온 임원은 2백53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백7명이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81%가 외국 유학지로 미국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전체 삼성 임원을 분석해 보니, ‘평균 임원’도 어림잡을 수 있다. 삼성그룹의 평균 임원은 나이로 따지면 50대, 지역은 영남권,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 석사 학위를 소지했으며, 직책은 상무급이었다.

이런 기준으로 평균 임원을 찾아보니, 전체 1천6백39명 가운데 삼성전자 서비스의 이 아무개 상무(50)가 뽑혔다(이상무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임원은 ‘임시 직원’, 3년 사이 50% 물갈이

경북 출신인 이 아무개 상무는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했다. 경영학과를 졸업하자마자 1977년 삼성 계열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4년 2월 상무로 승진했다. 입사한 지 23년 만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국내 대학원을 다녀 올해 마케팅 관련 석사 학위를 땄다. 이상무는 자녀로 1남1녀를 두고 있다.

 
삼성에서 이렇게 임원에 오르면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최고 수준 연봉을 받을 뿐 아니라, 승용차·컴퓨터·휴대전화·골프회원권까지 회사가 지급한다.   하지만 이렇게 부러움을 한 몸에 받지만, 삼성그룹 내에서 임원은 또한 ‘임시 직원’의 줄인 말로도 통한다. 언제 구조 조정될지 모르는 불안한 자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에 <시사저널>이 분석한 1천6백39명을 ‘한국의 재벌팀’이 2002년 기준으로 삼은 임원 1천3백50명과 비교해 보니, 이 가운데 8백84명이 새 얼굴이었다. 다시 말해, 3년 만에 50%에 이르는 임원이 물갈이되었다는 의미이다. 주로 상무급 이하 직급에서 변화 폭이 컸다.

삼성의 임원은 최고 대우를 받는 대신, 그만큼 책임감도 큰 자리이다. 임원이 되는 순간 실적에 따라 평가하는 연봉 계약 대상자가 되고, 만일 실적이 없으면 ‘조퇴’(조기 퇴직)나 ‘마퇴’(마지 못해 퇴직) 대상이 된다.

물론 삼성은 떠나는 임원을 위한 애프터서비스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삼성창업지원센터가 그런 경우인데, 20년 이상 근무한 50세 이상 퇴직자는 1년간 이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시사저널>이 분석한 삼성 임원 1천6백39명은 삼성을 움직이는 파워맨이다. 그러나 현실은 임원 1천6백38명을 합친 힘보다 총수 이건희 회장 단 한 사람의 힘이 더 강하다. ‘한국의 재벌팀’은  이를 ‘개인화한 다원적 경영구조’라고 진단했다.

형식적으로 분산되고 다원화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총수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인 구조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바로 총수를 정점으로 한 하향식 위계 구조가 더 강화되어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이런 현상이 반영되었다. 총수와 오랫동안 관계를 형성한 사장단급 임원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삼성그룹 임원이라고 다 같은 임원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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